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14 07:02

해무-김윤석 박유천의 살 떨리는 대결, 해무가 가득한 우리를 본다

2007년 연우소극장에서 초연을 올렸던 <해무>가 영화화되었습니다. 봉준호가 감독이 아닌 제작자로 처음 선택한 영화라는 사실과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 작가인 심성보가 감독 데뷔로 택한 이 영화는 역시 최고였습니다. 이미 연극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해무>는 영화로 재탄생하며 보다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영화의 힘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바다를 잠식한 해무, 흔들리는 전진호는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해무가 가득한 바다 위 작고 낡은 배 위에서 벌어진 잔인한 현실은 두렵게 다가올 정도입니다. 그저 뱃사람으로서 평생을 뱃일을 하며 살고 싶었던 이들의 운명을 잔인하게 파괴해버린 그날의 기억은 모든 것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오직 배를 지키기 위해 선택했던 밀항은 모두가 파멸할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이 되고 말았습니다. 

 

 

<해무>는 지난 2001년 실제 있었던 사건이 모티브가 되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2001년 10월, 중국인 49명, 조선족 11명이 태창호에 숨어 2001년 10월 전라남도 여수로 밀입국을 시도했던 사건이 바로 <해무>의 원작이었습니다. 밀입국 과정에서 탑승객 일부가 질식사하자 선장과 선원들이 사망한 26명을 바다에 버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큰 논란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 숨겨진 진실을 극적으로 이끈 작가의 힘이 곧 <해무>라는 걸작으로 이어졌습니다.

 

작고 낡은 배에서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는 그 좁은 공간에서 인간 내면의 극단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충동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인간군상은 단순히 연극이나 영화의 이야기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면 <해무>속 상황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여전히 강렬하게 정신을 지배하고 있어서인지 <해무>를 보면서 감정이입이 되는 상황은 부담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침몰하는 배만 봐도 그런 생각들이 가득해질 정도로 어쩌면 국민 모두에게 세월호 참사는 지독한 집단 트라우마를 작동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을 뱃사람으로만 살아왔던 강선장 철주(김윤석)와 선장의 말은 무조건 따르는 갑판장 호영(김상호), 뭔지 모를 비밀이 많은 기관장 완호(문성근), 거칠고 돈만 밝히는 롤러수 경구(유승목)와 오직 여자에만 목말라 있는 선원 창욱(이희준), 그리고 해고를 나와 이제 막 뱃사람이 된 동식(박유천)은 한때 여수 앞바다를 주름잡았던 '전진호'와 한 배를 탄 인물들입니다.

 

 

과거의 영광과는 달리 현재의 '전진호'는 감척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배를 구하기 위한 철주의 노력과 그 안에서 그저 뱃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던 선원들의 이야기는 섬뜩함으로 가득했습니다. 그 작은 배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의 지독한 이야기는 숨돌릴 틈 없이 휘몰아치며 관객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잘 나가던 때 철주는 하루에 다방에서 200만원을 쓸 정도로 돈 많이 벌던 뱃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감척 대상이 된 낡은 '전진호'만이 그에게 남은 모든 것이었습니다. 횟집을 하는 아내는 이미 자신과 멀어진지 오래입니다. 세상의 온갖 남자들과 잠자리를 하면서도 오히려 당당한 아내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전부였습니다.

 

선주는 국가에서 진행하는 노후선을 교체하는 감척 사업을 통해 '전진호'를 처리하겠다고 나섭니다. 자신이 낡은 그 배를 사기 위해 대출을 받아보려 노력도 하지만, 그에게는 대출 받을 여력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바다로 나가도 제대로 고기도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뱃사람을 먼저 챙기는 철주는 '전진호'를 살리기 위해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잡히지 않는 고기를 대신해 밀수를 선택한 철주는 하지만 그 대상이 물건이 아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섬뜩해합니다. 하지만 이미 선택한 상황에서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현실. 철주는 '전진호'를 살리고 함께 하는 선원들을 위해 해서는 안 되는 밀항을 준비합니다.

 

 

망망대해에서 멈춘 배. 그리고 선원들에게 통보하듯 전해진 밀항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게 던져진 돈. 선원들은 갑작스러운 선장의 선택에 당황하기는 하지만, 그들 앞에 있는 돈에 모든 것을 수락합니다. 물론 근저에 남아있던 불신은 두텁게 자리하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파도가 거친 저녁 중국선을 통해 조선족들이 전진호로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홍매(한예리)가 바다에 빠지자 운명처럼 동식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뛰어듭니다. 그렇게 그들의 운명은 지독한 사랑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을 구한 인연은 순박하기만 했던 동식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고, 그들은 가장 극단적이고 위험한 상황에서 지독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오직 전진호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선장과 그런 선장의 말은 모두 따르는 선원들, 그리고 생전 처음 하는 밀항에서 벌어지는 지독한 상황들은 이들 모두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가기 시작합니다. 조선족들 중 교사인 중년 남성에게 감정이입을 한 완호와 오직 여자만 바라보는 경구와 창욱은 밀항하는 여성과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만 노력할 뿐입니다.

 

선장이 배를 구하려 선택했던 이번 일에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따르는 갑판장 호영은 혼란스러운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는 유이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신념의 우선순위는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서 더욱 집요하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거친 파도와 지도선으로 인해 조선족들을 어창에 가둬야 했던 그들은 의외의 상황에 처하고 맙니다. 지도선만 지나가면 끝이라 생각했던 그들 앞에 어창 안은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지독한 고기 냄새에 질겁하던 그들은 프레온 가스가 터지면서 집단 질식사를 당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홍매에 첫 눈에 반한 동석은 마치 선견지명이라도 하듯 그녀를 기관실로 옮겼고, 그 선택은 홍매를 유일한 생존자로 만들었습니다.

 

밀항을 하던 조선족들이 모두 숨진 상황에서 집단 패닉에 빠져 어쩔 줄 몰라 하던 선원들 앞에서 선장 철주는 도끼를 들고 숨진 이들을 내려치기 시작했습니다. 바다에 떠있게 하지 말고 고기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철주의 눈은 이미 광기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이성은 사라지고 지독한 인간의 악마성이 내면에서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치열한 내면들이 충돌하며 <해무>의 진짜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누구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두는 각자의 이유 때문에 죽은 조선족들을 도끼와 칼로 내려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살아있는 홍매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는 동식에게는 오직 그녀만이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철주가 전진호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지듯, 동식에게는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특별함 그 이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독한 해무가 전진호를 잠식하며 시작된 이 잔인한 상황은 그 배 안에 타고 있던 모든 이들을 인간 내면의 극단을 그대로 드러내도록 유도해갔습니다. 각자의 신념과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이들과 살아남은 한 사람 홍매를 구하기 위해 이들과 대적하는 동식의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연극에서 이미 검증된 <해무>는 영화라고 다를 수는 없었습니다. 탄탄한 이야기가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이어지게 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특별했습니다. 연극배우들로 구축된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은 왜 그들이 선택받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증명해주기도 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우려와 달리, 아이돌 스타인 박유천의 동식 연기는 군더더기 없이 바로 동식이었습니다.

 

전진호를 위해 미쳐가는 철주 역을 완벽하게 한 지독한 연기를 선보였던 김윤석과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진 동식 역을 연기한 박유천의 대립은 <해무>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그 모든 과정들이 잘 짜여 진 각본에 의해 물 흐르듯 이어졌고, 영화를 보는 내내 숨죽인 채 그들의 변화를 그대로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침몰하는 전진호와 함께 침몰하는 철주의 마지막 모습은 세상만사 온갖 감정들이 하나로 모아진 묘한 표정이었습니다. 그 지독하고 오묘한 표정으로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철주의 마지막은 섬뜩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드는 이질감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배를 지키기 위한 뱃사람 철주와 달리, 오직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모두와 대립했던 민석이 6년이 흐른 어느 날 낡은 식당에서 라면에 청량고추를 달라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는 장면은 기막혔습니다.

 

철주가 평생을 함께 했던 전진호의 침몰과 함께 하며 만들어냈던 오묘한 얼굴 표정이 6년이 흘러 우연히 보게 된 홍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동식의 얼굴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친딸일질도 모르는 아이를 바라보며 홍매의 목소리만으로 그녀임을 직감한 동식의 그 표정에는 알 수 없는 기묘함으로 가득했습니다.

 

 

<해무>는 편하고 쉬운 영화는 아닙니다. <명량>처럼 선명한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해적>처럼 코믹함으로 무장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박유천을 보러 간 팬들에게는 섬뜩한 영화 속 현실에 당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인간군상을 적나라하게 그린 <해무>는 올 해 최고의 영화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시나리오와 연출, 그리고 연기 삼박자가 완벽했던 이 영화들 속에서 관객들은 다양한 경험들을 했을 듯합니다.


인간이 극한에 처했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에 대한 <해무>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과 적나라함으로 다가와 있습니다. 침몰하는 배와 그렇게 침몰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들. 그 지독한 현실은 그저 영화 속 전진호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관객들이 먼저 알았을 듯합니다. 우리의 현실을 <해무>에서 자연스럽게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의 현실이 극한으로 치닫던 전진호의 상황과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장의 선택 하나로 모두가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고 그런 위기 속에서 각자 서로 다른 가치관이 대립하고 충돌하는 과정은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지독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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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1 10:46

영화인 단식농성과 명량 1000만, 이질적이고 서글픈 현실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리고 여야 단합으로 마무리된 세월호 특별법은 많은 영화인들이 거리로 나서게 만들었습니다. 진실을 밝혀달라며 단식에 나선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하기 위해 단식에 나선 영화인들과 함께 들린 것은 영화 <명량>이 최단기간 천만을 기록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우는 영화인과 <명량> 성공에 웃는 영화인

 

 

 

 

세월호 참사는 하나의 의문도 남지 않는 완벽한 진실이 필요한 사고입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절대 안전한 국가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도 세월호 특별법은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믿었던 야당은 여당의 요구를 들어주는 허무함을 넘어 절망스러운 합의를 했고, 세월호 유가족만이 아니라 많은 국민들을 분노로 이끌었습니다.

 

여야단합으로 이어진 세월호 특별법은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왔습니다. 이런 분노는 지난 주말 세월호 문화제에 모인 1만 여명의 시민들을 통해 잘 드러났습니다. 여전히 단식 투쟁에 나서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과 그런 그들을 폄하하고 비하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조소들이 엉켜있는 상황에서 영화감독들이 유가족과 함께 단식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그리고 재발방지대책. 이를 위해 수사권은 유족들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에 부여돼야 한다. 우리는 유가족들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이 지극히 타당하고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여야가 왜 유가족대책위의 안을 한 번도 공식적으로 논의하지도 않고 서둘러 타협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성역없는 진상조사를 무력화한 특별검사제를 허용한 여야 간 합의를 파기하라"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영화인 모임(가칭)은 9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농성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단식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건강한 국민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합리적인 수준의 요구였습니다.

 

여야가 담합해서 내놓은 세월호 특별법에는 기소권과 수사권도 없는 새누리당이 주장해왔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유가족들이 27일 동안 단식을 하면서 성역 없는 진상 조사를 해달라는 요구를 거부한 위정자들을 향한 분노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정지영, 장준환, 류승완, 이충렬 감독 등 20여명의 감독들이 단식에 참여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단식에 동참할 것이라고도 밝혔습니다. 그들이 단식에 동참하는 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세월호 참사에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이들의 절박함은 유가족과 함께 단식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안타깝고 아프게 다가올 뿐입니다.

 

 

많은 영화인들까지 거리에 나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세월호 특별법이 제대로 통과되기를 바라는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에서 극장가에서는 최단기간 천만 관객 동원을 한 <명량>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담은 이 영화는 한국 영화사상 열 번째 천만 관객 동원 작품이 되었습니다.

 

<명량>은 시작과 동시에 수많은 기록들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68만), 역대 최고 평일 스코어(98만), 역대 최고 일일 스코어(125만), 최단 100만 돌파(2일), 최단 200만 돌파(3일), 최단 300만 돌파(4일), 최단 400만 돌파(5일), 최단 500만 돌파(6일), 최단 600만 돌파(7일), 최단 700만 돌파(8일), 최단 800만 돌파(10일), 최단 900만 돌파(11일) 신기록을 수립해갔습니다. 여기에 개봉 12일 만에 한국영화 사상 열 번째 천만 영화에 등극했으니 관심이 집중되는 것 역시 당연합니다.

 

 

방송에서도 <명량>의 대성공에 감탄하고 그들이 세운 기록들을 복기하듯 내보내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감독은 처음으로 100억 성공신화를 쓸 것이라는 호기심 어린 기사들도 쏟아집니다. 이순신 마케팅의 성공은 자연스럽게 정치판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의 삶이 담긴 <변호인>들 역시 천만을 넘긴 영화였지만, 언론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형편없는 상업영화의 천만 돌파에 현지 생중계를 할 정도로 대단한 관심을 보이던 방송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변호인>의 천만 돌파에 무관심으로 일관해왔습니다. 철저하게 외면 받으면서도 천만을 넘긴 <변호인>과 방송의 축복을 받으며 천만을 넘긴 <명량>은 그래서 서글프게 다가옵니다.

 

박 대통령 역시 극장을 찾아 <명량>을 보며 전혀 다른 해석으로 자기화하는데 여념이 없을 정도로 이 영화는 단순한 성공적인 상업영화 이상의 가치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성공은 8할이 이순신이라는 역사에 기인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로 불거진 리더십 문제가 극단적으로 비교되며 많은 이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은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천만 영화는 하늘이 내려주지 않으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명량> 역시 잘 보여주고 있음을 이런 사례들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명량>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지 않았다면 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둘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순신 리더십에 열광하는 것은 현실과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명량>의 성공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월호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프게 다가옵니다.

