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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는 어떻게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영화로 만들었나? | 세계 영화 100 #05 세계 영화 100 #05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 사랑을 완성하지 않는다. 서로의 배우자가 이미 불륜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가까워졌지만, 자신들까지 같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두 사람 사이에 계속 남는다. 왕가위의 《화양연화》(花樣年華, In the Mood for Love, 2000)는 바로 이 멈춤에서 시작되는 영화다. 대부분의 사랑영화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고, 어떤 장애물을 넘어 관계를 이루는지를 따라간다. 《화양연화》는 정반대의 길을 택한다.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은 스스로 선을 긋고, 말하지 못한 감정은 좁은 복도와 계단, 문틀과 거울, 치파오의 무늬와 반복되는 음악 속으로 옮겨간다. 사랑은 사건이 되지 못하고 기억이 되며, 기억은 반복될수록 더 선명해지는 대.. 2026. 9. 24.
영화관이 사라진다는 것 — '안녕, 용문객잔' 차이밍량 — 몸이 말하는 것들 · Vol.6《청소년 나타》 → 《애정만세》 → 《하류》 → 《구멍》 → 허우·양·차이 → 《거긴 지금 몇시니?》 → 《안녕, 용문객잔》 → 차이밍량 총괄비가 쏟아지는 타이베이의 밤. 한때 수많은 관객을 받아들였던 복화극장은 마지막 상영을 준비합니다.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는 호금전의 《용문객잔》입니다. 객석은 넓지만 관객은 드문드문 앉아 있고, 매표원은 불편한 다리로 긴 복도를 오가며, 영사기사는 보이지 않는 영사실에서 필름을 돌립니다. 극장은 곧 문을 닫지만 특별한 폐관 행사도, 작별을 알리는 연설도 없습니다. 《안녕, 용문객잔》은 영화관을 추억하는 작품이지만 따뜻한 향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관객들은 영화를 집중해서 보지 않고, 자리를 옮기고, 음식을 먹고, 잠들.. 2026. 9. 23.
애니메이션의 세계사 Ep.08 · 하늘을 나는 쌀 창고 — 《시기산 엔기 에마키》는 어떻게 기적의 속도를 그렸나 창고 한 채가 땅에서 떨어져 하늘로 솟는다. 기둥과 벽, 지붕을 온전히 갖춘 건물이 공중을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말을 탄 부자와 하인들이 뒤를 쫓는다. 앞선 마을 사람들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고, 밭에서 일하던 사람과 길을 가던 행인까지 걸음을 멈춘다. 잠시 뒤에는 쌀가마니들이 줄을 이루어 산과 들을 가로지른다. 같은 가마니를 여러 순간에 반복해 그린 것이 아니라, 수십 개의 자루가 꼬리를 물고 날아가는 사건이다. 그러나 화면을 따라 움직이는 독자의 눈에는 하나의 거대한 물결처럼 보인다. 앞쪽 자루가 길을 열고 뒤쪽 자루가 그 궤적을 되풀이하면서, 정지된 종이 위에 속도와 방향이 생긴다. 12세기 일본의 는 그림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지 않는다. 대신 날아가는 물체, 놀라는 군중, 길게 이어지는 풍경을.. 2026. 9. 22.
2026 추석 극장 영화 총정리|가족과 무엇을 볼지 고민된다면 2026년 추석은 9월 25일 금요일이다. 목요일인 24일부터 일요일인 27일까지 나흘의 연휴가 이어지지만, 극장가의 승부는 하루 앞선 23일 수요일에 시작된다. 《암살자(들)》과 《타짜: 벨제붑의 노래》가 같은 날 개봉하고,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두 개의 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도 일부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올해 선택은 한 편의 압도적인 명절 영화로 모이기보다 관객의 나이와 취향에 따라 갈릴 가능성이 크다. 부모님과 자녀가 함께 볼 만한 영화, 성인 관객을 위한 범죄극, 어린 자녀가 집중할 수 있는 짧은 애니메이션, 긴 호흡을 감수하고 찾아가야 할 예술영화가 한 주에 겹쳐 있기 때문이다. 추석 직전인 9월 16일부터 23일까지 정식 개봉하거나 기획 상영을 시작하는 작품을 먼저 살펴보.. 2026. 9. 21.
