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애 남편으로 지금은 더 유명한 이찬진이 정의당 입당을 밝혔다. 당비를 내는 당원이 된다는 것은 중요하다. 정의당이 하는 일에 동의하고 지지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은 故 노회찬 의원 때문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영원한 정의당 당원으로 남을지 알 수 없지만 그의 마음이 많은 이들에게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찬진은 '아래아한글'을 만든 인물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글과 컴퓨터'를 만든 존재라는 점에서 한국 인터넷 시대를 이끈 핵심인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존재다. 당시 함께 회사를 만든 이들이 우원식 엔씨소프트 상무,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과 김형집과 함께 청년 벤처 사업가로 성공한 인물이다.
"노회찬 의원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건 아니었고,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는 어떤 분인지 잘은 몰랐다. 노 의원의 부고 기사와 추모 영상을 보고 정말 엄청나게 울었다. 제 인생에 처음으로 정당 당비를 내려고 합니다. 그런다고 미안한 마음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네요"
이찬진 씨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찬진 씨는 故 노회찬 의원과는 친분이 없었다고 했다. 슬쩍 지나치며 봤을 수는 있다고 했다. 댓글을 한 번 주고 받았던 적은 있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잘 몰랐다고 언급했다.
잘 모르는 이들도 많지만 이찬진은 15대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1996년 당시 신한국당 전국구 20번으로 국회에 입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찬진은 6개월 만에 사퇴했다. 그가 보수주의자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현재도 청년 사업가에 대한 정치인들의 영입은 많았고 당시에도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신한국당 국회의원 당선보다는 6개월 만에 사퇴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한 인연이 없지만 그가 故 노회찬 의원 사망에 그렇게 큰 감정의 변화를 겪을지 몰랐다고 했다. 노 의원의 추모 영상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밝혔다. 정치적인 성향이 존재하지도 않고, 직접 자신의 정치 색을 내지도 않았던 인물의 공개적인 커밍아웃은 그래서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직접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개적으로 정의당 당원을 선언했다. 이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 고인은 그렇게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내세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자신의 잘못을 단죄 했다. 아무런 잘못도 느끼지 못하는 비양심적 정치꾼들이 득실한 상황에서 故 노회찬 의원은 많은 이들을 눈물 나게 만들고 있다.
이찬진 씨를 움직인 고인의 인생은 그렇게 많은 이들도 흔들고 있다. 왜 세상이 원하는 이들은 그렇게 빨리 세상과 결별을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고인의 장례식장에 수많은 시민들이 찾는 것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잘 보여준다.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과 노동자들은 그를 찾아 오열을 했다.
"경제 불평등을 악화 시키는 시스템이 굳어지고 있는데 현재의 민주당과 청와대를 봐서는 별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희망은 진보정당의 힘이 빨리 커지는 것밖에 없어 보인다. 나이 들어 연구와 글로 간접적으로 도와야지 앞에 나서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손 하나라도 내밀어야 하고 상심했을 때 위로의 말을 건네줄 나이 든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소장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의당 입당 소식을 알렸다.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장으로 활동하는 정 소장의 정의당 입당 역시 이후 많은 이들이 그 뒤를 따를 가능성도 높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가온다.
정 소장은 현재 민주당과 청와대에게서 경제 불평등 해소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정의당에서 찾겠다고 했다. 실제 국가 경영을 하는 과정이 되면 보수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씁쓸하다. 그런 점에서 보다 진보적인 인사들이 정당한 방식으로 많이 싸우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나이 들어 뒤에서 지켜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故 노회찬 의원의 사망은 더는 뒤가 아닌 앞에 나서야 한다는 확신을 준 것으로 보인다. 고인이 유서로 남긴 글들이 그렇게 정의당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고 있다. 비록 자신은 먼저 가지만 정의당을 지지해 달라는 그의 마지막 유언은 그렇게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는 갔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다시 그렇게 세상에 또렷하게 남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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