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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헌법 불합치 폐지는 당연하다

by 조각창 2019.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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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가 폐지되었다. 그동안 낙태를 법으로 금지한 것이 잘못이라는 헌법위원회 판결이 나왔다는 사실은 반갑다. 종교 단체와 여성 단체들 사이 첨예하게 엇갈렸듯, 헌재에서도 낙태죄 존치와 폐지 사이에서 치열한 법리 다툼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헌재에서 낙태죄에 대해 다시 논의를 한 이유는 산부인과 의사 A 씨가 낙태죄 처벌조항인 형법 269조·270조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 때문이었다. 이와 관련해 11일 헌재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다만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만큼 현행 규정은 2020년 12월31일까지 유지되고, 이 기한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낙태죄 규정은 2021년 1월부터 폐지된다고 밝혔다.

"임신·출산·육아는 여성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사회적·경제적·심리적 등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과여야 한다.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한 여성은 사회적·경제적 상황과 각종 정보를 파악하고 실행하는 데 있어 충분한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임신 22주 정도까지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헌재는 무조건 낙태를 가능하도록 하지는 않았다. 낙태가 가능한 시점을 임신 22주라고 규정했다. 이 정도면 '결정가능시간'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임신한 지 5개월 정도 지나면 낳을 것인지 아니면 낙태를 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봤다.

 

가장 중요한 점은 여성의 삶에 임신과 출산, 육아는 근본적이고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고 봤다. 너무 당연한 것인지 그동안 법적으로 여성의 삶은 이런 보장을 받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낙태죄 폐지가 중요한 것이다. 여성에게 자기 결정권이 부여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의 한계를 지적한 부분도 눈에 띈다. "모든 낙태가 전면적으로 범죄행위로 규율돼 낙태에 관한 상담이나 교육이 불가능하고 정확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될 수 없다. 미성년자나 저소득층 여성들이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기 쉽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지적한 대목도 중요하게 다가온다.

 

낙태죄가 그동안 헤어진 상대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 또는 가사나 민사 분쟁의 압박수단 등으로도 악용된다고도 봤다. 실제 이렇게 악용되어 고통을 당하는 여성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헌재의 이번 판결은 너무 고맙다. 단순히 태아의 생명 보호에만 집착한 채 여성에 대한 보호는 외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낙태죄는 임신한 여성이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형법 269조, 자기낙태죄),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부탁을 받아 낙태 시술을 했을 때 징역 2년 이하로 처벌한다(형법 270조, 의사낙태죄)로 규정되어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낙태를 할 수 없다. 낙태를 도와준 의사도 처벌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불법은 결과적으로 여성들에게 부당한 요구를 강요받게 만든다. 음성적으로 낙태를 받다 사망하는 경우도 나온다. 제대로 된 치료 시설 없이 행해지는 낙태 수술은 태아만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커다란 위협이었다.

 

불법이다 보니 낙태를 하려면 높은 금액을 지불해야만 했다. 정식 수입되지 않은 약품을 은밀하게 구해 복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폭행을 당해 임신을 한 상황에서도 아이를 낳아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미성년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제는 여성 스스로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1953년 낙태죄가 형법에 규정되었지만 사실상 사문화 된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앞서 이야기를 했듯, 불법으로 수술을 받다 보니 많은 부작용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합헌과 위헌 의견이 4:4로 맞서 현행 처벌규정을 한 차례 유지했었다.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태아의 생명권이 더 중요하다는 낙태죄 '합헌' 의견을 냈다. 그 결정 역시 존중한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는 것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점은 당연하다. 오늘 선고에서 재판관 4명이 헌법불합치 의견을, 3명이 단순위헌 의견을, 2명이 합헌 의견을 냈다.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찬성하면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만큼 현행 규정은 2020년 12월31일까지 유지되고, 이 기한까지 법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낙태죄 규정은 2021년 1월부터 폐지된다. 단순 위헌 의견으로 인해 한시적으로 낙태죄는 유지되게 되었다는 점은 아쉽다.

 

아쉬운 부분들도 존재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낙태죄 폐지로 인해 여성의 권리는 더욱 신장될 수밖에 없다.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중대한 문제에 대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가장 중요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사회 전체를 바꿀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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