서로 다른 시간에 사는 사람들 — '거긴 지금 몇시니?' 차이밍량 — 몸이 말하는 것들 · Vol.5《청소년 나타》 → 《애정만세》 → 《하류》 → 《구멍》 → 허우·양·차이 → 《거긴 지금 몇시니?》 → 《안녕, 용문객잔》 → 총괄아버지가 죽은 뒤 샤오캉은 타이베이 거리에서 시계를 팝니다. 어느 날 파리로 떠나는 한 여자가 그가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사고 싶다고 말합니다. 샤오캉은 집안에 초상이 났으니 재수가 없을 것이라며 거절하지만, 결국 자신의 시계를 건넵니다. 짧은 거래가 끝나고 여자는 떠납니다. 두 사람은 이름도 삶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그때부터 샤오캉은 타이베이의 시계들을 파리 시간으로 바꾸기 시작합니다. 《거긴 지금 몇시니?》는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처럼 출발하지만, 차이밍량은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하지 않습니다. 대신 타이베이에.. 2026. 9. 21.
누가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 내레이션, 1인칭 목소리, 전지적 시점 ㉗ 영화 용어 사전 : 영화 서사 용어 ⑦영화를 보는 동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습니다. 화면 밖에서 이야기를 설명하거나, 인물의 내면을 전달하거나, 과거를 회상하는 목소리 — 이것이 내레이션입니다. 내레이션은 영화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 중 가장 직접적인 형태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내레이션이 없는 영화들도 있고, 내레이션 자체가 거짓말을 하는 영화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 이 질문이 영화의 의미 전체를 바꾸기도 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내레이션의 종류와 그것이 만드는 서사적 효과를 정리합니다.이 글의 목차1. 내레이션이란 무엇인가 — 목소리가 이야기를 전달할 때2. 1인칭 내레이션 — 인물이 직접 말할 때3. 전지적 내레이션 — 모든 것을 아는 목소리4. 내레이션.. 2026. 9. 20.
공공의 영화적 적 1호 — 장 르누아르, 대환상이 분노하게 만든 것들 또 다른 시선으로 세계영화사 · Another History of World Cinema · Ep.04-4장 르누아르(Jean Renoir)를 이해하려면 아버지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화가의 아들이 영화감독이 됐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피에르-오귀스트는 둘째 아들과 거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고, 집에 있을 때도 아버지(papa)가 아닌 주인(patron — '보스')이라고 불리기를 원했다. 실제 양육은 유모 가브리엘 르나르에게 맡겨졌다. 가브리엘은 어린 장을 몽마르트르의 기뇰(Guignol) 인형극에 데려갔다. 르누아르는 훗날 회고록에 썼다. "그녀는 나에게 가면 뒤의 얼굴을 보고 화려함 뒤의 사기를 보는 법을 가르쳐줬다." 그것이 르누아르 영화의 핵심이었다. 계급의.. 2026. 9. 20.
'메멘토', 기억이 없다면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일까? 어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같은 사람일까?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는 기억을 잃은 한 남자의 복수극처럼 시작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훨씬 불편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주인공 레너드 셸비는 새로운 기억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고 메모를 남기며,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내용은 몸에 문신으로 새긴다. 그는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아야 한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붙잡고 살아간다. 처음에는 그의 비극이 단순해 보인다. 기억할 수 없으니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기록은 기억보다 객관적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곧 이 믿음을 흔든다.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남긴 기록마저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진실이라고 부.. 2026. 9. 19.