 

광화문 광장에 모여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에 동참한 영화인들과 무수한 기록을 세우며 천만 동원을 한 영화인들. 그들의 슬픔과 기쁨 사이에 서글프고 이질적인 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아프기만 합니다. 두 번의 선거에서 드러난 참혹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한 주말의 모습은 우리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더욱 두렵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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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7 11:51

박근혜 명량 관람 너무 다른 이순신의 리더십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순신에 대한 열풍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몰아닥치고 있습니다. 매일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명량>은 2천 만 관객 동원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성공에 박근혜 대통령도 영화 <명량>을 봤다고 합니다. 현실 속 자신과 너무 다른 리더십을 가진 이순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였을 지가 궁금할 정도입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필사즉생 필생즉사 이순신의 발언과 너무 다른 현실의 리더십

 

 

 

 

이순신을 상징하는 거북선 한 척도 없이 일본의 300척이 넘는 해군과 싸워 이긴 명량해전은 역사적으로도 길이 남는 대단한 전투였습니다. 전 세계 해군 역사에 길이 남아 있는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이미 수차례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져 왔었습니다.

 

 

<명량>은 철저하게 기획에서 성공한 작품입니다. 일본이 다시 한 번 군사대국을 꿈꾸며 도발을 해오는 상황에서 과거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과 맞서 싸워 혁혁한 공로를 세웠던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큰 화두가 될 수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전 세계 해군 역사에서도 이순신의 전술이 수록될 정도로 탁월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던 그의 이야기는 당연히 큰 관심사가 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이순신의 이야기가 큰 반항을 일으키며 매일 신기록을 써내려가는 큰 이유는 현실 속의 리더십 부재가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박근혜 정부 출범부터 거론되었던 리더십은 올 해 세월호 참사로 극한점으로 치달았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던 날 대통령은 청와대에 존재하지 않았고, 7시간 동안 그 누구도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황당한 상황에 대해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대통령에게도 개인 생활은 존재한다고 반박하는 청와대는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평일 업무를 봐야하는 시간에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비서실장도 어디 있는지 몰랐다면 과연 전쟁 시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합니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만약 전쟁이 도발한 시점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면 용인될 수 있었을까요?

 

 

영화 <명량>은 색다른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가 과거 수업시간에 배웠고, 위인전을 통해 읽었었던 그것도 아니라면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만났었던 이야기의 연장일 뿐입니다. 물론 같은 이야기라도 누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명량>은 가장 최근에 나온 작품인 만큼 현재의 대중들이 가장 사랑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최민식이라는 대단한 배우의 열정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이순신은 분명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단순한 영웅으로만 그리려 하지 않고 나름 고뇌하는 인물로 설정한 김한민 감독의 선택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회오리 속으로 쓸려가던 이순신을 구하는 백성들의 모습은 이런 감독의 고민이 묻어나는 장면이었을 것을 봅니다. 물론 해상전을 하는 과정에서 이순신의 영웅주의는 극한으로 올라가며 모든 이들이 오직 이순신에게만 감사를 드리는 장면에서는 약간의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순신이 뛰어난 인물이고 그가 남긴 기록만 봐도 그는 성웅으로 추대 받고 영원히 기억되어야 하는 인물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순신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역사가 일정 부분 조작되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신기한 이야기도 압니다. 이순신 장군을 광화문에 세웠던 박정희 그리고 그 영화를 본 딸 박근혜. 이 아이러니한 현실 속에서 엄청난 성공을 하고 있는 영화 <명량>과 새누리당의 세월호 정국에서 거둔 압승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이순신의 역할은 분명 후대에도 길이 보존되어야 하고 되새김질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각오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던진 이순신은 후대 인들에게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정신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왜곡하고 활용하는 방식에서 문제는 나올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박정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다며 동상까지 세웠던 이순신. 술만 취하면 일본 군가를 부르던 박정희가 이순신을 좋아한 이유는 그가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운 모습이 아니라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보인 카리스마에 대한 동경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더욱 탱크를 몰고 쿠테타를 일으켜 나라를 지배한 독재자가 무인인 이순신 동상을 광화문 광장에 세운 것은 자신의 쿠데타를 합리화하기 위함임도 분명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본을 막아낸 이순신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울목들의 해수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략 전술을 구사해 12척의 배로 300척이 넘는 왜군을 막았다는 것만으로도 명량 해전은 길이 남을 수밖에 없는 영광스러운 기록일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명량> 속 이순신은 모두가 본받고 싶은 리더십을 가진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맞서 싸워 이기지 못하면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해군을 포기하라는 어명까지 어겨가며 병사들과 함께 적진 한 가운데로 나선 그의 모습은 위대함 그 자체였습니다. 해군을 버리고 육군으로 향한다고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바다에서 최후를 맞이하려 했던 이순신의 위대한 업적은 흥미로운 방식으로 영화화되었습니다.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뿜어내는 연기의 아우라는 분명 관객들을 압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도 왜군을 막기 위해 스스로 자신이 죽기를 자처한 모습을 연기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자신이 죽으면 남은 군사들이 두려움이 아닌 용기를 얻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동기 부여의 대상으로 내던진 이순신의 이야기는 분명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현실 정치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도 이순신의 리더십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더욱 대통령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체이탈 화법 외에는 하는 것이 없는 박근혜 대통령은 이순신의 리더십과는 정반대에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박 대통령은 영화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가 궁금합니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수없이 쏟아지는 참사들 속에서 자신이 과연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을 했는지, 아니면 아버지가 사랑한 이순신에 대한 막연한 팬심으로 영화를 봤는지 알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명량>은 분명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1시간 가까이 벌어지는 해상 전투씬은 현재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최상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기도 합니다. 영화 전체에서 흐르는 이순신에 대한 맹신주의와 영웅주의가 흠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백성을 구하고자 했던 그 정신만은 분명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순신의 리더십은 현재 정치를 하는 이들에게도 중요한 화두로 다가와야만 할 것입니다. 이순신 마케팅의 효과를 누가 볼 것인지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정신으로 국민들을 위한 국민의 국가를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단죄를 받아야만 할 것입니다.

 

영화가 영화 외적인 의미를 받는 것은 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는 좋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전략적으로 제작된 <명량>에서 이런 영화 외적인 화두는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이는 것도 현실입니다. 현실과는 너무 다른 영화 속 상황을 보면서 관객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극장을 나서는지 위정자들은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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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6 07:07

군도:민란의 시대-대중이 사라진 영웅 전성시대, 민란은 영웅의 카리스마에 밀렸다

흥행작을 내놓고 있는 윤형빈 감독이 그의 페르소나인 하정우와 함께 새로운 영화인 <군도:민란의 시대>가 개봉되었습니다. 하정우와 강동원이라는 절대 강자를 쌍두마차로 내세운 이 영화의 성공은 어느 정도 예고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흥행은 성공하고 있지만 영화적 완성도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제각각일 정도로 아쉬움이 큽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대중의 힘이 무너진 시대 영웅에 대한 의지만 커지고 있다

 

 

 

처음부터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 영화. 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상을 과거와 대비시킨 전략은 흥미로웠지만 영화 자체의 매력은 밋밋했습니다. 하정우와 강동원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이 등장했다는 것은 흥미롭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아쉬움이 크게 남았습니다. 물론 영화적인 완성도를 탐하기보다 그 자체가 품고 있는 주제의식에 더욱 가산점이 붙을 수밖에 없는 것 역시 당연할 것입니다. 

 

 

민란의 시대는 과거나 지금이나 다르지는 않습니다. 세상이 완전한 평등의 시대가 되지 않는 한 '민란의 시대'는 영원히 반복될 수밖에 없는 잉태된 분노이기도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민란의 시대'가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은 그 어느 시대보다 '민란'이 중요하고 큰 가치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기대를 품고 만든 작품은 현실적인 벽 앞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생각과 달리, 대중들은 '민란의 시대'보다는 '재미의 시대'와 '안정의 시대'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복의 가치보다는 안정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현실 속에서 <군도:민란의 시대>는 매력을 상실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물론 영화에서 불끈 솟아오르는 민란의 힘이 약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급격하게 보수적인 안정을 추구하면서 벌어진 <군도:민란의 시대>의 아쉬움은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조선 철종 13년 탐관오리들의 수탈이 극에 달한 시절 나주에서 벌어진 군도와 탐관오리들과 부패한 양반들의 싸움을 다룬 영화가 <군도:민란의 시대>입니다. 한정된 공간을 통해 당시 조선 전체를 이야기하는 형식은 자연스럽고 익숙합니다. 표본을 삼은 한 지역을 통해 당대의 전체 문제를 들여다보는 형식은 이미 대중들에게 익숙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관객들에게 익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다고 보입니다.

 

 

영화는 두 명의 주인공이 극과 극의 지점에서 서로 충돌하며 이어집니다. 나주 갑부 서자인 조윤(강동원)과 소, 돼지를 잡아 연명하던 백정 돌무치(하정우)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대결을 담고 있습니다. 나주 갑부와 기생의 몸에서 태어나, 기를 쓰고 양반의 권력을 품고 싶은 야망가 조윤과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양반이 시킨 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족을 모두 잃고 자신마저 죽음의 위기에 빠졌던 돌무치가 지리산 추설의 군도가 되어가는 과정은 제법 흥미롭게 이어집니다.

 

양민을 수탈하고 그런 방식을 통해 땅을 더욱 넓혀가는 악질 양반들의 모습은 과거나 현재나 다르지 않습니다. 권력을 품고 양민들을 약탈하는 행위는 방식만 다를 뿐 과거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소수의 권력이 다수의 대중을 지배하는 방식은 과거나 현재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 지배 시스템이 조금은 변하는 듯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고 보다 정교하고 집요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현재가 더욱 약탈의 강도나 세기는 강하기만 합니다.

 

서자의 울분을 품고 살아왔던 조윤은 아버지의 적자가 군도들에 의해 살해당한 것에 반가워했지만, 그에게는 아이를 잉태한 부인이 존재했습니다. 만삭의 몸으로 군도에 의해 산채로 끌려간 그녀를 잡아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은 곧 군도들을 소탕하는 이유가 됩니다.

 

 

보다 강력한 힘을 얻기 위해 아버지보다 악랄하게 수탈하던 조윤은 자신을 억압하는 트라우마까지 겹치며 양반들의 지원을 받으며 군도 소탕에 적극 나서게 됩니다. 죽었다 살아나 백정 돌무치가 아니라 군도의 새로운 핵심인 도치로 거듭난 그의 피할 수 없는 재대결은 흥미롭게 이어집니다.  

 

영화는 과거 서부극의 스타일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웨스턴 무비의 기본적인 형식은 하나의 마을에서 외부인과 내부인이 대결을 하고 그 외부인이 떠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물론 변형된 형태를 통해 다양한 형식으로 진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군도:민란의 시대>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서부극에 많이 의지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작품은 정통 서부극보다는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즈가 보여준 흥미로운 변주를 더욱 닮아 있었습니다. 복수극을 효과적으로 틀어내고, 이를 통해 영화적 재미를 성취해낸 이들의 영화를 보는 듯 익숙함은 오히려 역효과처럼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해설자의 개입이 이어지고, 이런 과정은 관객들에게 오히려 영화에 대한 몰입을 방해했다는 점에서 감독의 전략적 성취는 오히려 독이 되었던 듯합니다.

 

 

하정우와 강동원이라는 절대 강자의 대결 구도는 영화적 장치로서는 최고의 한 수였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드러난 이들의 대결 구도는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악랄한 조윤의 캐릭터는 강렬하게 다가왔지만, 민란의 주역이 되어야 할 도치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민란을 주제로 담은 <군도:민란의 시대>는 동력을 잃고 저물고 있는 것과 달리,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담은 <명량>은 무서운 기세로 모든 기록들을 깨트리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영웅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요구가 무엇인지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대중의 힘이 무너지고, 한 사람의 영웅에 기대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현실은 이 두 영화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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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5 07:06

신의 한 수-정우성을 위한 수컷 액션, 미생이 왜 위대한지를 보여주었다

정우성의 액션 영화는 어떻게 다르까? 결론적으로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장동건의 폼생폼사보다는 그마나 정우성의 인간적인 액션이 그나마 정겹게 다가오기는 했지만, 한국 액션의 한계만 명확하게 드러난 듯해 아쉽기만 합니다. 바둑이라는 소재를 차용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익숙하게 봐왔던 조폭과 놀음, 그리고 복수라는 기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일상적 영화 일 뿐이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거인처럼 등장하는 정우성, 그의 복수극에 바둑은 하수였다

 

 

 

 

프로 바둑선수인 태석(정우성)은 형의 갑작스러운 부탁으로 내기 바둑에 참여하게 됩니다. 선수들을 놔두고 훈수를 두는 진짜 꾼들이 뒤에서 조정해서 돈을 따는 그들의 내기 바둑에는 결론은 하나 밖에는 없었습니다. 잔인한 내기 바둑패의 두목인 살수(이범수)에게 돈을 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서로 진짜는 뒤에 숨겨두고 대결을 벌이는 과정에서 태석의 형은 운도 없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전파 방해를 받으며 훈수를 두지 못했고, 내기 바둑에서 승리 가능성이 낮은 태석의 형은 선수(최진혁)에게 당하고 맙니다. 자신 역시 패착으로 게임을 내주고 돌아온 상황에서 형마저 패착을 두고 몰락하는 과정은 이들 형제에게 닥친 잔인한 운명의 시작이었습니다.

