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찍기 위해 세계문화유산에 함부로 못질을 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K-드라마는 말 그대로 현재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저 국내나 아시아에서 인기를 모으는 수준이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서비스하는 문화 상품의 정점이라는 점에서 대단합니다.
국가적으로도 이런 대중문화가 활발하게 꽃을 피우기 위해 많은 제도적 지원들을 하고 있습니다. 지자체들의 경우도 자신의 지역에서 드라마를 촬영하고 큰 화제를 모으게 되면, 당연하게도 관광객들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유치하기도 합니다.
이런 긍정적인 모습들도 있는 반면 민폐가 되는 경우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드라마 찍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는 말들을 하는 제작자들도 늘었습니다. 그만큼 촬영 현장에 대해 불만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제대로 원칙을 지키고 촬영하면 불만은 적어질 수 있을 겁니다. 야간 촬영의 경우 시간과 돈이 들 수도 있지만, 해당 지역 거주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촬영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과거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촬영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으니 말입니다.
촬영이 벼슬이 아닙니다. 주거지역에서 촬영은 언제나 조심해야 하고, 기본적으로 민폐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그들의 몫입니다. 출입문 앞에 차를 주차해서 주거민들이 움직일 수도 없게 하는 경우나, 제대로 촬영시간을 지키지 않고 야밤에 환하게 조명을 껴서 잠자지 못하게 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이번 논란의 경우도 드라마 촬영의 고질적 병폐가 잘 드러났다고 보입니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드라마 한 편을 찍기 위해서는 그저 주인공들만 필요한 것이 아니죠. 수많은 배우들과 함께, 제작진들 역시 대규모로 집중해 작품을 만들고는 합니다.
논란이 된 것은 KBS2 새 드라마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였습니다. 이 드라마 제작진이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인근 병산서원에 촬영소품을 걸기 위한 못질을 했다는 목격담이 나오며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이를 초기에 알린 건축가 민서홍 씨의 분노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문화재였기 때문입니다.
"지난 12월 30일 오후 3시쯤 병산서원에 들렀다. 주차장 인근에는 KBS 드라마 촬영차량 약 7여대의 버스와 트럭들이 세워져 있었다. 많은 스태프들이 분주히 오가는 것을 보았고, 입구에 다다르고 나서야 병산서원이 촬영장임을 알게 되었다. 병산서원은 사적 제26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소중한 문화재이기에 조금은 불쾌한 마음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저기에 드라마 소품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놓여있었고, 몇몇 스태프들이 등을 달기 위해 나무 기둥에 못을 박고 있었다. 둘러보니 이미 만대루의 기둥에는 꽤 많은 등이 매달려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중년의 신사분이 스태프들에게 항의하고 있었고, 가만 보고 있을 수 없어 나도 문화재를 그렇게 훼손해도 되느냐며 거들었다"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스태프들은 귀찮다는 듯, 이미 안동시의 허가를 받았다며 궁금하면 시청에 문의하면 되지 않겠느냐. 허가받았다고 도대체 몇 번이나 설명을 해야 하는 거냐며 적반하장으로 성을 내기 시작했다"
건축가 민서홍씨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 계정에 '병산서원에 들렀다 황당한 상황을 목격했다. 공영방송이 드라마 촬영을 목적으로 나무 기둥에 못을 박는 등 문화재를 훼손했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현장 분위기를 제대로 알려주는 내용이었습니다.
병산서원에서 드라마 촬영이 있었다는 말과 함께, 그곳이 사적 제26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소중한 문화재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 부분이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세계문화유산에서 드라마를 촬영한다는 것은 그만큼 지켜야 하는 것들이 많다는 겁니다.
나무 기둥들에 등을 매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스태프에 항의하고 있어, 자신도 문화재를 그렇게 훼손해도 되냐고 거들자, 스태프들은 귀찮은 듯 안동시 허가를 받았다며 오히려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 현장이 어땠을지 충분히 예측 가능합니다.