허우 샤오시엔·에드워드 양·차이밍량 — 대만 영화의 삼각형 대만 영화 3부작 — 차이밍량 연결 글《청소년 나타》 → 《애정만세》 → 《하류》 → 《구멍》 → 허우·양·차이 → 《거긴 지금 몇시니?》 → 《안녕, 용문객잔》 → 총괄허우샤오시엔의 인물들은 프레임 깊숙한 곳에서 지나간 시간을 견딥니다. 에드워드 양의 인물들은 유리창과 사무실, 도로와 아파트 사이에서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차이밍량의 인물들은 말보다 먼저 몸으로 고독을 겪습니다. 세 감독은 모두 대만을 찍었지만, 그들이 발견한 대만은 같은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허우샤오시엔에게 대만은 기억을 되찾아야 하는 역사였고, 에드워드 양에게는 근대화의 속도가 인간관계를 재편하는 도시였으며, 차이밍량에게는 사람이 떠난 뒤에도 물과 습기와 욕망이 남아 있는 폐허였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면 대만 .. 2026. 9. 18.
'동경 이야기'는 왜 가장 평범하면서 위대한 영화인가? | 세계 영화 100 #04 세계 영화 100 #04노부부가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도쿄로 간다. 자식들은 부모를 반기지만 자신들의 일과 가족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내지 못하고, 결국 노부부는 기대했던 만큼 따뜻한 환대를 받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가족은 장례를 위해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東京物語, Tokyo Story, 1953)에서 벌어지는 일은 대체로 이 정도다. 살인도 없고, 놀라운 반전도 없으며, 한 인물의 거대한 성공이나 몰락도 없다. 부모는 늙고, 자식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며, 사랑하는 가족들 사이에도 조금씩 거리가 생긴다. 오즈는 바로 그 평범한 변화를 극적인 사건으로 부풀리지 않고 바라본다. 그런데 이 조용한 가족영화는 2012년 Sig.. 2026. 9. 17.
구멍을 통해 연결된다 — 《구멍》, 차이밍량 Vol.4 차이밍량 — 몸이 말하는 것들 · Vol.4《청소년 나타》 → 《애정만세》 → 《하류》 → 《구멍》 → 《천변풍경》 → 총괄1999년 밀레니엄 직전의 타이베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집니다. 감염자들은 바퀴벌레처럼 행동합니다. 정부가 대피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남습니다. 위층 남자(리강셩)와 아래층 여자(양구이메이). 그리고 배관 공사 중 생긴 구멍 하나가 그들의 아파트 바닥을 연결합니다. LW 라이즈가 이 영화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차이밍량의 시네마는 이미 격리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슬로우 시네마의 거장이 만든 슬로우 시네마 뮤지컬. 황폐한 아파트에서 화려한 1950년대 홍콩 팝스타의 노래가 흐릅니다. 로튼 토마토의 비평 총평이 이것을 담습니다. "환상적으로 초현실적이고 신선하게.. 2026. 9. 16.
애니메이션의 세계사 Ep.07 · 펼치는 손이 만드는 시간- 《조주진부쓰기가》는 일본 최초의 만화인가 두루마리의 오른쪽 끝을 펼치자 토끼와 원숭이, 사슴이 물가에 나타난다. 조금 더 왼쪽을 열면 토끼가 코를 막고 물로 뛰어들고, 원숭이는 헤엄치며, 다른 토끼는 사슴의 등에 올라탄다. 씨름판에서는 개구리가 토끼를 넘어뜨리고, 관중처럼 둘러선 동물들이 몸을 젖혀 웃는다. 마지막에는 원숭이 승려가 개구리 모양의 불상 앞에서 법회를 연다. 화면을 한꺼번에 벽에 펼쳐놓으면 긴 동물 그림이지만, 원래 방식대로 두 손으로 조금씩 열어보면 이야기는 눈앞에서 차례로 출현하고 다시 감긴다. 12세기 일본의 가 움직이는 듯 보이는 이유는 그림 안에만 있지 않다. 보이지 않던 장면을 열고 지나간 장면을 닫는 독자의 손이 시간의 장치가 된다.← 이전 편: Ep.06 · 복제되는 이야기 — 중세 목판화는 어떻게 책의 화면을 만들.. 2026. 9. 15.