 

자신의 눈앞에서 형은 잔인한 폭력에 빠지고 형의 목숨을 두고 바둑을 강요하는 살수와 잘못된 패착은 다시 한 번 이들 형제의 운명을 농락했습니다. 살인 혐의로 교도소로 가야 했던 태석은 그곳에서 바둑으로 실력을 쌓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교도소장이 특히 바둑을 좋아했고, 그곳에 있던 조폭 두목이 외출을 하게 만든 태수의 바둑 한 수는 진짜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바둑 하나로 교도소장과 조폭 두목의 마음을 사로잡은 태석은 그에게서 길거리 싸움의 정수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형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는 현재의 자신으로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를 넘기며 맞아가며 배운 싸움은 일취월장했고, 그렇게 밖으로 나온 그에게는 부러울 것 없는 모든 준비가 갖춰졌습니다. 조폭 두목이 제공한 엄청난 현금으로 팀을 꾸리기 위해 준비를 한 태석은 자신의 형을 돕던 꽁수(김인석)을 찾습니다.

 

 

지금도 정신 못 차리고 내기 바둑을 하고 사기를 치며 건달들에게 쫓기는 한심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꽁수를 끌어들이고, 훈수를 둘 선수를 위해 길거리에서 장님 내기 바둑의 신인 주님(안성기)를 섭외합니다. 자연스럽게 주님과 함께 내기 바둑을 두다 오른 손을 빼앗겼던 허목수(안길강)까지 모이며 태석은 완벽한 팀워크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복수를 하기 위한 인력과 자금이 준비된 상황에서 태석의 승부는 집요하지만 강렬하게 이어졌습니다. 태석의 복수의 대상이 된 살수 패에는 내기 바둑으로 다져진 전문가들이 가득했습니다. 선수라고 불리는 자와 중국 출신 왕사범(이도경), 잔인한 해결사 아다리(정해균)과 프로 바둑 선수 출신인 배꼽(이시영)까지 갖춰진 완성된 조합이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살수는 중국의 바둑 천재 아이인 량량(안서현)까지 손에 얻으며 드림팀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살수의 잔인함은 이미 태석 형제들에게 보인 행동으로 충분했지만, 량량을 사들이는 과정에서도 중국 패거리들을 잔인하게 살인하는 과정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살수에게는 오직 돈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태석은 아랫돌부터 차례대로 빼내며 복수를 시작합니다. 자신의 형을 잔인하게 죽였던 아다리에 접근해 내기 바둑으로 절망에 빠트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형을 잔인하게 살해한 방식으로 아다리를 제거한 태석의 다음 단계는 본격적으로 살수 패거리들을 와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신의 한 수>는 바둑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흥미롭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기존의 조폭 영화의 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영화였습니다. 허영만의 만화를 원작으로 했던 <타짜>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화투를 바둑으로 바꾼 것일 뿐 큰 차이는 없어 보였습니다. 차라리 <타짜>에서는 영화적 완성도라는 슬쩍 엿볼 수 있었지만 <신의 한 수>에서는 잔인함만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바둑을 소재로 한 웹툰인 <미생>이 기대되는 이유는 <신의 한 수>가 잘 보여주었습니다. 바둑을 그저 소재로 사용한 조폭 영화와 달리 <미생>은 바둑을 완벽하게 직장 생활과 연결해 바둑의 묘미를 절묘하게 잘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tvN에서 10월 드라마로 제작할 예정이라는 점에서 <미생>에 대한 기대감만 더욱 커지게 했습니다.

 

 

<신의 한 수>에서 정우성이 신의 한 수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몸집만 빛난 정우성의 액션 연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도 않았습니다. 잔인한 복수극을 마치고 <신의 한 수2>를 위해 부산으로 향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긴장감이나 극적인 재미도 존재하지 않은 채 오직 잔인한 폭력만 난무할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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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7 07:06

엣지 오브 투모로우-죽어야 강해지는 톰 크루즈의 RPG 게임, 게임 클리어는 하셨나요?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는 낯설지는 않습니다. 이미 다양한 문화와 영화 등에서 자주 사용했던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뛰어넘어 죽지도 않은 자들의 이야기마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톰 크루즈가 있기에 가능한 재미였습니다.

 

RPG 게임을 즐기라는 제작진, 관객은 행복했나?

 

 

 

 

죽어야 더욱 강해지는 남자 케이지(톰 크루즈)와 죽어서 더욱 강해졌던 여자 리타(에밀리 블란트)가 만나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들과 대결을 벌인다는 이야기는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더욱 톰 크루즈와 할리우드가 보여줄 물량 공세는 분명 사고가 아닌 소비가 되어버린 현대 영화에서는 대단한 가치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믹이라 불리는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점령한 세상. 광고 회사를 운영하다 망한 케이지 홍보장교가 됩니다. 광고를 통해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보낸 케이지는 자신도 전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말에 당황하게 되고, 그는 수갑을 찬 채 전장에 나서기 위한 준비를 마칩니다. 

 

원하지 않은 전쟁터에 나서야 하는 케이지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엑소 슈트를 입고 전장에 투입되지만, 안전장치를 어떻게 푸는지도 모르던 케이지는 전장에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워야 하는 그들에게 죽음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습니다. 문제는 잔인한 죽음을 맞이한 케이지가 수갑을 차고 잠에서 깬 순간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화에 당황하던 케이지는 다시 돌아간 전장에서 죽음 직전에 처한 잔 다르크 리타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깨어나면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을 남깁니다. 말도 안 되는 선문답 같은 상황 속에서 전쟁 영웅인 리타를 찾아간 케이지는 그녀를 통해 전쟁의 스킬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중간 단계의 미믹을 죽이면서 뒤집어 쓴 액체로 인해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케이지는 하루에 한 번씩 죽음과 함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해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죽는 순간의 고통은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케이지는 그럼에도 전쟁 승리를 위해 리타에게 전쟁 기술들을 배우며 점점 진정한 군인으로 거듭나기 시작합니다.

 

 

전대미문의 외계인과의 전투에서 첫 승리를 안겨준 인간인 리타 역시 케이지와 마찬가지로 죽지 않는 불사신이었습니다. 반복적인 전쟁은 그녀를 영웅으로 만들었고, 그런 과정을 통해 그녀는 전대미문의 존재가 되었지만 현재는 그런 불사신의 능력도 사라진 상황입니다. 죽어야만 다시 정상으로 살아날 수 있는 리타는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치료를 받고 일반적인 지구인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수혈을 받는 순간 그 모든 능력이 사라져버리는 상황은 케이지라고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죽으면 완벽하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수혈을 받는 순간 그 모든 능력을 잃어버리는 운명인 이들의 미믹 잡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개미굴을 없애기 위해서는 여왕개미를 잡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듯 미믹을 없애는 것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구인들을 전멸시키려는 외계인들의 음모와 그런 음모를 깨트리려고 죽어야만 하는 케이즈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엑소 슈트는 현재 실용화는 안 되어 있지만 산업용으로 개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조만간 전장에서 실제 엑소 슈트와 같은 비밀 병기가 일반화될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본 아이덴티티>와 <미스터&미세스 스미스>, <점퍼>, <페어게임> 등을 만든 덕 라이먼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습니다. 여기에 톰 크루즈가 등장하는 SF라는 사실은 플러스알파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액션 장면들은 과거 덕 라이먼 감독의 작품들과는 조금 거리감이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흥미로웠습니다.

 

일본 사쿠라자카 히로시의 <All you need is kill 올 유 니드 이즈 킬>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입니다. 원작을 보신 이들이라면 아쉬움이 컸을 수도 있고, 만화와 극영화가 주는 재미의 차이에서 영화적 재미를 받을 수도 있을 듯도 합니다. 게임세대들에게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흥미로운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RPG 게임을 하듯 최종 라운드의 왕을 깨기 위해 수없이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는 게이머들에게 이 영화는 거대한 화면을 통해 대리 게임을 하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해주니 말입니다.

 

빌 머레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을 보신 분들이라면 <엣지 오브 투모로우> 역시 이 영화의 중심 소재를 차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합니다. 물론 죽어야 사는 남자가 아니라 자고 일어나면 매일 동일한 장소에서 같은 삶을 사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하루를 무한반복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유사하게 다가옵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취향에 따라 극과 극의 평가가 나올 수도 있어 보입니다. 메카닉 디자인이나 전쟁 장면 등의 재미는 충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는 아쉽게 다가옵니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색다르지 않은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톰 크루즈의 SF 영화라는 프리미엄을 크게 받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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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8 07:05

도희야-폭력이 일상이 된 사회, 격리된 두 여인의 소통이 아프다

섬 마을에서 일어난 도희를 둘러싼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영화 <도희야>는 서글픈 내용이었습니다. 사회와 격리된 섬에서 사는 어린 도희와 그곳으로 새로운 경찰서장으로 부임한 영남의 이야기는 사회적 편견과 맞서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이자, 지독하고 강렬한 일상이 된 폭력이 우리를 얼마나 망가지고 힘겹게 하는지 이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고양이와 주인 이야기에 담은 영화 속 메시지 소통을 이야기 하다

 

 

 

 

영화 <도희야>를 만든 정주리 감독은 고양이와 주인의 이야기를 꺼내며 이 영화를 설명했습니다. 자신을 좋아해주는 주인을 위해 고양이는 주인의 신발 안에 쥐를 넣어두지만, 주인은 오해를 하고 그 고양이를 때리기만 합니다. 다음 날엔 껍질이 벗겨진 쥐가 들어있는 신발을 보고 주인은 경악하지만, 이는 서로가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나온 결과였습니다. 

 

 

고양이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주인을 위해 자신의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쥐를 주인에게 주는 행위를 통해 최고의 사랑을 보인 셈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고양이의 이런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경악스러운 행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로의 다른 시각은 결과적으로 오해를 만들고 그런 편견들이 결국 불안을 야기할 수밖에 없음을 감독은 <도희야>를 통해 통렬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서장으로 근무하던 영남(배두나)를 위기로 몰았습니다. 경찰이라는 딱딱한 조직 안에서 동성애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단 행위일 뿐이었습니다. 잘나가던 영남은 그렇게 낯선 섬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섬으로 들어오던 날 그녀는 한 아이를 목격합니다. 도로 옆에서 앉아서 뭔가를 하던 도희(김새론)는 뭔지 알 수 없는 묘한 아이였습니다. 개구리 한 마리를 손에 쥐고 먹잇감을 한 손에 올리고 있는 도희의 모습은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장면이 중요한 것은 <도희야>의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포식자를 손에 쥐고 지배하려는 도희의 행동은 그가 겪고 있는 환경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메타포였습니다.

 

 

조용한 바닷가 섬마을에서 조용히 쉬어갈 생각이었던 영남에게 그곳은 자신의 본질을 돌아보게 만드는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마치 자신의 또 다른 분신을 보는 듯한 도희는 그녀에게 조금씩 자아를 찾게 해주는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뭔지 알 수 없는 그 어린 소녀. 또래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온 몸에 상처투성이인 도희를 보면서 영남이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습니다.

 

술에 취해 어린 도희를 때리는 용하(송새벽)를 발견하고 영남이 확고하게 가진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어리고 약한 아이를 패는 가족들에게서 도희를 구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영남은 분명하게 깨닫고 있었습니다. 비 오던 어느 날 비에 흠뻑 젖은 채 자신을 찾아 온 도희. 추위에 힘겨워 하는 그녀를 뜨거운 물로 목욕을 시키는 영남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어린 도희의 몸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약하고 상처받은 아이를 지키는 것이 망가져가는 자신을 지키는 일과 동일하다는 사실은 영남에게는 중요했습니다. 거친 폭력 앞에서 도희를 지켜내며 영남 역시 힘겨움 속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터져 나오고는 합니다. 자신을 찾아 섬까지 온 연인과의 짧은 키스는 용하에게 목격되고 이는 곧 영남을 다시 한 번 위기로 몰아넣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불법체류자를 폭행하고 감금하고, 임금까지 착휘하고 있는 용하를 구속시켜버린 영남은 모든 것을 바로잡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섬에서는 이런 악행이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게 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부당한 행위라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하지만 섬에 젊은 사람도 없고, 노동력을 어디에서 사오기도 힘든 상황에서 이런 불법체류자에게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 섬마을 사람들의 삶의 이유가 되었다는 점에서 지독함으로 다가옵니다. 폭력이 일상이 되고, 그런 부당한 폭력을 애써 눈감는 그곳에서 도희의 아픔은 이상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합리화된 폭력 앞에서 가해자 용하는 섬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귀중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길들여진 폭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치던 영남은 도희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기 시작합니다. 용하가 이미 이야기를 했듯, 스스로 자학하며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도희는 영남의 관심이 그녀를 찾아온 여자에게 쏠리자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영남의 술을 마시고 방을 엉망으로 만들고, 스스로 자학하는 도희는 처참할 정도였습니다.

 

 

두려움까지 느끼게 한 도희의 이런 행동과 용하의 압박, 그리고 자신을 찾아온 연인까지 모두 하나가 되어 폭발 직전까지 이르게 된 상황에서 영남은 용하의 고소로 긴급체포가 됩니다. 영남이 도희를 성추행했다는 고소였습니다. 그녀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었고, 편견으로 바라본 영남의 행동은 모두 성적인 코드로만 읽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분리되어 사전청취를 받던 도휘는 자신의 바람을 투영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 이는 곧 잔인한 성추행으로 둔갑하게 됩니다.

