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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다른 시선으로 Another View
Film 영화/Film Review 영화 리뷰

104. 라스트 데이즈Last Days 마지막날 그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by 조각창 2008.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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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빌려 구도의 길을 가는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한것은 아닐까?
 



이제 더 이상 구스 반 산트를 평가하거나 논거할 수있는 인물이 몇이나 될까? 그의 영화를 보고 그의 영화적 상상력이나 표현력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에게 말걸기를 할 수있을까?
 
분명한건 데뷔 당시부터 집중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천재에 가까웠던 그 감독. 영화사상 가장 기억되어질 장면이 담겨진 <사이코>를 통해 영화계에서 집중 포화를 당하며 감독으로서 사망 선고까지도 받기도 했던 그. 그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자기색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히치콕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자신만의 영화적 표현력을 사지절단 당한채 오랜시간 힘들어 했었을 것이다.
 
그를 기억하는건 <드럭스토어 카우보이 1989>라는 전설적인 작품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쉽게 볼 수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90년대 한국이란 나라에서 이 영화를 보는 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화질보장안되는 흐릿한 화면으로 접해야 했었던 그의 영화.
 
그리고 이어진 헐리우드식 영화제작은 많은 이들에게 구스 반 산트를 그저 그런 감독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던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를 다시 경배하기 시작한건 아무래도 <엘리펀트>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영화를 만들어낼 수있을까 하는 생각.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를 어떤식으로 바라보고 표현하느냐는 분명 감독 자신의 고뇌의 산물이다. 그는 진정 자신만의 영화적 세계를 만들었다고 할 수있을 것이다.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엽기적인 총기난사사건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다른 영화들(다큐)과는 사뭇 달랐다. 당사자와 학생들의 시선을 따라 서로 동일 시간대에 서로 다른 시각을 그렇게 영화적으로 표현해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고 할까나...? 동일 시간대에 서로가 가진 자신들만의 시간들을 영화적으로 표현해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이 영화 <라스트 데이즈>는 언론에서 이야기 하듯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의 죽기 전날의 하루를 담은 영화라고 한다. 분명 이 영화속에서 주인공은 코베인이 아니다. 이름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숲을 거니는 블레이크(마이클 피트-파인딩 포레스트, 헤드윅, 원더랜드, 몽상가들)는 즈 자신도 어디를 향하는지 모른다. 그저 숲을 거닐다 마주친 강가에 뛰어들고 그렇게 자신을 자신에게 맡겨두고 있을뿐..그는 숲 가운데에 있는 저택에 머물고 있다. 그 저택에는 그의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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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울리는 전화와 잠들어 있는 친구들. 그리고 그를 찾는 방문객들. 그리고 그는 혼자만의 공간을 찾고...그렇게 그에게 남겨진 하루가 지나가도 있다. 블레이크의 아내는 그를 찾고 그의 친구들은 그를 떠난다. 그리고 그렇게 남겨진 그는 그 자신의 최후를 맞이한다.
 
참 어려운 영화다. 분명한건 그가 아니면 구현하지 못할 영화적 시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정적이며 사적이다. 자기 자신을 사유한다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했을 수도 있다. 아직까지도 커트 코베인이 자살한 이유에 대해 명확하지는 않은 듯 하다. 뭐 내가 알지 못하지만 남들은 다 아는 진실도 있겠지만...어쩌면 그에게는 그가 쌓아올린 능력만큼이나 자신안에 담겨지는 고민들을 걷어내기 힘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이들이라면 평생 느낄 수없는 천재에게만 주워지는 고뇌들을 그도 느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블레이크가 느끼는 시간에 관한 영화이다. 그가 느끼는 시간적인 배열은 관객과의 호흡과는 불일치를 보일 수도 있다. 그게 전형적인 방식으로 영화내에서 보여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호흡을 맞춰나가기 힘들다. 이 영화에서도 <엘리펀트>에서 보여주었던 사적인 시간의 재분배가 이뤄지고 있다. 시각에 따른 동일 시간대의 다른 시간적 대응은 영화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분명 사전 지식없이 이 영화를 보러왔던 이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시간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구스 반 산트의 팬들이라면 분명 천국과도 같은 시간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공간적인 시간들을 모두 사라져버리고 블레이크가 영화속에서 나누는 사적인 시간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꿈꿔왔던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분명 상업적인 장르에서 대중문화에서 가장 자극적이면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상품이다. 하지만 그 대중문화속에서도 감히 범접하기 힘든 걸작들과 명감독들은 있어왔다. 그런 다양성 때문에 영화라는 매체가 아직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고 영원히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있는 근거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 구스 반 산트도 자신만의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엘리펀트>와 <라스트 데이즈>를 통해 명확하게 구스 반 산트는 이렇다라는 그만의 공식을 만천하에 알렸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그만의 영상화법은 아마도 그를 추종하는 이들에 의해 보다 발전되거나 퇴보할 것이다.
 
그는 여전히 영화를 만들고 있다. 예전대로라면 올해 두편의 영화가 제작되어진다. 그는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영화적 상상력을 표현해낼지 무척이나 궁금할 따름이다. <엘리펀트>에서 보여주었던 충격이 <라스트 데이즈>에서는 자신만의 것으로 완결되어져 가고 있음을 느끼며 다음 영화에서 그의 호흡은 어떤식으로 표현되어질지 무척이나 궁금할 뿐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권할 영화는 아닐 것이다.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기호를 갖춘 영화가 있는 반면 취향에 따라 선책해서 봐야할 영화들도 있다. 영화적 완성도나 영화를 학문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고역일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 너바나를 찾으려 하지 말라. 이 영화안에는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아닌 고뇌하는 천재의 마지막날의 일상만이 담겨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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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블로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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