먹는다는 것의 고독 — 차이밍량 영화에서 음식과 몸 차이밍량의 영화에서 먹는 장면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도 홀로. 라면을 끓여 혼자 먹고, 통조림을 따서 혼자 먹고, 수박을 잘라 혼자 먹습니다. 중국과 대만 문화에서 식사는 본질적으로 공동체의 행위입니다. 가족이 모이고,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차이밍량의 인물들은 혼자 먹습니다. 이것이 차이밍량이 고독을 보여주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말이 없어도 됩니다. 먹는 장면 하나로 이 인물이 얼마나 혼자인지를 보여줍니다. 페리스피어의 분석이 이것을 이렇게 담습니다. "차이밍량의 작업이 철저하게 묘사하는 신체 과정과 감각들 — 먹기, 잠자기, 쾌락, 고통 — 은 대부분 감독의 오랜 뮤즈 리강셩에게 속한다." 먹는 것, 자는 것, 통증을 느끼는 것. 이것들이 차이밍량 영화에서 몸이 말하는 언어입니다.. 2026. 9. 14.
'가능한 사랑' 베니스 2관왕-이창동의 영화가 다시 세계를 움직였다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 심사위원대상과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FIPRESCI Prize)을 받았다. 2002년 《오아시스》로 베니스를 놀라게 한 지 24년, 감독은 다시 같은 도시에서 작품성과 비평적 지지를 동시에 확인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두 상이 서로 다른 시선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심사위원대상은 매기 질렌할이 이끈 베니스 공식 경쟁부문 심사위원단의 선택이고, FIPRESCI상은 세계 각국의 영화평론가들이 별도로 고른 상이다. 영화제의 공식 평가와 국제 비평계의 평가가 한 작품에 겹쳤다는 뜻이다.‘은사자상’은 하나가 아니다베니스의 은사자상에는 심사위원대상과 감독상이 있다. 2026년 《가능한 사랑》이 받은 상은 심사위원대상이고, 이창동 .. 2026. 9. 13.
영화 속 숨겨진 약속 — 복선, 체호프의 총, 아이러니, 상징 영화 용어 사전 : 영화 서사 용어 ⑥ 영화를 두 번 봤을 때 처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경험을 하신 적 있으신가요? 처음엔 그냥 지나쳤던 장면이 사실은 모든 것을 미리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순간 — 그것이 복선의 힘입니다. 감독은 관객보다 먼저 이야기의 끝을 알고 있습니다. 그 앎을 이용해 화면 곳곳에 단서와 약속을 숨겨둡니다. 복선, 체호프의 총, 아이러니, 상징 — 이번 편에서는 감독이 이야기 안에 숨겨두는 언어들을 정리합니다.이 글의 목차1. 복선 (Foreshadowing) — 미래를 숨겨두는 방식2. 체호프의 총 — 보여준 것은 반드시 쓰인다3. 아이러니 — 기대와 현실의 간극4. 상징 — 하나의 이미지가 더 많은 것을 말할 때5. 이 장치들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지난.. 2026. 9. 13.
지하에서 만든 기적 — 마르셀 카르네와 자크 프레베르, 점령 아래의 영화 또 다른 시선으로 세계영화사 · Another History of World Cinema · Ep.04-3마르셀 카르네(Marcel Carné)는 1906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구 제작자였고, 어머니는 카르네가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évert)는 1900년 파리 외곽 뇌이쉬르센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36년, 카르네가 첫 번째 장편 〈제니(Jenny)〉를 만들 때였다. 그 만남이 프랑스 영화사에서 가장 풍요로운 협업 중 하나가 됐다. 카르네는 스튜디오 안에서 이미지를 구축했다. 프레베르는 시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언어를 제공했다. 이 에피소드는 그 협업이 1938년 〈안개 낀 부두(Le Quai des brumes)〉와 1939년 〈새.. 2026. 9. 13.