 

상처받고 힘겨워하는 도희를 위해 했던 모든 행동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으로 인해 곡해가 되고, 범죄자로 전락해버린 한심한 상황이 영남을 더욱 당혹스럽게만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도희야>의 최고 반전은 그렇게 홀로 남겨진 도희와 집으로 돌아온 용하 사이에서 잔인하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는 관객들을 상당히 힘겹게 합니다. 폭력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자신의 애정을 드러내기 위해 스스로 자학을 하는 어린 도희의 행동은 자칫 섬뜩함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도희의 이런 행동은 고양이와 주인의 다른 시각차와 같았습니다. 태어나서 현재까지 그런 폭력과 폭언이 지배하는 환경에서 살아왔던 도희가 할 수 있는 소통 방법은 폭력이나 자학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도희야>가 대단한 것은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게 된 영남의 선택 때문입니다. 폭력 앞에서 당당할 수 없었던 도희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기준에서는 이상하거나 범죄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전부라고 할 수 있는 폭력 속에서 그 어리고 약한 소녀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린 소녀의 외침을 유일하게 이해한 영남이 도희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은 그래서 특별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여자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좌천을 당했던 경찰 조직 속 영남과 외부와 격리된 섬마을 속 폭력에 지배당해 온 도희. 두 여인이 만나 서로에게 서로를 이야기하는 그 몸짓 속에서 그들은 힘겹게 소통을 해가기 시작합니다. 편견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상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소통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도희야>는 우리에게 소통이란 무엇이고, 그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줍니다.

 

부쩍 성장한 김새론의 소름끼치는 연기와 담담하면서도 묵직한 연기로 영화를 이끈 배두나, 거친 남자로 폭력의 상징이 된 송새벽의 연기까지 <도희야>는 이들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영화였습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섬이라는 특정한 공간 속에서 풀어내는 과정은 흥미로웠습니다.

 

우리 사회 편견과 불통의 문화를 너무 자극적이지 않지만, 충분히 파괴적으로 그려낸 <도희야>는 분명 중요한 영화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던진 화두는 우리가 스스로, 그리고 함께 풀어가야만 하는 과제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폭력과 편견이 지배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영남이거나, 도희 일 것입니다. 혹은 용하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니면 모든 폭력과 편견에 수수방관으로 일관하는 섬마을 사람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도희야>속 인물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던지는 거대한 화두가 묵직함 그 이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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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5 07:30

한공주-진실 앞에 눈감은 우리 모두는 공범이자 죄인이었다

밀양에서 있었던 잔인한 사건은 이제는 잊혀진 과거의 일일 뿐입니다. 하지만 영화 <한공주>는 그 잔인한 기억을 끄집어내서 우리에게 거울처럼 다가섰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그래서 더욱 보기 힘들고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과연 우리는 밀양 사건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한공주>는 2004년 경남 밀양에서 실제 있었던 참혹한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실제 사건에서는 110명의 밀양 소재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들이 여중생과 여고생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공권력이 가해자의 편에 서면서 피해자인 여성들만 죄인이 되어버린 황당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가해자는 당당하고 피해자는 세상의 눈을 피해 도망 다녀야만 하는 이 한심한 사건은 바로 10년 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 흉포한 사건에서 처벌을 받은 것은 3명이고 그것도 10월형이 전부였습니다. 가해자들의 여자 친구는 윤간 현장에서 동영상을 찍고 이를 이용해 협박하는 등 금수보다 못한 짓을 저질렀지만 이들에게는 그 어떤 죄도 묻지 않은 게 10년 전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수사하던 경찰이 피해자인 여성에게 "밀양 물을 흐렸다"는 발언을 하고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불러 피해 여성의 정보를 그대로 노출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극악무도한 발언은 영화에서도 그대로 차용되어 당시의 당황스러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한공주>는 독립영화 스타일의 담백함에 집중했습니다. 거대한 자본이 아닌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작품성을 이끌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영화는 클로즈업을 자주 사용했고,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화와 잘 어울리며 효과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영화는 한공주(천우희)가 경찰 앞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했습니다. 조사를 받으며 남자들을 바라보며 기겁하는 공주가 남긴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는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마치 쫓기듯 학교를 떠나 전학을 한 공주는 교사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학교에서 적응해가는 공주이지만 모든 것이 힘겹기만 했습니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해가는 그녀에게는 하나의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교무실에 처음 들어서면서 봤던 돌고래 상패를 보면서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희망도 없이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었던 공주에게는 수영을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웠습니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피아노를 사고 싶었던 소망이 있었던 공주였지만, 학교를 옮기며 그녀가 하고 싶은 것은 수영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하는 수영은 좀처럼 진척이 없이 힘들기만 했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수영에 집착했던 이유는 살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었던 그녀가 물을 이기고 싶어한 것은 그 지독한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화옥(김소영)이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녀가 죽은 장소는 강이었고, 그 강에서 죽은 친구를 바라보며 절망을 해야 했던 공주가 물을 찾고 수영을 배우려 노력했다는 사실은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조금씩 수영을 배우며 공주는 삶의 희망을 찾았고 새로운 학교에서 아카펠라를 하는 은희(정은선)로 인해 놓아버렸던 음악에 대한 꿈도 다시 꾸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원했지만, 할 수가 없었던 음악을 다시 하게 된 공주는 조그마한 기타 선율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학교의 친구들과 다시 조금씩 행복을 느끼기도 했던 공주는 하지만 다시 복병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공주에게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친구의 선의는 공주를 위협하는 이유가 되고, 그런 상황을 모두 설명할 수 없는 공주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친구들을 밀쳐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수영을 배우고 친구와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음악을 하며 새로운 행복을 느끼던 공주의 삶은 오래 갈 수가 없었습니다. 

 

주정꾼 아버지는 공주를 찾아와 탄원서에 사인을 요구하고, 이일로 인해 공주의 학교까지 찾아온 가해자 부모들을 수업 중인 교실을 장악하는 끔찍한 모습까지 보여주었습니다. 피해자임에도 가해자에 의해 도망치는 신세가 되어야만 했던 공주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자신을 마치 친딸처럼 챙기던 교사의 어머니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녀를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남자친구이자 파출소장은 자신의 친구가 부탁을 했다고, 탄원서를 내미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누구보다 사건의 진실을 잘 알고 있는 파출소장이 가해자를 돕기 위해 쫓겨난 공주에게 사인을 요구하는 현실은 처참함을 넘어 경악스럽기만 했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공주는 주정뱅이 아버지에 의해 팔렸고, 자신을 돕던 교사도 버렸습니다.

 

그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었던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친구처럼 강에 뛰어드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토록 배우고 싶었던 수영을 배웠던 공주는 과연 그 지독한 한강에서 살아나왔을까요? 누구든 그 작은 손 하나만 내밀어줬어도 달라질 수 있었던 공주의 삶은 모두가 방관하고, 모두가 가해자와 한편이 되는 편리함을 선택해 그 여리고 아픈 소녀를 사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어른들의 탐욕과 이기심은 결국 괴물과 같은 짐승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친구가 키스 해봤냐는 질문에 42명의 고릴라와 해봤다는 그녀의 고백은 끔찍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수많은 고릴라들이 두 소녀를 범하는 상황에서 문을 열고 들어선 어른의 행동은 이 영화의 주제였습니다. 공주가 알바를 하던 편의점 주인이자 동윤의 아버지가 그 끔찍한 현장에서 오직 자신의 아들만 데리고 떠나는 장면은 <한공주>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준 가장 섬뜩하고, 끔찍한 장면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사건에서 진실을 보려 하지 않았고, 피해자의 편에 서야만 했던 경찰들마저 가해자의 편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나약한 피해자는 스스로 가해자들을 피해 도망 다녀야만 했습니다. 가해자는 당당하고 피해자는 세상에 숨어 살아야만 하는 이 한심한 국가는 여전히 성범죄자들에게 피해자를 더욱 고통스럽게만 할 뿐입니다.

 

<한공주>를 보면서 분노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10년 전 사건에서도 우리는 지독한 방관자였고, 현재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된 배에 갇혀 있는 수많은 실종자들을 지켜보는 우리는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방관자일 뿐이었습니다. 세사의 부도덕함과 부조리를 보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악마들을 바라보고 수수방관한 우리 모두가 공범일 수밖에 없음을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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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5 07:30

방황하는 칼날-가슴이 먹먹해지는 마지막 장면, 살인자가 된 아버지를 누가 비난할까?

참담하게 죽은 딸. 그런 딸을 죽인 아이들을 찾아 복수를 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막고 살인자를 구해야 하는 형사. 사람을 죽여도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이들. 죄책감이란 존재하지도 않는 잔인한 아이들에 대한 피해자 아버지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선택은 단순하고 명료해질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누가 감히 가해자를 벌하는 아버지를 비난할 수 있는가!

 

 

 

 

암으로 일찍 하늘로 가야만 했던 엄마. 중간 관리자로서 항상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빠 상현(정재형)은 중학생이 된 딸 수진(이수빈)을 살뜰하게 챙기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했습니다. 엄마의 손길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어린 딸이 홀로 아빠를 기다리다 잠이 드는 상황들 속에서도 사는 것이 힘겨워 어쩔 수 없었던 상현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나마 살 수 없을 정도로 힘들기만 했습니다. 

 

 

공장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야근을 밥 먹듯 하는 그에게는 그저 이 고비만 넘기면 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항상 품고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집에 돌아오지 않은 딸이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날도 그는 고장 난 기계로 정신이 없던 그는 지독한 현실이 자신을 맞이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정신없이 일을 하던 상현은 경찰에게 전화를 받고 황당해합니다. 자신의 딸이 숨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끊어버리고 화를 내던 상현은 거듭된 전화로 어쩔 수 없이 경찰서를 찾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 지독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시체보관소에 있던 딸을 보고 어쩔 줄 모르던 상현의 딸의 손톱을 보고 더욱 마음이 찢어지기만 합니다. 반항하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을 쳤으면 손톱이 모두 깨지고 망가지고 피가 흘렀을지 어린 딸의 손톱만 봐도 그 지독한 마지막 순간이 떠올려 몸이 떨릴 지경이었습니다.

 

아이가 떠난 후 회사에도 나가지 않고 오직 경찰서에서 앉자 범인 찾기를 기다리던 상현과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형사 억관(이성민)은 집에서 기다려달라고 합니다. 청소년 범죄에 대해 누구보다 강력하게 대처하는 억관에게도 이 사건은 아플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아빠 혼자 어린 딸을 키우다 홀로 남겨진 상황에서 정처 없이 매일 경찰서를 찾아 넋 놓고 앉아 있는 상현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없이 처량하게 앉아 있던 상현은 누군가에게 온 메일을 본 후 그대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상현이 사라진 후부터 용의자들의 사체가 발견되고 사건은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버려진 목욕탕에서 발견된 상현의 딸 수진을 살해한 용의자 중 하나가 자신의 방에서 잔인하게 폭행을 당하고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범인을 지칭하지 못했지만, 억관은 누구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잔인한 수법을 보면 복수라고 볼 수밖에 없었고, 그런 대상이 수없이 많을 수 있겠지만, 상현의 모습을 통해 그가 용의자를 살해했다고 의심을 합니다. 그의 생각처럼 상현이 용의자를 살해하고 다른 용의자를 향해 어딘가로 향했다는 사실은 억관을 당혹스럽게만 합니다. 자신의 할일임에도 피해자 아버지가 직접 나서 살인을 하고 이제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버린 상황은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평생 누구 하나 때려본 적도 없는 아버지는 딸의 죽음과 그렇게 죽어가는 딸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는 순간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딸을 납치하고 마약을 먹이고 윤간까지 하고 버린 이 악랄한 놈들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보고 전자기기 주인이라고 오해하고 훔쳐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들에게는 한 아이의 생명보다 휴대폰과 휴대폰이 더욱 중요할 뿐이었습니다.

 

다른 용의자 얼굴도 모른 채 그저 조두식(이주승)이라는 이름만 추적해갑니다. 조두식을 찾기 위해 떠난 그의 복수극에는 처참한 우리의 현실이 함께 있었고, 그는 눈밭을 뒤져가며 조두식을 찾기에만 집착합니다. 하지만 바로 앞에 자신이 찾던 조두식이 있음에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현과 여론을 위해 살인마이지만 미성년자인 조두식을 보호해야 하는 억관은 이 처참한 상황에 당황스러워하기만 합니다.

 

 

영화는 미성년자의 범죄에 대해 노골적이면서도 강렬하게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미 미성년자의 범죄가 잔인함을 넘어 성인의 범죄 이상인 상황에서 과연 현재의 미성년자에 대한 법률이 정상적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합니다. 내가 상현이라면 과연 그저 법에 맡긴 채 수수방관을 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상현과 비슷한 마음으로 범인을 찾아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억관이 고민하는 모습 역시 당연하게 공감을 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게임시디 때문에 친구를 며칠 동안 때리고, 기절하면 라이터로 지져 깨어나면 다시 때리는 잔혹함을 보인 미성년자는 그렇게 자신의 친구를 죽였습니다. 하지만 그 범죄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행복해 할 뿐입니다.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만으로 자신의 죄 값은 모두 치렀다며 당당해하는 그 학생을 바라보며 억관이 느끼는 지독한 괴리감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감정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 영화의 주제와 하이라이트는 바로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그 한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모든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아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답답함으로 다가오게 했습니다. 마지막 순간 억관과의 통화에서 상현은 자신의 딸이 숨질 때 입고 있었던 옷을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남겼습니다. 이미 세상에 더는 살 이유가 없었던 아빠인 상현은 자신이 행한 복수가 결코 그 무엇도 되돌려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총알도 없는 공기총으로 조두식을 위협하던 상현은 그렇게 스스로 죽음으로서 많은 것을 남기려고 했습니다. 마지막 장면 마지막 하나 남은 총알을 버려둔 채 현장에 나섰던 상현에게는 복수의 방식을 달리하며 스스로 자신의 딸이 있는 곳으로 가기를 희망했습니다.

 

심각한 청소년 범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방황하는 칼날>은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던지고 있습니다. 일본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는 청소년 범죄는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 된지 오래입니다. 잔인한 범죄가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 채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하게 합니다. 

