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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gDam

오봉역 사망사고, 희생자 동생의 글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by 조각창 2022.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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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 직원이 오봉역에서 일을 하다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철로를 무단으로 넘다 생긴 사고도 아닙니다. 자신이 일하던 현장에서 벌어진 이 끔찍한 사고는 인재였습니다. 코레일이 정상적인 곳이었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고는 일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돈밖에 모르는 자들로 인해 노동자들은 그렇게 오늘도 죽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오봉역 사건은 다른 뉴스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청년 노동자의 죽음은 처참함을 넘어 끔찍했습니다. 그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일을 한 죄밖에 없는 그가 죽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봉역 사고 현장

희생된 노동자의 동생 A씨는 8일 '네이트판'에 '코레일 오봉역 사망사고 유족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은 우리가 알지 못한 진실이 가득 담겨 있었고, 코레일이 얼마나 엉터리로 일을 해왔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2018년 코레일에 입사했을 당시 저희 오빠는 사무영업으로 채용이 됐다. 그런데 사무영업직으로 입사를 했는데 수송 쪽으로 발령이 된 게 너무 이상했었다. 남자라는 이유로 채용된 직렬과 상관없이 현장직으로 투입이 된 부당한 상황이었지만 힘들게 들어간 회사이기에 어느 누가 신입사원이 그런 걸 따질 수 있었겠느냐"

 

동생은 오빠가 사무영업으로 채용되었는데, 수송으로 발령 났다고 밝혔습니다. 남자라는 이유로 직렬과 상관없이 현장직으로 투입된 부당한 상황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힘들게 들어간 회사이고, 신인사원이라 그걸 따질 수도 없었다는 말이 부당하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런 경험을 한 이들은 너무 많으니 말이죠.

 

첫 회사이고 첫 사회생활이니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근무 중 입사 동기 한 명이 다리가 절단되는 큰 사고를 당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많은 이들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다른 역으로 급히 떠났다고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희생자는 많은 고민 속에서 선배들의 회유와 이야기에 남았는데 그게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저희 오빠 어제 생일이었다. 오빠 낳느라 고생한 우리 엄마 선물 사서 부산 온다고 신나게 전화했던 저희 오빠가… 전화 끊은 지 3시간도 안 돼서 싸늘한 주검이 되었단다. 부모님이랑 우리 오빠야 좋아하는 귤이랑 겉절이 해줄 배추 사서 신나게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받은 전화 한 통은 지옥이었다"

 

희생된 노동자는 생일을 앞두고 사망했습니다. 자신을 낳아준 엄마에게 선물 사서 부산 온다고 신나게 전화한 것이 마지막이라 합니다. 전화 끊은지 3시간도 안 돼서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니, 가족의 충격과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을지 상상만으로도 힘겹게 다가옵니다.

코레일 오봉역

아들 생일을 챙기기 위해 장봐서 집으로 가던 가족들은 차 안에서 아들이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 보다 끔찍한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들이 회사 잘못으로 부모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은 무엇으로도 이해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다고 생각도 못했다. 우리 오빠가 일하던 현장을 본 부모님과 삼촌들은 말을 잇지 못 했고 철조망에 매달려 오열했다. 그냥 길도 많이 걸으면 다리 아픈데 자갈밭에 철길에… 매일 저 크고 높은 열차들을 일일이 손으로 연결하고 떼고 위치 바꾸고… 열차에서 매일 뛰어내리고 오른다고 발목 염증은 나을 수가 없었고 열차가 지나가면서 튀는 자갈들로 인해 생긴 여기저기 시퍼런 멍들"

"철길 옆은 울창한 담쟁이 덩쿨로 뒤덮인 철조망으로 인해 사고가 나도 도망칠 공간도 없었고 CCTV는 당연히 설치돼 있지도 않았으며 밤에는 불빛조차 환하지 않아 어렴풋이 보이는 시야 속에서 일을 했고 유일한 소통수단인 무전기 또한 상태가 좋지도 않았다"

 

"그 무거운 열차 수십대가 저희 오빠를 밟고 지나 끝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저 많은 열차를 단 2명이서, 그것도 숙련된 2명도 아닌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인원들 포함 2명이서 그 일을 한다고 들었다"

 

병원 2층 장례식장으로 달려간 A씨와 부모님은 "오빠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동태와 반응 살피기에 급급한 코레일 본사 직원들"을 마주했다고 합니다. 사망한 노동자의 얼굴이나 이름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코레일 본사 직원들은 그저 자신들 입장만 살피고 있었다는 사실이 분노하게 만듭니다.

 

노동 현장은 자갈길과 철길만 존재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하루 1~2만 보를 걸어야 하는 것이 지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갈길은 일반 평지를 걷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코레일

매일 크고 높은 열차들을 일일이 손으로 연결하고 위치 바꾸는 일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현장은 밤에는 불빛조차 환하지 않아 어렴풋이 보일 정도라고 합니다. 유일한 연락수단인 무전기 또한 상태가 좋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 무거운 열차 수십대가 오빠를 밟고 지나 끝까지 들어갔다는 사실에 가족들이 오열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 많은 열차를 숙련된 노동자도 아닌 이제 막 입사한 2명이서 했다는 것은 코레일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구의역 김군의김 군의 사망 후 많은 이들은 함께 슬퍼했습니다. 김 군의 가방에서 나온 먹지도 못한 컵라면은 그의 삶을 추측하게 했습니다. 2인 1조 근무가 아닌 홀로 위험을 감수하고 일을 해야 했던 김 군의 사망 후 사회는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청년 노동자가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다 사망했습니다. 이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점에서 결코 용서될 수 없습니다. 코레일의 악랄한 시스템이 사람을 죽였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전에도 큰 사고가 났음에도 사망까지 일어난 것은 코레일이 노동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잘 드러낼 뿐입니다. 더 이상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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