'호프' 북미 개봉 첫날 2위, 현지 언론과 관객은 왜 갈렸나 나홍진 감독의 첫 SF 괴수 블록버스터가 미국과 캐나다에서 출발했다. 첫날 박스오피스는 기대 이상이었고 평론가들은 야심과 액션을 인정했다. 그러나 관객들은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거의 다른 작품처럼 평가하고 있다. 《호프》의 북미 첫 반응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다. 흥행은 기대 이상의 출발, 평가는 긍정 우세, 관객 반응은 열광과 당혹감이 동시에 터져 나온 논쟁작이다. “북미가 열광했다”는 표현도, “혹평이 쏟아졌다”는 표현도 각각 절반만 맞는다.이 글은 미국·캐나다 개봉 직후인 2026년 9월 11일까지 공개된 자료를 기준으로 작성했다. 북미 박스오피스는 미국과 캐나다를 합산해 집계하며, 첫 주말 최종 성적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영화의 구체적인 결말은 다루지 않는다.수요일 북미 박스오피스 2위.. 2026. 9. 12.
이터널 선샤인, 기억을 지우면 사랑도 사라질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울 수 있다면, 우리는 정말 그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은 이 질문을 거의 문자 그대로 영화로 만든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사랑했고, 다퉜고, 결국 헤어진다. 그리고 클레멘타인은 조엘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시술을 받는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조엘 역시 같은 선택을 한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없애버리면 고통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억을 하나씩 잃어가는 동안 조엘은 이상한 일을 경험한다. 지우고 싶었던 사람을 다시 붙잡고 싶어진다. 여기에서 《이터널 선샤인》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선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것일까, 아니면 기억 속에서 사랑을 계속 만들어가는 것일까?우리는 왜 헤어진 뒤 기억을 지우.. 2026. 9. 11.
고통은 가족을 연결하는가 — 《하류》, 차이밍량 Vol.3 차이밍량 — 몸이 말하는 것들 · Vol.3《청소년 나타》 → 《애정만세》 → 《하류》 → 《구멍》 → 《천변풍경》 → 총괄샤오캉이 더러운 담수이강에 뛰어들어 시체 연기를 합니다. 영화 촬영을 위해서입니다. 감독은 홍콩의 앤 훼이. 차이밍량의 영화 안에 실제 감독이 등장하는 순간.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입니다. 샤오캉의 목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이유를 모릅니다. 의사도, 침술사도, 무속인도 낫게 하지 못합니다. 통증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게이 사우나를 전전하고, 어머니는 외도를 합니다. 세 사람이 같은 집에 삽니다. 그러나 연결되지 않습니다. 고통도 그들을 연결하지 못합니다. 센시즈 오브 시네마가 이 영화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차이밍량의 가장 음울한 영화." 1997년 베를린 영.. 2026. 9. 11.
24년 만의 귀환, 7분의 기립박수 — 이창동 〈가능한 사랑〉이 베니스를 뒤흔들다 2026년 9월 6일, 이탈리아 베니스 리도섬 살라 그란데 극장.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월드 프리미어를 마치자 7분간 기립박수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전도연·설경구·조인성·조여정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끌어안았습니다. 상영 후 기자회견장에서는 외신 기자들이 단상 앞으로 몰려와 이창동 감독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월드 프리미어 직후 로튼 토마토 100%, 메타크리틱 96점. IndieWire는 "이창동의 또 다른 걸작"이라 했고, Hollywood Reporter는 "한국의 거장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를 본연의 분위기로 되돌렸다"고 썼습니다. 〈오아시스〉(2002) 이후 24년 만의 베니스 경쟁 부문 귀환. 이 귀환이 낳은 의미들을 정.. 2026. 9. 10.
'시민 케인'은 왜 50년 동안 세계 최고의 영화였나? | 세계 영화 100 #03 세계 영화 100 #03 한때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영화사상 최고의 영화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가장 먼저 나오는 답이 있었다.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 영국영화협회(BFI)의 영화 전문지 Sight and Sound가 10년마다 실시하는 역대 최고의 영화 투표에서 《시민 케인》은 1962년 처음 1위에 오른 뒤 1972년, 1982년, 1992년, 2002년까지 다섯 차례 연속 정상에 있었다. 무려 50년이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최고의 영화'라는 설명이 반복되다 보니 또 다른 신화도 만들어졌다. 딥 포커스를 처음 사용한 영화, 로우 앵글 촬영을 발명한 영화, 비선형 서사를 처음 도입한 영화라는 식이다. 사실은 조금 다르다.《시민 케인》이 그 모든 영.. 2026.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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