 

상현의 상상 속에서 만약 자신이 직장이 아니라 딸을 마중 나갔다면 이런 처참한 상황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장면은 더욱 처참하게 다가왔습니다. 부당하게 노동시간에 쫓겨 가족을 돌볼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영화 속 성현과 수진은 지속적으로 나올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범죄를 기둥 줄거리로 이어가며 이는 단순히 소수의 비행 청소년의 문제가 아닌, 사회가 만든 구조적 문제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재형 인생 최고의 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열연과 이성민의 조합 역시 최고였습니다. 이 지독할 정도로 암울한 이야기 속에 이 두 베테랑 배우들이 보여준 최고의 연기는 <방황하는 칼날>을 더욱 값지게 해주었습니다.

 

청소년 강력 범죄에 대한 대처 방안이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을 이 영화는 던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아이가 잔인하게 살해당했을 때,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많은 이들은 상현과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영화가 던지는 이 주제는 결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힘겨운 과제겠지만, 우리 모두가 나선다면 시작은 가능해질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우리 모두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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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5 09:16

우아한 거짓말-왕따를 다룬 지독할 정도로 잔인하게 아름다운 이야기

왕따는 점점 지능적으로 잔인해져만 가고 있습니다. 현실에 지독할 정도로 학교에 뿌리를 내린 왕따는 그저 학교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휩싸고 있는 문화라는 점에서 두렵게 다가옵니다.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방법들을 찾고, 방송과 드라마, 영화 등에서 왕따를 자주 다루고 있지만 <우아한 거짓말>은 그동안 나왔던 그 어떤 작품과 비교가 불가한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이하 스포일러 포함)

 

천지의 죽음 후 드러나는 진실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붉은실에 담은 가치

 

 

 

 

너무나 착하고 예쁜 막내딸 천지(김향기)는 아침 일찍부터 자신의 교복을 곱게 다리고 있습니다. 언니인 만지(고아성)의 교복도 다려준다고 하지만, 30분만 지나면 구겨지는 교복을 왜 다려입느냐는 만지는 모든 것이 쿨 하기만 합니다. 마트에서 일을 하는 엄마 현숙(김희애)은 아침잠이 부족해 아이들 식사를 준비하면서도 졸기만 합니다. 

 

 

언제나 엄마와 언니를 챙기는 착하고 예쁘기만 한 딸 천지가 오늘은 이상하게 MP3를 사달라고 합니다. 평생 뭔가를 사달라고 하지도 않던 딸이 뜬금없이 뭔가를 사달라고 할 때도 차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끔찍한 일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딸에게서 생겼다는 사실은 상상 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평범하기만 했던 그날 바쁘게 출근을 서두르던 엄마 현숙은 어린 딸에게 "미안하지만 먹은 그릇들은 물에 담가두고 가"라는 말만 남기고 허무하게 이별을 했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면 결코 그렇게 보낼 수 없었지만, 엄마는 어린 딸의 모습이 그게 마지막 일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뜬 목도리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14살 천지. 그 어린 딸을 가슴에 묻으며 엄마는 이 지독한 아픔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했습니다. 애써 당당한 척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우아하게 거짓말을 하고는 하지만, 이 지독한 상실감을 채울 길은 없었습니다.

 

 

딸의 죽음도 서러운데 집주인은 자살한 천지를 탓하며 집을 비워 달라합니다. 그렇게 낡은 아파트로 입주한 모녀는 짐을 옮기는 것부터 힘겨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낡은 아파트에는 쥐가 들끓었고, 그런 쥐들을 잡는 것조차 그녀들에게는 힘겹기만 했습니다. 옆집 머리 긴 총각이 도와준다고 나서기는 했지만, 모녀보다 겁이 더 많은 그에게 쥐를 잡는 것은 두려운 일일 뿐이었습니다.

 

서먹했던 엄마와 큰딸만 덩그러니 남은 그 집에서 그들은 떠나버린 딸을 잊지 못합니다. 애써 딸의 흔적을 외면하던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딸의 죽음의 이유와 직면하게 되면서 <우아한 거짓말>의 정수를 찾아가게 됩니다. 그들은 왜 우아한 거짓말을 하고 살아야만 했는지, 그렇게 스스로를 거짓 포장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삭막하고 잔인한 세상에서 겨우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우아한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했습니다.

 

천지의 죽음에는 아이들의 왕따가 존재했고, 그 주범으로 지목된 것은 새로 이사온 아파트 근처의 유명한 중국집 딸 화연(김유정)이었습니다. 말 속에 날카로운 칼을 숨기고 은따로 천지를 초등학생 때부터 괴롭혀왔던 화연. 숨죽이고 있던 그 균열은 천지의 죽음으로 터지고 말았습니다. 같은 반 아이들 모두 화연을 외면하는 상황 속에서 진실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왕따는 누군가에 의해 시작되지만 스스로 그 왕따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 모두 공범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우아한 거짓말>이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지독하고 암울한 왕따 문화를 이렇게 섬세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려령 작가의 원작인 이 작품은 그녀의 다른 작품인 <완득이>를 영화로 만든 이완 감독의 작품이었습니다. 전작에서 재미와 의미를 함께 담았던 이 작품은 <우아한 거짓말>에서 보다 완숙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왕따의 근원이 무엇이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던져주는 이 영화는 그래서 위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아픈 우리 일 수밖에 없음을 이 영화는 담담하지만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였던 화연이 큰 고통을 당하며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해 힘겨워하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가해자의 심정이었을 듯합니다. 이 영화가 위대했던 것은 그런 가해자인 화연을 거칠지만 당당하게 감싸던 천지의 언니 만지의 모습이었습니다.

 

 

동생 천지 때문에 화연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하겠다며 이제부터는 너를 지켜주겠다는 언니 만지의 모습은 뭉클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분노로 가득 차있던 만지가 자신의 잘못을 알고도 방법을 몰라 힘겨워하는 가해자 화연을 증오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동생을 위해 따뜻하게 품는 피해자 언니 만지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했습니다.

 

화연을 품고 집으로 향하던 만지가 잠깐 잠이 들어 꿈속에서 천지를 만나게 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천지를 향해 달려가는 엄마와 자신의 모습과 그리고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 전에 도착한 그들은 함께 다행스러워 행복한 웃음을 짓는 모습은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만약 힘겨워했던 천지의 고민을 좀 더 신중하게 들어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컸던 만지에게 꿈속의 천지는 그녀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품게 했습니다.

 

천지가 남기고 간 다섯 개의 붉은 실 속에 남긴 글들은 남겨진 이들에게 큰 아픔이자 고통이었고, 힐링이었습니다. 남겨진 자들에게 살아야만 하는 메시지를 남긴 천지는 마지막 다섯 번째 붉은 실은 자신이 가장 자주 갔던 도서관 책 뒤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남겨둔 마지막 붉은 실. 만약 천지가 죽지 않고 그 메시지를 봤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프고 슬픈 <우아한 거짓말>은 흠잡을 데 없는 최고의 작품이었습니다. 옆집 남자 유아인의 엉뚱함이 흥겨움을 주었고, 김희애의 사뭇 다른 엄마 역할도 상상이상이었습니다. 이제는 성숙한 여성이 된 고아성의 담담하지만 매력적인 모습 역시 이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해주었습니다.

 

먼저 간 딸아이를 가슴에 콘크리트까지 쳐가며 막아났지만, 그것마저도 뚫고 나오는 아이를 잊지 못하는 엄마는 복수를 위해 일부로 가해자의 집 근처로 이사 왔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매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복수가 된다는 엄마의 마음. 그리고 용서를 받지 않으려는 그녀는 용서는 받을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말은 가슴이 저미는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를 추적하며 왜 이런 왕따 문화가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고통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섬세하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작은 원인들이 지독한 현실로 다가오고 가장 쉬운 방법으로 외면하며 상대를 고통주는 이 지독한 현실은 누구 하나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사회 전체가 풀어야만 하는 고민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왕따를 다룬 이야기들 중 <우아한 거짓말>이 최고 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고 명쾌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남겨진 모든 이들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그 중심을 완벽하게 잡아냈기 때문입니다. 잔잔함 속에서 삶의 내면을 면도날로 그어내듯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 영화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그 모든 것을 담아내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는 영민함도 보여주었습니다. 우아한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붉은실을 찾고 싶은 욕망을 품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 지독할 정도로 잔인하게 아름다운 이야기는 축복과도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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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2 08:40

또 하나의 약속-자본 권력에 맞선 영화의 힘, 멍게가 되어버린 우릴 꾸짖고 있다

삼성 반도체에서 벌어졌던 희대의 사건을 다룬 <또 하나의 약속>이 어렵게 완성되어 공개되었습니다. 개봉 전부터 극장 문제로 논란을 가진 이 영화는 결코 대중적일 수 없는 영화임에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영화적 완성도를 따지는 이성적 영화가 아닌 감성으로 다가오는 이 영화의 가치는 바로 멍게와 닮은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한 힘이었습니다.(이하 스포일러 포함)

 

우리 시대 멍게가 되어버린 관객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영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20살 소녀는 백혈병에 걸려 숨지고 말았습니다. 꽃을 피우기도 전에 죽어야 했던 그녀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삼성 반도체에서 일한 죄가 전부였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부자라는 삼성에 입사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그녀와 가족들에게 삼성은 곧 살인자와 다름없었습니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은 영화 속 내용이 전부 실제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거짓말 같은 현실이 사실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강력한 힘을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이라는 거대한 권력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부터 영화 같은 일들의 반복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하나의 약속>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상업적인 성공을 위한 영화가 아닌 자본 권력에 맞서 싸우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위대한 영화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권력마저 집어삼킨 거대한 자본 권력은 우리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는 지독한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본권력에 가장 취약한 이들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영화는 너무 지독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택시 운전을 하는 아빠를 위해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취업을 해야만 했던 故 황유미씨는 삼성 반도체에 취직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라는 삼성에 취직했다는 이유만으로 잔치를 벌일 정도로 그녀와 가족들에게는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노력해 힘들게 돈을 버는 부모님을 돕고 싶었고, 남동생의 대학 입학금을 마련해주고 싶었던 소녀의 꿈은 단 2년이 전부였습니다. 

 

삼성 반도체에 입사한 황유미씨는 2년 만에 아주대병원에서 백혈병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자신이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도 모른 채 치료를 받던 그녀는 자신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백혈병 등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동료가 병원에 입원한 상황임에도 회사에서는 그녀를 찾는 것조차 막는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들이 동료들의 방문까지 막으려 했던 것은 그만큼 자신들의 죄가 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철저하게 회사만을 위하는 그들의 행동은 꽃다운 나이에 자신의 왜 그런 병에 걸려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죽어간 이들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협박도 두려워하지 않고, 부모에게 위로금을 건네면서도 이를 빌미로 산재 처리를 막으려는 노력만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상황에서도 회사가 내놓은 처방은 잔인했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을 능욕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기에 급급한 그들의 행패는 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공단 역시 철저하게 재벌의 편에 서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마저 짓밟는 행위는 모두를 경악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영화는 30여 년 동안 순박하게 택시운전을 하며 살아왔던 아버지의 시선으로 딸아이의 원망스러운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담고 있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마찬가지인 상황에서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500만원에서 시작된 합의금은 10억까지 올라갔지만 그들에게는 돈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돈보다 중요했던 것은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었습니다.

 

회사의 명예를 위해 산재는 결코 할 수 없다는 재벌의 자존심은 노동자의 죽음보다 중요했습니다. 그들의 죽음을 그대로 방치하면서도 지키고 싶었던 것은 오직 자신의 회사의 자존심이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경악하게 합니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보다 값진 것이 그 명예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문제가 발생해 개발도상국으로 이전된 기술. 그런 기술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습니다.

 

 

2014년 1월 현재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인 반올림에서 접수된 피해자는 151명이나 되며 그중 58명이 사명했다고 합니다.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하던 시절 사용했던 독가스가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된다는 사실은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경악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80만원 겨우 넘는 기본급으로 생활할 수 없는 그들은 경쟁을 부추기는 회사로 인해 안전지침을 지킬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회사가 강력하게 조장하고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그렇게 돈 몇 푼이라도 더 벌기위해 독가스에 중독되어 쓰러져갔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서도 여전히 반성조차 하지 않는 재벌의 모습은 악마나 다름없습니다.

