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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스타

선녀들 최희서 박열 일본 개봉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역사

by 조각창 2019.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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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갔던 '선을 넘는 녀석들'은 일본으로 향했다. 항일 운동은 국내나 중국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독립 운동은 있어왔다. 그리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일본에서도 의열단이 존재했고, 그들의 적의 심장부에서 독립 투쟁을 펼쳤다. 


의열단을 이끈 이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김원봉이었다. 독립운동에 혁혁한 공헌을 한 중요한 인물임에도 그가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북으로 갔기 때문이다. 좌파라는 허울을 씌워 독립을 위해 노력한 인물을 역사에서 지워버린 한심한 과거는 그래서 한스럽기만 했다.


9일 방송된 '선을 넘는 녀석들-한반도 편'은 설민석, 문근영, 유병재 팀과 전현무, 다니엘 린데만 팀으로 나뉘어 각자 역사 여행을 했다. 설민석 팀은 한인애국단 이야기와 함께 이봉창 의사의 활약을 찾아 떠났다. 일왕이 타고 있던 마차에 폭탄을 던졌던 이봉창 의사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역시 흥미로웠다.


"31년 동안 모든 쾌락을 맛보았습니다. 앞으로 31년 더 살아도 더 재밌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봉창 의사가 직접 김구를 찾아간 사연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봉창 의사의 이 발언은 그래서 더욱 강렬함으로 다가왔다. 이봉창 의사는 실제 일왕 행렬에 폭탄을 던졌다.


폭탄이 터져 말이 쓰러지고 마차가 뒤집어지기는 했지만 일왕이 죽지는 않았다. 당시 폭탄 제조 기술을 보면 그렇게 뛰어날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곳도 아닌 일본 내부에서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진 이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너무 놀란 일본 순사들은 이봉창 의사가 아닌 다른 이를 폭탄 투척 혐의로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봉창 의사는 도주가 아닌 자신이 폭탄을 던졌다고 외쳤다. 당당하게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한 행동으로 인해 다른 이가 희생 당하게 놔둘 수는 없었다고 했다. 


당당하게 독립 운동을 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청년 이봉창 의사의 이 행동은 이후 독립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보는 행위 자체도 참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다. 우리 역사를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기억하려는 노력 자체가 곧 애국이니 말이다.


전현무와 다니엘 린데만은 일본을 찾은 최희서와 함께 했다. 영화 '박열'이 일본에서도 개봉을 하게 되어 홍보차 일본을 찾은 것이었다. 영화에서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 역을 완벽하게 연기해 수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완벽한 일본인 발음이 가능했던 것은 실제 최희서가 초등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기 때문이라 한다. 


가네코 후미코는 최근 독립유공자가 되었다. 아나키스트로 박열과 함께 활동을 하던 그들은 일본에서 일어난 관동 대지진 이후 완전히 삶이 바뀌었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불을 지르고 다닌다는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학살한 사건은 잔인했다.


엄청난 숫자의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에게 학살 당한 관동대지진은 잔인한 일본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했다. 한국인인 쉽게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를 이용해 학살을 한 일본인들을 용서하기 힘든 것은 당연했다. 당시 박열은 아나키스트로 국가주의를 부정한 채 사회 운동을 했지만, 눈엣가시였던 박열을 잡아들이기 위해 일본 유언비어를 퍼트린 자로 둔갑시켰다.


이 상황에서 박열을 일본 정부를 오히려 이용했다. 스스로 자신이 폭탄을 이용해 일왕을 암살하려 했다는 발언을 했다. 일왕 암살 범죄는 도쿄의 법정에 서야 할 정도로 중죄다. 박열이 스스로 이런 선택을 한 것은 법정에서 일제가 조선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기 위함이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결혼도 했던 형무소는 사라지고 그곳에는 놀이터만 있었다. 그곳에 형무소였다는 사실을 기록한 곳에는 쓰레기 버리는 곳이 되어 있었다. 일본인들이 보는 과거사가 그렇다. 그나마 모두가 그런 일본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무고한 조선인의 죽음을 추모하는 비를 세운 니시자카 씨와 같은 일본인이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일본의 인권 변호사들은 아베 정권을 비판하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를 요구하는 일본인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래서 중요하다.


악랄한 일본이 그토록 감추고 싶어하는 진실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다. 비열한 일본인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과거사를 사죄하고 이를 기리려 노력하는 이들 역시 분명 존재한다. '봉선화'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니시자카씨가 있는 단체들처럼 말이다.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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