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라는 직업은 분명 숭고합니다. 인간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의술을 가졌다는 점에서 인류에게 가장 소중한 직업군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과거와 달리 의사의 신분은 급격하게 상승했고, 국내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신의 직종으로 통합니다.
엄청난 돈을 버는 대한민국 의사는 OECD에서도 특별하고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은 돈을 버는 의사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도는 입학 과정에서 잘 드러납니다. 공부를 제일 잘했다는 이들은 모두 의대를 지원합니다.
어느 학교에 다니든 의사만 되면 그만이라는 이들의 광기는 결국 돈일 수밖에 없습니다. 의대 지망생이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현재와 같은 엄청난 돈과 사회적 지위가 없다면 과연 이렇게 많은 이들이 의대에 집착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도 높아진 것도 좋습니다. 의사의 역할이 인간에게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지위가 무소불위의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누구라도 범죄를 지으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한국에서 의사는 무슨 짓을 해도 의사라는 직업을 잃지 않습니다.
3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의사 793명(한의사·치과의사 포함)이 성범죄를 저질러 검거됐다고 합니다. 5년간 특정 직업군에서 이 정도로 많은 성범죄로 검거된 것은 보기 드물 겁니다. 중요한 것은 성범죄만 이 정도입니다.
'강간·강제추행'으로 검거된 의사가 689명(86.9%)으로 가장 많았고 '카메라 등 이용 촬영(불법촬영)' 80명(10.1%), '통신매체 이용 음란행위' 19건(2.4%), '성적 목적 공공장소 침입' 5명(0.6%) 순이었습니다. 연도별로 2018년 163명, 2019년 147명, 2020년 155명, 2021년 168명, 2022년 160명으로 연간 평균 159명꼴로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는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이었습니다. 이 황당한 사건이 가능하게 만든 자중 하나가 바로 의사였습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성형외과 전직 원장 40대 의사 염모씨는 지난 8월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운전자에게 치료 목적 외의 프로포폴 등 마약류를 처방했습니다.
경찰이 염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작년 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마취 상태인 여성 환자 10여 명을 불법 촬영하고 일부 환자는 성폭행한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이 자의 여죄가 이게 전부일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여죄는 충분히 더 많다는 의미입니다.
올해 초에는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가 2021년부터 전공의와 간호사 등 10여 명을 상습 성추행 또는 성희롱한 혐의가 드러났지만, 해당 교수는 5개월의 정직 처분을 받고 지난 9월 복직해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 범죄를 저지른 자라면 다른 직종에 있는 이들은 직업을 잃는 것이 상식입니다.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군은 살인을 저질러도 면허가 다시 살아납니다. 의사 면허가 박탈된다고 영원히 회복하지 못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의사 면허가 박탈되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회복이 가능하고, 이 회복률이 거의 100%에 가까운 것이 의사 집단입니다.
이런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게 만든 것이 80년대 국회의원이 된 의사들이 만든 악법 때문입니다. 이는 의사의 지위를 굳건하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의사 집단을 범죄 집단 정도로 만든 악법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정 능력이 존재하지 않는 집단은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에 대해 면허를 취소하는 등 강력한 제재를 요구가 커지자 국회도 법을 개정해 '철옹성 면허'라 비판받던 의료인 면허 규제를 대폭 손질했습니다. 지난 11월 시행된 개정 의료법에 따라 의료인이 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면허가 취소됩니다.
의료인 결격 사유가 '모든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집행유예 및 선고유예 포함, 고의성 없는 의료사고로 인한 업무상 과실치사상 제외)을 받은 경우'로 확대된 것이라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기존에는 의료 관련 법령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을 때만 취소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과 다른 부분이 언뜻 드러나지 않지만, 의료 관련 법령 위반으로 한정한 것과 달리, '모든 범죄'로 확대한 것은 중요합니다. 물론 그전에도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를 했을 때 자격정지를 할 수 있게만 규정돼 있었는데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성범죄를 사유로 자격이 정지된 사례는 4명에 불과했고 처분 역시 자격정지 1개월에 그쳤습니다.
이게 무슨 처벌인가요? 성범죄를 저질러도 자격 정지는 고작 4명이고, 처분이라고는 자격정지 1개월이 전부였습니다. 마약 의사가 아닌 다른 집단에서 이런 범죄가 벌어졌다면 과연 이 정도로 그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을 겁니다.
의료법 개정을 하기는 했지만, 의료 행위의 특수성으로 인해 성범죄 의료인을 제대로 처벌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환자가 의사의 의료 행위가 성범죄인지 의료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다른 직업군과 달리, 직접 환자의 몸을 만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런 경우 과연 성범죄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자칫 악용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의사들의 성범죄 사건은 밝히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환자들의 경우 성범죄로 인식되어도 의학적 지식 부족으로 의료 행위와 범죄 행위 경계를 파악하기 쉽지 않아 입증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대신해줄 집단이 필요한데, 같은 의사 집단들이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 집단의 자성입니다. 자신들의 밥그릇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던 자들이, 지난 정부에서 의사 정원수 확대에 미친듯한 광기를 보이더니, 현 정부에서 더 많은 수의 의사 정원을 늘린다고 해도 쥐 죽은 듯 조용한 이유는 뭔가요? 의사 집단들이 비난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에 대해 의사집단이 먼저 나서 냉정한 평가를 하고 다시는 의사로서 품위를 잃지 못하도록 해야만 신뢰가 회복됩니다. 의사집단의 자정 노력이 강해지면 환자들이 의료집단에 대한 신뢰도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일부 범죄자를 감싸며 스스로 같은 부류의 범죄집단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현재의 의사집단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는 듯합니다. 바뀌지 않으면 그들에게도 무소불위의 힘은 더는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스스로 신뢰할 수 있고 존경받을 수 있는 집단으로 변모하지 않으면 안 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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