 

거대한 자본으로 삼성공화국을 세운 그들은 당당하게 자신들이 아니면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엄청난 자본으로 정치와 언론 등 모든 분야를 자신의 편으로 만든 그들과 싸우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싸웠고 그 어떤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고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계 최초로 반도체 노동자로서 처음으로 산재 판결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2003. 10. 삼성전자 입사, 반도체 원판을 화학물질 혼합물에 담갔다 빼는 3라인 배치
2005. 10. ‘급성 골수성 백혈병’ 판정, 아주대 병원에서 치료시작
2005. 11. 골수이식 수술
2006. 10 백혈병 재발
2007. 01. 이식병동에 입원. 하지만 수술할 상태가 아니라 퇴원
2007. 03. 06 아주대 병원 외래 진료 후 귀갓길에 아버지의 택시 안에서 사망
2007. 09. 삼성반도체 역학조사 후 아버지 황상기씨에게 위로금 10억원 합의 제안
2008. 04~11. 산업안전보건연구원 국내 반도체 산업 종사자 20만명 건강실태 역학조사 발병과 작업환경은 관련 없다고 결론
2009. 05 산재 불인정
2010. 01 서울행정법원에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인정 소송 제기. 삼성반도체 피고 보조인 자격으로 재판 참여
2011. 06. 23 서울행정법원, 황유미•이숙영 등 2명 산재 인정 판결. 근로복지공단•삼성반도체, 불복 항소.
2011. 11. 삼성반도체, 백혈병 발병자 151명, 사망자 58명. 황유미•이숙영 등 산재 소송 2심 진행 중.
2013. 10. 18 서울행정법원 삼성반도체 백혈병 노동자 김경미씨 산재인정

 

산재 판정에 불복한 삼성은 여전히 그들을 상대로 산재 불인정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여전히 소중한 것은 노동자의 죽음이 아닌 자신들의 자존심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들이 거대한 자본의 힘으로 노동자들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국민들은 그들의 죽음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자본이 만들어내는 예술이라는 영화는 자본의 힘이 축약된 결과물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자본과의 싸움에서도 당당함을 보였습니다. 제작두레를 통해 영화를 완성했다는 점에서도 대단한 도전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약속>은 국민들의 힘겹게 죽어간 노동자들을 위해 손을 내밀었다는 점에서도 위대한 한 걸음이었습니다.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 논리에서 돈 없는 국민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만든 이 위대한 기록은 극장에 상영을 하는 과정도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삼성가인 중아일보가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멀티플렉스가 갑작스럽게 상영 중지를 하고 같은 재벌이 운영하는 영화 체인 역시 극장을 막는 파렴치한 행동을 노골적으로 보였다는 점에서도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파렴치한 행동은 국민들의 분노에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부터 상영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이 쉽지 않았던 <또 하나의 약속>은 그 모든 과정이 곧 투쟁의 기록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진정 위대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을 것입니다. 거대 자본에 맞서 싸워 이기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또 하나의 약속>은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법정 싸움을 이어가는 과정 중에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에 국민들의 관심이 많이 모인 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재벌공화국으로 전락한 대한민국에서 더는 재벌공화국이 아닌 국민이 국가가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대사 중에 등장하는 멍게 이야기는 그래서 날카롭게 우리의 폐부를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동물인지 생물인지 질문을 던진 극중 박철민이 들려주는 멍게 이야기는 우리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처음에는 뇌까지 있었던 멍게는 자라면서 스스로 뇌를 자양분으로 삼아 식물이 된다고 합니다. 먹이가 풍부한 바다에 던져져 어느 바위에 붙어 편안하게 일신의 안위만을 위해 사는 멍게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사회가 지독한 악취를 풍기고 있어도 오직 나 하나만 편안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 모든 기능들을 제어한 채 현실에 안주해서 살아가는 비루한 존재로 전락해버린 우리들과 자신의 뇌를 자양분 삼아 동물에서 식물로 전락한 멍게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멍게와 같은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인간다운 삶을 살 것인지는 각자 개인의 몫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인간으로 태어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 뇌까지 퇴화시키는 멍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안위만이 아닌 우리 주변을 돌아보는 모습을 잊지는 않아야 할 듯합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고인이 된 반도체 노동자들을 위한 영화가 아닌 이미 스스로 멍게와 같이 식물이 되어가고 있는 우리를 위한 영화일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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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5 10:17

또 하나의 약속 메가박스 논란 속 국민들이 선택한 또 다른 변호인이 될 수 있을까?

삼성전자의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의 삶은 담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조차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자본이 지배 권력이 된 세상에 대한민국 최고 부자라는 삼성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영화는 당연히 힘들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국민의 힘마저 막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백혈병으로 숨진 삼성 노동자의 삶, 그들이 진실을 막을 수는 없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백혈병이 연속으로 걸린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하지만 삼성이라는 거대한 이름 앞에 이 문제를 노골적으로 제시할 수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삼성 눈치 보기에 급급한 대한민국에 그들을 누를 수 있는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삼성을 누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결국 국민이라는 사실을 이번 사태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3년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 입사한지 3년 만에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황유미씨의 실제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준비 단계에서부터 큰 화제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지배자를 자처하는 삼성 공화국에서 노동자가 숨진 사건은 결코 사회에서 큰 화두가 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였습니다. 당연하듯 삼성전자의 잘못으로 백형병이 걸려 숨진 노동자에 대한 문제는 크게 거론되지 못하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반도체라는 첨단산업의 이면에는 노동집약적 산업의 민낯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땀과 피를 뽑아 삼성이 거대 자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들의 거대하고 화려한 로고 뒤에는 이를 위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피땀을 흘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황유미 사건은 우리 사회에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통해 비열한 삼성 공화국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준 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삼성변호사로 그의 폭로도 삼성을 바로잡지는 못했습니다. 국가 권력마저 하나가 되어 삼성을 지키는 상황에서 소수의 양심폭로는 큰 힘으로 작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동자의 죽음은 변호사의 고백과는 달리 보다 큰 힘으로 다가왔습니다.

 

삼성 반도체 산재 사건은 2007년 황유미씨가 사망한 뒤, 아버지 황상기씨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대한민국 최고라는 삼성전자에 입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웠던 그들이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잔인한 삼성의 현실은 그들이 선망했던 거대한 기업과는 달랐습니다.

 

 

삼성 반도체 사건과 관련해 대책위인 '반올림'이 꾸려졌고, 피해자들의 사례를 수집해 지금까지 151명의 피해자가 접수됐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중 58명이 사망한 삼성 반도체 사건은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삼성 반도체 사건은 황유미씨를 비롯한 5명이 행정소송을 진행해, 황유미씨와 2인 1조로 근무했던 이숙영씨 두 명이 2011년에 승소해 산재로 인정받았습니다.

 

수 천 만원에서 시작해 수 십 억까지 내세우며 산재를 막으려는 삼성의 악랄함은 단순히 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력자를 제외하고 황상기씨만을 입회시킨 작업 환경 측정 조사는 황유미씨가 근무하던 때와는 다른 작업환경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밝혀야만 하는 언론은 철저하게 삼성의 편에 서 있기만 했습니다.

 

모든 국가권력과 언론은 모두 삼성의 편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의 편에 서야만 하는 노동부 역시 철저하게 반도체 공장에서 쓰는 화학물질 목록을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는 것 역시 황당함 그 이상이었습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시 비호지킨 림프종과 백혈병이 본질적으로 같은 병이라는 사실도 무시한 채 백혈병과 무관하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정보와 권력을 독점한 재벌이 벌인 노동자 탄압의 끝은 죽음이라는 실체적인 진실이 있음에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돈만 많으면 그만이라는 사회적 풍토는 삼성의 편을 들어주었고, 그런 현실은 결국 노동자들의 연이은 사망과 질병을 방치하고 감추기에만 급급했습니다. 그 지독한 우리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약속>은 그래서 중요한 영화입니다.

 

 

거대 자본을 앞세운 삼성공화국을 상대로 노동자가 승리를 하는 경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런 불가능에 도전해 일군 이 성과는 포기하지 않는다면 진실은 결국 밝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 사례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노동자와 가족들이 만들어낸 결과는 영화가 되어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메가박스가 영화 개봉을 이틀 앞두고 예매를 받던 상영관수를 15곳에서 이날 오후 3곳으로 줄였다. 관객 수요가 충분한 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또 하나의 약속>을 배급하는 OAL은 메가박스가 일방적으로 상영관수를 축소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미 확보된 상영관마저 축소한 것은 외압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매율이 1위를 달리는 영화가 상영관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축소가 되는 경우는 실질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부산의 경우 이미 예매표까지 판매한 상황에서 갑자기 취소되어 예매한 관객들에게 관람표를 환불하는 상황은 말도 안 되는 일일 뿐입니다. 왜 메가박스는 환불까지 하면서 <또 하나의 약속>의 상영관을 축소할 수밖에 없는지는 그들의 지배 구조에 삼성가인 중앙일보의 지분이 상당하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하게 메가박스의 주인인 삼성의 문제를 비판하는 영화를 상영해서는 안 되는 절박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같은 재벌가인 롯데는 전국 96개 극장 중 단 7곳에서만 상영을 합니다. 자신들의 일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취하는 행동은 동업자 보호라기보다는 자신들의 민낯도 언젠가는 공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느끼는 불안함과 불편함의 발로일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형제의 난이라고 불리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CJ의 CGV가 전국 45곳의 상영관을 확보했다는 사실입니다.

 

삼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투자도 받지 못해 제작두레를 통해 힘들게 만든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우리 사회의 재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영화입니다. 수많은 악재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약속>이 과연 <변호인>의 뒤를 이어 국민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가 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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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7 07:07

수상한 그녀-심은경이 외치는 유쾌한 비바 할매가 반갑다

이제는 죽음이 더욱 가까워진 누군가가 어느 날 갑자기 가장 화려했던 청춘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을 해봤을 법한 상상이기도 할 것입니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청춘으로 돌아간 오말순 여사의 오두리의 인생은 그래서 흥미롭기만 합니다.(이하 스포일러 포함)

 

조금은 부족해도 충분히 흥미로웠던 비바 할매 이야기

 

 

 

 

할배들의 배낭여행을 담은 <꽃보다 할배>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노년의 삶이 점점 우리의 일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할배들의 배낭여행은 자연스러운 결과였습니다. 실버시대라는 단어가 나온 지 10년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실버시대에 대한 정겨움이 없는 상황에서 <수상한 그녀>의 비바 할배는 그래서 더욱 애절하면서도 즐거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들 자랑이 모든 것인 욕쟁이 할머니 오말순(나문희)은 대학교수인 아들이 모든 것이었습니다. 말순의 아들 사랑이 커지면 커질수록 며느리인 애자(황정민)의 고통은 더욱 커지기만 합니다. 항상 아들이자 남편인 반현철(성동일)만 감싸는 시어머니 말순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극심한 애자는 병이 들었습니다. 큰 딸인 하나(김슬기)는 집에서 놀고 있고, 아들인 지하(진영)는 이상한 음악이나 한다고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희망이 없는 애자의 병이 커지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시월드로 병을 얻은 애자로 인해 노인전문가인 현철은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 생각하는 어머니와 부인 사이에서 뭔가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택의 순간 그들은 엄마를 위해 말순을 요양원으로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노인전문가인 교수 아들을 자랑하고 살았던 말순이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뿐입니다. 평생을 아들 하나를 믿고 살았던 자신의 인생이 허망하게 다가오던 그때 말순은 한 사진관으로 향합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 오드리 헵번의 사진을 보고 들어선 그곳에서 영정 사진을 찍고 나온 말순은 놀라고 맙니다. 자신이 칠순을 넘긴 말순이 아닌, 20대 모습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스스로 바라본 자신은 분명 20대 가장 아름다웠던 말순의 모습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가장 화려했던 20살 말순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 역시 자신을 70을 넘긴 요양원에 가야 할 할매가 아닌 20살 오드리(심은경)로 봐준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오드리가 된 말순은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현재의 자신의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요양원으로 향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녀가 선택한 것은 바로 박씨(박인환)의 집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떵떵거리던 집안의 딸로 행복한 삶을 살았던 말순의 집을 살기 위해 찾았던 박씨였습니다. 말순을 아가씨라 부르며 짝사랑했던 박씨는 그렇게 평생을 그녀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 남자였습니다. 

 

오갈 데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버린 오드리가 된 말순의 그 집에서 20살 오드리의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좋아서 했던 결혼은 남편이 독일 광부로 떠나고 난 후 죽고 나서 지독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남겨진 아들을 키우기 위해 지독할 정도로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 했던 말순에게 자신의 삶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아들을 살리고 바르게 키우기 위해 그 어떤 짓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던 말순에게는 오직 아들을 위한 삶만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주어진 삶을 살게 된 오드리는 행복했습니다.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청춘을 얻게 된 오드리는 할매 시절 2만 원 짜리 신발 하나 사지 못하고 살았던 자신과 달리,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삶을 살며 행복해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노래를 잘했던 오드리는 그렇게 마음껏 노래를 하면서 새로운 행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음악을 찾던 한승우(이진욱)의 눈에 띄어 방송 출연까지 하게 된 오드리와 손자 지하의 밴드는 자신만의 음악으로 대중들 앞에 나섭니다.

 

영화는 장자의 '호접지몽'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한 여름 밤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장 절박한 순간 손을 잡아준 신가한 현상 속에서 다시 젊음을 되찾은 한 여인이 못다 이룬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사실은 흥미롭기만 합니다. 짧게 끝나버린 사랑에 대한 아쉬움은 멋진 훈남 피디와의 새로운 사랑으로 보상 받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룬 듯한 그 순간 그녀에게는 다시 한 번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이 주어집니다.

 

손자가 사고를 당하고 급하게 수혈을 해야 하는데 가족 중 유일하게 혈액형이 같은 말순만이 급하게 수혈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수혈을 하게 되면 젊음을 빼앗기고 다시 칠순 할매 말순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그녀의 선택은 확고했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던 그녀가 꿈꾸는 삶은 아들과 손주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믿을 수 없었던 아들은 오드리의 모습과 젊은 시절 자신의 어머니가 판박이처럼 닮았음을 사진을 보고 확인하게 됩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이지만 자신의 딸보다 어린 나이의 어머니를 보며 아들 현철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잊고 자신의 삶을 살라고 애원합니다. 더는 자식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말고 오직 자신을 위한 삶을 살라는 아들의 애원 속에서 그녀의 선택은 하나였습니다. 과거나 현재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가족들을 위한 사랑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영화는 단순합니다. 만약 할머니가 20대 청춘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어졌습니다. <도가니>를 만들었던 황동혁 감독이 그 영화보다는 전작인 <마이 파더>의 새로운 버전의 유쾌한 <마이 머더>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재미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던 황 감독은 이번에는 어머니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어갔습니다. 비록 영화적 완성도가 아쉽기는 하지만 그런 아쉬움마저 삼킬 정도로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흥미로웠습니다.

 

<수상한 그녀>는 황 감독의 아버지에 이은 어머니를 그리는 특별한 오마주와 같은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일등공신은 바로 오드리를 완벽하게 연기한 심은경의 몫이었습니다. 만 19살인 그녀가 보인 칠순 할매의 연기를 맛깔나게 보여준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20살이 된 그녀가 보여준 농익은 연기는 그녀의 연기자로서의 삶을 더욱 기대하게 합니다. 단순하지만 그 안에 가족의 행복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롭게 유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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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5 09:02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스콜세지와 디카프리오가 미 자본주의 본질을 이야기 하다

미국을 세계 최고의 부국으로 만든 자본주의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수많은 서적들은 자본주의를 찬양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신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보다 고착화된 자본주의의 속내를 드러내며 부의 집중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과연 우리에게 자본주의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더욱 깊게 합니다.(이하 스포일러 포함)

 

미국의 허상이 만든 자본주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다

 

 

 

 

아메리칸 드림이 실체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했던 이들이라면 이 영화는 필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이클 무어의 <자본주의:러브 스토리> 역시 허상인 자본주의의 적나라함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다큐와 달리 극영화로 만들어진 마틴 스콜세지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의도적으로 보고 싶지 않았던 자본주의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사실은 재미있었습니다. 