"드라마 스태프들이 나무 기둥에다 못을 박고 있는데, 이 사실은 알고 있느냐. 문화재를 훼손해도 좋다고 허가했느냐고 따져 물었고, 그제서야 당황한 공무원은 당장 철거 지시하겠다 대답했다"
민 씨는 이건 아니다 싶어 안동시청 문화유산과에 연락했으며, 담당 공무원에게 촬영 허가를 내준 사실이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문화재 훼손은 다른 문제고, 곧바로 철거 지시하겠다는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최초 신고했을 때는 적어도 담당 공무원이 현장에 나와 상황을 확인하고 사후관리하기를 바랬지만 역시 충분한 조치가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특히 근대 유적지에서는 촬영을 목적으로 기둥이나 벽들을 해체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는 더욱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민 씨는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에 신고하고, 다수 언론사에 해당 상황을 제보 시도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황당한 것은 다음 날 담당 공무원에게 촬영이 계획대로 진행됐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겁니다. 이 말의 의미가 뭘까요?
문화재를 훼손한 채로 드라마 촬영이 이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를 보호해야 할 담당 부처의 공무원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근대 유적지 촬영 중 기둥이나 벽들을 해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는 말은 경악할 일이었습니다.
안동시가 현장에 언제 나갔는지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현장에 나가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 제작진이 소품용 모형 초롱 6개를 매달기 위해 만대루 나무 기둥에 못자국 5개를 남긴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못자국은 개당 두께 2~3mm, 깊이는 약 1cm 가량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합니다. 1개 초롱은 원래부터 기둥에 있던 틈을 이용해 매단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보고 뭐 그것 가지고 이리 난리냐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작진들 역시 그랬을 겁니다.
문화재란 무엇인가요?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버텨내며 그 가치를 증명한 것입니다. 이런 곳에 못을 박거나 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작은 구멍으로 인해 더욱 커진 문제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는 심각하게 바라봐야만 합니다.
"우선 해당 사건으로 시청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제작진은 지난 연말 안동병산서원에서 사전 촬영 허가를 받고, 소품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현장 관람객으로부터 문화재에 어떻게 못질을 하고 소품을 달수 있느냐는 내용의 항의를 받았다"
"이유 불문하고 현장에서 발생한 상황에 대해 KBS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현재 정확한 사태 파악과 복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논의 중에 있다"
"당시 상황과 관련해 해당 드라마 관계자는 병산서원 관계자들과 현장 확인을 하고 복구를 위한 절차를 협의 중에 있다. 또한 앞으로 재발 방지 대책과 추가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 상황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드라마 촬영과 관련한 이 모든 사태에 대해 KBS는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논란이 커지자 KBS는 사과문을 냈습니다. 민씨의 주장이 사실임을 인정했습니다. 항의를 받았지만 못질을 계속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유 불문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말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드라마 관계자들은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병산서원 관계자들과 현장 확인을 하고 복구를 위한 절차를 협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민 씨가 이렇게 공론화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KBS의 사과는 웃기기만 합니다.
"드라마 촬영팀이 문화재를 훼손한 행위를 저지른 것은 명백히 법적 처벌 대상이 된다. 복구 절차가 협의됐다고 하더라도 문화재 훼손 자체가 법적으로 위반된 행위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국민신문고에 민원 신청을 통해 고발이 접수되었습니다. 민원인은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제92조(손상 또는 은닉 등의 죄) 제1항을 근거로 고발장을 냈습니다. 복구 절차와 상관없이, 이미 훼손된 문화재가 문제라 이는 법을 위반한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경북경찰청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민원 신청은 안동경찰서에 배당할 방침이라고 했습니다. 완벽한 복구만이 아니라, 이와 관련해 법적인 처벌도 피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이후 벌어질 수도 있는 촬영을 한다며 마음대로 많은 것들을 망치려는 자들에게 좋은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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