 

 

술과 마약, 그리고 섹스는 미국이 자랑하는 자본주의 실체라고 외치는 스콜세지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여전히 장밋빛 그림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을 움직이는 월스트리트을 담고 있는 이 작품 속에서 주장하는 자본주의는 곧 우리가 허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자본주의의 실체라는 점은 분명할 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돈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대단했던 조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어린 나이에 채득한 조던은 그 돈을 위해 월스트리트를 꿈꿉니다. 거대한 황소상이 있는 월스트리트에 입성하면 자신이 원하는 돈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조던은 열심히 노력해 그가 원하는 곳에 입성하게 됩니다.

 

월스트리트 입성 한 날 최악의 상황은 터지고, 조던은 한순간 실업자로 전락하고 맙니다. 모든 것이라 생각했던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일자리를 빼앗긴 그를 다시 주식시장으로 이끈 것은 그의 부인이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조던을 잘 알고 있었던 그녀로 인해 그는 다시 주식시장으로 향합니다. 월스트리트가 아닌 마이너리그와 같은 허름한 곳에서 그는 자신의 진가를 완벽하게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꿈꾸었던 엄청난 금액의 주식 거래가 아닌 소꼽장난 같은 거래였지만, 그는 그곳에서 화려한 언변과 탁월한 능력으로 말도 안 되는 성공신화를 쓰기 시작합니다. 뭐든지 자신이 원하면 팔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는 주식 시장의 본질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그는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주식시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식당에서 우연하게 만나 사업적 동지가 된 대니(요나 힐)과 함께 자신의 친구들을 모아 증권회사를 차린 조던은 주식시장의 원리가 실체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주식은 단순히 가능성과 희망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파는 것임을 알고 있던 조던은 자신이 만든 매뉴얼을 통해 바보 같은 이들도 주식시장의 총아가 될 수 있게 만들어냅니다.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동네에서 마리화나나 팔고, 답답하고 멍청하기만 했던 친구들은 조던의 매뉴얼로 인해 엄청난 돈을 버는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그저 무조건 전화를 걸어 그럴 듯한 이야기로 인간의 욕망을 건드리고 이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만들어내는 그들에게 주식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의 모두 그렇듯 허름한 창고를 빌려 시작한 그들은 마침내 월스트리트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저 화려한 언변만으로 월스트리트의 떠오르는 태양이 된 조던은 포브스 지의 비판은 그에게 강력한 날개로 다가왔습니다. 실직 후 방황하던 자신을 잡아주던 부인은 다시 한 번 자신의 비판적인 기사가 곧 성공의 이유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습니다.

 

 

포브스 기자는 허튼 언변으로 성공한 돈만 아는 조던에 대한 비판 기사는 오히려 그를 월스트리트의 스타로 만들어놨습니다. 오직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수많은 어린 조던들은 그를 찾아 일자리를 원하는 수많은 이들로 인해 조던의 회사는 갑자기 두 배로 커지며 월스트리트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성공은 곧 그들에게 자본주의의 천국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전통적인 산업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주식시장은 분명 미국 자본주의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민들을 상대로 벌이는 주식시장의 오너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자본의 힘을 만끽하게 되고 그렇게 자본이 집중된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한 일탈이 전부였습니다. 넘치는 돈으로 자제력마저 상실한 그들의 일상은 좀 더 강력한 자극을 원하게 되고, 그런 자극에 취해 스스로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도 제어를 하지 못하는 조던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증권 회사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들을 대하는 모습은 종교 단체의 부흥회를 연상하게 합니다. 돈이 곧 신이 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들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오직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확신이 가득한 현대인들에게 돈은 곧 마약이자,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마피아들의 삶을 심도 깊게 다뤘던 마틴 스콜세지의 월스트리트 이야기는 역시 남달랐습니다. 올리버 스톤이 다뤘던 <월 스트리트> 시리즈보다 더욱 강력하고 확실하게 핵심을 공략한 스콜세지의 연출력은 최고였습니다. 이 영화 이후 연기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말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조던 벨포드라는 배역에 쏟아냈습니다. 탁월한 외모에 화려한 언변만으로 세계 증권가의 왕이 된 그는 자본주의의 모든 것을 스스로 체험하는 독보적인 존재로 활약합니다.

 

한 사람의 흥망성쇠를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달콤함과 잔인함을 모두 담아냈다는 점에서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꼭 봐야만 하는 영화입니다. 영화 내내 거친 말들과 포르노그라피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마약과 술에 찌든 인물들을 봐야만 한다는 사실은 역겹기까지 합니다. 주인공들은 언제나 선하고 좋아야 한다는 편견을 완벽하게 깨버리고 엉망진창의 주인공들에게 몰입하게 만드는 스콜세지와 디카프리오는 그렇게 날 것 그대로의 자본주의를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불쾌함을 느꼈던 관객들이라면 왜 자신이 그렇게 불쾌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보이는 화면이 주는 불쾌함이 아니라,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조던이 초반 볼펜을 자신에게 팔아보라며 친구에게 제안을 하는 장면이 이제는 자신의 성공담을 듣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일반인들에게 오버랩 되는 과정에서 그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자신일 수도 있다는 동질감을 느꼈을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면서도 자신에게 그런 엄청난 돈의 유혹이 찾아온다면 두말없이 손에 움켜쥐려고 하는 것이 현대인의 속성입니다. 현대인이라 시대를 구분할 필요도 없이 인간의 욕망이 아무런 제재 없이 표출되는 현실 속에서 돈이면 뭐든지 가능해진 천민자본주의 속에서 인간의 탐욕은 돈이라는 가치 앞에서 끝없이 타오르기만 합니다.

 

모든 것을 겪고 자신의 삶과 천민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던 조던 앞에 앉아 있던 수많은 이들은 자본주의의 문제를 들여다보기 보다는 화려함에 취해 모두가 그 엉망이 되었던 조던의 돈에만 욕심을 내고 있는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잔인할 정도로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신봉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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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6 09:02

어바웃 타임-삶을 관조하는 멋진 제안, 하루를 소중하고 멋지게 즐겨라

우리에게는 <러브 액츄얼리>로 유명한 리차드 커티스의 신작인 <어바웃 타임>이 다시 겨울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스테디셀러 영화로 유명한 그의 작품에는 특별하지는 않지만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가득하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 영화 역시 그런 그의 특징이 잘 살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이하 스포일러 포함)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남자의 행복한 사랑 쟁취기

 

 

 

 

 

미래를 먼저 가볼 수는 없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어떨까? 비록 자신의 시간 안에 국한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능력은 유용한 능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수를 만회하고 다시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할 수 있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별한 능력입니다. 

 

 

팀(돔놀 글리슨)은 바닷가에서 50에 대학교수직을 그만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삼촌, 여동생과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아갑니다. 21살이 되는 날까지 바닷가에서 편안하게 커피를 마시며 행복한 삶을 살던 팀의 가족들에게는 은밀한 비밀이 존재했습니다.

 

그들 집안의 남자들만 과거 시간을 여행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아버지(빌 나이)에게 전해들은 팀은 장난치고는 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 이상한 상황에서 아버지의 이런 고백은 팀에게는 지독한 장난으로 다가올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고백이 거짓이 아닌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두 주먹을 꽉 쥐고 자신이 생각하는 시간으로 이동하는 것이 망상이나 장난이 아닌 진실이라는 사실은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신년 파티에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의미로 아버지의 말처럼 해봤던 팀은 실제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그의 아름다운 삶은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 자신 역시 이제 성인이 된 아들에게 집안의 비밀을 들려주고 이제는 아버지의 비밀이 아닌 자신의 것이 된 이 신기한 능력에 팀은 어떻게 할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바다가 보이던 집을 떠나 런던으로 향한 팀의 생활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동료인 극작가 해리(톰 홀랜더)의 집에서 생활을 시작한 팀은 낯설기만 한 그곳에서 운명의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동료에 의해 찾은 블라인드 식당에서 운명과도 같은 여인 메리(레이첼 맥아담스)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메리의 바람은 대사를 잃어버려 망쳐버린 연극을 살리기 위한 노력으로 모두 놓치고 맙니다.

 

되돌린 시간으로 인해 다시 동일한 인연을 만들지 못한 팀은 그녀가 좋아하는 모델 케이트 모스의 전시장으로 향합니다. 그곳이라면 분면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전시장에서 극적으로 만남 메리에게 이야기를 거는 팀이지만, 팀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메리에게 그의 모습은 이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그 시간으로 인해 이미 메리의 곁에는 새로운 남자 친구가 존재했습니다.

 

메리의 친구인 조안나(바네사 커비)가 연 파티에서 남자를 만났다는 사실을 안 팀은 시간을 되돌려 그곳으로 향하고, 홀로 있던 메리와 다시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이미 메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있던 팀에게 이런 반복은 큰 행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시간여행의 덕으로 연인이 된 팀과 메리는 운명마저도 스스로 개척하는(물론 보통의 우리에게는 상상마저도 쉽지 않은 시간여행이라는 무기로 만들었지만) 그의 모습은 흥미로웠습니다.

 

 

운명처럼 다가왔던 단 한 번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낸 팀은 그렇게 메리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으며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 새로운 집도 마련하고 거칠 것 없이 행복할 것 같았던 팀에게도 불행은 존재했습니다. 가족들이 너무나 사랑하는 여동생 키트(리디아 윌슨)가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변호사가 되고 운명과 같은 여자 메리를 만나 아이까지 낳으며 원하던 삶을 사는 팀과 달리,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술에 쩔어 사는 키트에게 삶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술과 사회 부적응은 이상한 남자와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망가진 키트의 삶은 고비를 맞게 됩니다. 남자친구의 폭행을 피해 도망쳐 나온 키트가 교통사고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동생을 구하기 위해 시간여행을 해보지만, 자신이 아무리 시간을 돌려놓는다고 해도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반복된 상황만 주어진다고 바뀔 수 있는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 속에서 얻은 팀의 지혜는 현실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상으로 누워있는 여동생이 바뀐 삶을 살기 원하는 팀은 메리와 함께 병실을 지키며 그녀 스스로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도록 다짐을 하게 합니다. 지독한 운명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오빠로 인해 키트는 자신을 오랜 시간 사랑해준 오빠 친구와 사귀게 되고 결혼까지 성공하게 됩니다.

 

너무 행복해 더는 원하고 싶은 것도 없을 정도로 행복한 팀에게 마지막 고비는 바로 아버지의 죽음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알려준 아버지가 암으로 인해 시한부 판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버지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금까지 얻은 그 모든 것을 버려야 했습니다. 결코 쉬울 수 없는 그 선택을 앞둔 팀에게 아버지의 당부는 당연했습니다.

 

팀의 운명과 상관없이 그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시작된 암의 태동은 팀이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서 달라질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고 한없이 슬퍼하던 그들도 시간이 흐르며 자시 자신들의 삶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팀은 자신이 원한다면 수많은 새로운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곁에서 잠들어 있는 아내와 아이들과의 삶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시간 여행처럼 그의 삶은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가 알려준 마지막 삶의 방식에서 하루를 다시 반복해서 살아보던 팀은 그 안에서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일상에 놓인 소소해서 더욱 아름다운 우리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하루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그의 다짐은 바로 영화 <어바웃 타임>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주제였습니다.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설정은 익숙하지만 낯설었습니다. SF영화가 아닌 로맨틱 코미디에서 다룰 법한 소재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커디스가 관객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는 시간여행이 아닌, 우리의 삶에 대한 관조였습니다.

 

시간여행이라는 틀은 그저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한 그릇에 불과했습니다. 그릇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이어질 수는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릇에 담긴 음식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어바웃 타임>은 시간여행이 아닌 그들이 보여준 삶에 모든 것이 맞춰져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의 핵심은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팀에게 남긴 선택에 놓여 져 있었습니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 그가 얻은 깨달음은 단순하고 명쾌했습니다.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현재의 부인과 아이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팀이 선택한 삶은 현재에 충실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불만족스럽다고 고민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 그리고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곧 최선이라는 이야기를 건네는 <어바웃 타임>은 단순히 재미있기만 한 영화가 아니라, 큰 울림이 남은 영화였습니다.

 

뛰어난 글솜씨로 많은 관객들과 영화인들을 황홀하게 했던 리차드 커티스는 이번에도 그의 장기인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속에 단순한 웃음만이 아니라 삶을 관조하는 페이소스까지 얹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한 것일지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영화를 보는 내내 고민하게 하는 <어바웃 타임>은 정말 흥미롭고 유쾌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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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2 08:14

변호인 600만에 담은 관객의 꿈, 아바타의 1362만을 넘어설 수밖에 없는 이유

송강호 주연의 영화 <변호인>이 개봉 보름만에 600만이라는 관객 동원에 성공했습니다. 개봉 전 과연 흥행이 가능할까에 대한 우려는 개봉 첫날부터 깨졌고, 그 거대한 관객의 힘은 현 정권의 무능과 불통에 대한 분노와 같아지면서 <변호인>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기만 합니다.

 

불통의 정치를 우습게 만드는 영화 <변호인>의 위대한 힘

 

 

 

 

불통과 독선의 정치를 이끄는 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 한 대학생의 대자보인 '안녕들하십니까'가 청년들에게 깨달음을 던져주더니, 영화 <변호인>은 분노를 어떻게 풀어낼지 모르던 국민들에게 친구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과거를 이야기하면서도 과거가 아닌 현실이 되어버린 30년 전 이야기 속에 수많은 관객들이 호응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단순히 영화가 주는 매력이 강력해서는 아닙니다. 그들이 끊임없이 극장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의 무게는 현실의 답답함과 아픔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두환 시절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의 현실이 그보다 더했던 박정희 시절과 다르지 않게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는 국민들에게 <변호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지침서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 권력이 국민을 억압하는 상황에서 30년 전 당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고 국민들 앞에 섰던 한 변호사의 역할이 엄청난 힘으로 발전해 문민정부의 씨앗이 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80년 군부독재가 이어지며 광주 시민들을 간첩으로 몰아 학살하던 시절 언론은 통제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81년 부산의 부림사건은 신군부가 정권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벌인 또 다른 광주 학살 사건의 재현이었습니다. 물론 군대를 이끌고 학살을 주도하는 식의 살육이 아닌, 국가보안법 조작사건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잠재우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습니다.

 

당시 악랄한 조작 검사로 활약했던 최병국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내며 승승장구 했습니다. 무고한 시민을 공산주의 신봉자로 몰아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한 공로로 특혜를 받고 국회의원 배지까지 받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런 악랄한 행동을 한 최병국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최병국이 느끼는 현재가 과거 30여 년 전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변하고 상황을 바뀌었다면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최병국과 같은 존재가 이렇게 당당해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박정희식 독재로 회귀하는 한국 사회는 과거 국가권력이 조직적으로 국민을 억압하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의 뻔뻔함에는 이런 한국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변호인>의 가치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는 새해 들어 첫 날 600만이라는 엄청난 스코어를 찍었습니다. 개봉 보름 만에 600만을 넘긴 이 영화가 얼마나 흥행에 성공할지 현재로서는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대한민국 영화 흥행 역사를 새롭게 작성했던 <아바타>의 1362만 명은 넘길 것이라는 것입니다. 첫 날 개봉보다 뒤로 갈수록 많은 관객들이 몰리고 있는 이 영화는 구전의 힘과 현실적 답답함이 절묘하게 결합하며 무한한 동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변호인>이 한국 영화사상 최다 관객 기록을 작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박근혜 정권이 혁혁한 공헌을 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불통과 강압, 그리고 박탈의 정치를 하는 그들로 인해 <변호인>은 날개를 달았습니다. 사실 <변호인>과 같은 영화는 더는 흥행에 성공해서는 안 되는 영화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반응을 보여야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과거 먼 시절의 이야기라고 느끼지 못하고 현재 우리의 일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30년이나 더 지난 군부독재 시절의 이야기에서 공감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 슬픈 일입니다. 누군가 강요해서 600만이라는 엄청난 관객들을 불러 모을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의 사탕발림으로 극장을 찾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자발적으로 수많은 국민들이 <변호인>을 향해 문을 열고 있는 것은 현실이 과거 30여 년 전 독재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우리의 편이 되어 당당하게 국가권력의 만행에 맞서줄 변호인을 국민들은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자신의 안위와 부귀영화만 추구하는 정치꾼들이 아닌, 당당하게 억울하게 국가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고 있는 힘없는 이들 앞에서 국민의 권리를 주장할 변호인을 국민들은 원하고 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국민들의 분노는 결과적으로 현실에 대한 불만족이 가져온 산물이 되었습니다. 그런 관객들의 염원과 현실적인 꿈은 결국 영화 <아바타>가 보유하고 있는 최다관객 신기록을 경신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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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3 11:16

변호인 100만과 변호인 예매취소, 대한민국 소통과 불통을 이야기 한다

변호인이 개봉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고 120만 관객을 넘어서며 순항 중입니다. 수구세력들이 평점 폭탄을 날리고, 비난을 하는 상황에서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변호인>이 담고 있는 보편타당한 정의에 공감을 표하고 있습니다. 친일과 종복놀이가 전부인 수구세력들은 결코 상상할 수도 없는 사회 정의에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소통을 하려 한다는 사실은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억압과 탄압 속에서도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만들어냈었다

 

 

 

 

영화 <변호인>은 단순히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한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는 한 시대를 살아간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불의에 맞서 정의의 편에 선 한 변호사를 통해 그 시대의 불합리함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현 정권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렵고 무거운 주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대중적으로 성공하기 힘든 영화였습니다. 송강호라는 배우가 출연한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소재나 제작진들의 면면을 보면 대중들이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영화였습니다. 80년대 부림사건을 소재로 한 실제 이야기는 영화적 소재로서 흥미로울 수는 있지만, 상업영화들이 득세하는 영화 시장에서는 그리 흥미로운 존재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공권력이 만든 간첩사건을 영화화한 이 작품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현 정권의 공이 가장 컸습니다. 30년도 지난 이 사건이 이렇게 크게 화제가 되고 많은 이들에게 필견의 영화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바로 현 정권이 30년 전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공권력이 나서 공안 정치를 하고, 이를 통해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어낸 상황이 과거와 너무 닮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사실을 그대로 담아냈지만, 이 내용이 과거가 아닌 현 정권에 부담을 주는 작품이라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변호인>은 분명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자신의 권력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용공조작사건이었습니다. 분단국가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인 북한과 관련된 문제를 조작해 만들어낸 이 사건은 결국 민주화로 가기 위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전두환이 박정희를 이어 군부독재 정권을 수립하고, 자신의 권력을 돈독하게 하기 위해 광주 시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북한 간첩이 광주를 점령했고 이를 소탕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행위였다는 전두환은 자국민을 학살하고 그 피의 대가로 권력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런 전두환이 다음해에는 부산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부림사건을 조작했고, 그 사건은 곧 위대한 존재를 만들어냈습니다.

 

세금 전문 변호사로 큰 성공을 거두었던 노무현 변호사가 부림 사건을 계기로 인권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정치인이 된 노무현 변호사는 청문회에서 전두환을 호되게 야단치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가장 통쾌한 모습으로 기억될 정도로 역사적인 장면들이었습니다. 대결과 경쟁이 아닌 함께 하는 사회를 꿈꾸었던 그는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비록 무너지고 피폐해져버렸지만, 그럴수록 그가 그리워지는 것은 이런 무너진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용공조작사건은 이제는 '종북놀이'로 되살아나 과거와 다름없는 정권 다지기에 나서는 모습은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마치 국민들은 바보이고, 자신들의 영원한 테마인 북한을 앞세운 권력 휘두르기가 다시 한 번 큰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망상은 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 벌이고 말았습니다. 공당을 파괴하고, 현역 국회의원을 음해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그들은 이성마저 마비되어 보였습니다.

 

30년 전이나 다름 없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변호인>이라는 영화를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가 이 영화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성공은 아이러니하게도 현 정권이라는 사실은 재미있기도 합니다. 영화 속 내용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민주화된 현재였다면, 이 영화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30년 전 과거를 담고 있는 영화가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은 끔찍함을 전달했고, 많은 이들을 극장으로 이끄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변호인>은 지난 주말 전국 923개관에서 138만 110명(매출액 점유율 45.2%)을 끌어모아 466개관에서 38만 1천794명(13.2%)을 동원한 데 그친 <호빗:스마우그의 폐허>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습니다. 18일 개봉한 <변호인>은 이미 누적 관객 수가 175만 2천162명을 넘어서며 엄청난 흥행 기록을 세워나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나선 송강호는 한 해 2000만 명의 관객을 모은 유일한 배우로 자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특별한 의미를 담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이 작품에 일부 수구세력들이 보이는 한심한 작태들은 황당하기만 합니다. 별점 테러에 이어 이제는 극장 예매를 이용한 테러까지 행하는 모습은 추해 보일 뿐입니다. 시작 20분 취소가 가능한 것을 이용해 대량으로 티켓을 구매하고 취소하는 형식으로 <변호인>들을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치졸해 보일 뿐입니다. 어떻게든 이 영화를 보지 못하게 하는 행위는 이 영화에서 주장하는 사회 정의를 부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용공조작사건과 종북놀이가 너무 유사하다는 것은 자신들도 느끼는 것일 테고, 이런 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변호인의 노력을 담은 이 영화는 그래서 두렵기만 헸을 것입니다. 30여 년 전의 이야기마저 과거가 아닌 현재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에는 그저 "응답하라" 열풍만이 아니라, "안녕들하십니까" 열풍까지 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영화 <변호인>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영화에 대한 테러를 하면 할수록 영화를 보려는 이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음을 이제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변화를 막아서려 노력하는 집단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사회에 분노하는 것은 국민들의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통해 국민들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가는 것이 곧 권력의 할 일이라는 점에서 <변호인>의 흥행 열풍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왜 30년 전 이야기가 이렇게 열풍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지는 이제 현 정권이 고민해야만 하는 과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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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9 06:26

변호인-30년 전 송강호가 우리에게 던지는 한 마디 안녕들하십니까?

30년 전 송강호는 스크린을 통해 2013년을 사는 우리에게 넌지시 하지만 강렬하게 "안녕들하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과연 우리는 30년 전과 비교해 정말 안녕들한지 모르겠습니다. 사회는 변한 것이 없고 우리의 삶은 그때나 지금이나 팍팍한 상황에서 우린 다시 30년 전 송강호를 향해 "안녕하지 못 합니다"라고 말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한스럽기만 합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시대정신을 이야기하는 변호인, 가슴으로 보는 영화 

 

 

 

 

격변의 시대 고졸 변호사의 성장기를 다룬 <변호인>은 우리 시대 필견의 영화일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기 영화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이들을 위한 영화라는 점에서 색안경을 쓰고 볼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변호인>이라는 영화에는 노 전 대통령보다는 정의에 눈을 뜨기 시작한(혹은 그렇게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우리의 모습이 담겨져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지독한 가난으로 상고를 졸업한 후 대학입학을 하지 못했던 송우석(송강호)은 사법고시에 합격하며 새로운 삶을 살시 시작했습니다. 판사로 재직하며 큰 야망도 품기도 했지만 그는 고향 부산으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철저한 학벌 사회에서 고절 판사가 버틸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졸 판사가 할 수 있는 일보다는 고졸 변호사로서 잘 사는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 송우석은 선배를 찾아 변호사 개업을 위한 돈을 빌리게 됩니다.

 

판사 시절 느낄 수밖에 없었던 고졸이라는 한계는 변호사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 세계에서도 학벌은 중요한 인맥으로 작용하고 살아가는 이유와 살아갈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매개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가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돈이 전부였습니다. 돈이 곧 신분 상승이 되는 세상에서 돈을 버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던 우석은 부동산 등기를 대신해주는 틈새시장 공략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합니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우석의 행동은 동료 변호사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고, 그렇고 시작된 우석의 부동산 등기 변호일은 그에게 큰 성공을 안겨주었습니다. 사무장도 생기고 쥐가 들끓던 남의 집을 벗어나 자신이 직접 벽돌을 쌓았던 아파트로 이사까지 한 그에게는 성공이라는 값진 열매가 존재했습니다.

 

어렵던 시절 아이가 태어나던 날 그는 고시원이 아닌 아파트 건설 현장에 있었습니다. 가장이 되어 자신의 가족도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은 그에게는 큰 무게로 남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모님과 부인을 속이고 있던 그는 가족 앞에 차마 고시공부를 그만 두었다는 말은 할 수 없었습니다. 우석이 결정적인 고시 공부에 매진하게 된 것은 국밥집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단골 국밥집에서 그날도 식사를 하던 우석은 외상값을 갚아 달라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고시를 위한 책들을 팔고 받은 돈을 쥐고 고뇌합니다. 아주머니가 없는 사이 몰래 식당을 빠져나가던 우석은 어린 진우(시완)과 눈이 마주치고 맙니다. 법조인이 되겠다던 자신이 밥값을 떼어먹고 도망치는 현실에 스스로 자괴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우석은 그렇게 다시 법전을 들었고, 그는 판사에서 변호사로 이어지는 법조인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7년 전 국밥 값을 때어먹고 도망쳤던 그 기억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었고, 가족들과 함께 그 집을 찾아 영원한 단골이 됩니다. 사업 수완이 누구보다 좋았던 우석은 자신을 비웃던 변호사들이 모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몰려들자, 세법 전문 변호사라는 새로운 장르를 다시 개척합니다. 그리고 우석은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기틀까지 만들어냅니다. 이제는 부산이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알아주는 세법 전문 변호사가 된 그에게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다가오게 됩니다.

 

우석은 그때까지만 해도 정치와 사회에는 담을 쌓고 살아왔습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직 돈을 버는 것에는 집착했던 그에게 사회의 혼란은 호강스러운 투정 정도로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도 남의 일이었고, 대학생들의 대모도 어린 아이들의 치기어린 행동 정도로 인식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뒤틀린 혹은 의도적으로 멀어져 있던 의식은 동창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벌어진 싸움 이후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국밥집 아들 진우가 던진 한 마디는 그의 인생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단단한 바위를 어찌 계란으로 깨트릴 수 있느냐며 비판적이던 우석에게 진우는 이야기합니다. 바위는 죽어있지만, 계란은 살아있지요. 그렇기에 계란은 바위를 넘어설 수 있는 겁니다. 라는 진우의 이야기는 당시에는 거부감이 드는 이야기였지만, 그의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모토로 남겨지게 됩니다.

 

 

친구가 건드린 고졸 콤플렉스는 그렇게 열등감으로 전락했고, 더욱 무기력하게 사회와 담을 쌓은 채 돈 버는 것에만 집착하던 우석은 자신을 찾아 온 국밥집 아줌마 순애(이영애)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10대 건설사의 일을 맡게 된 우석은 그런 엄청난 성공보다는 자신을 일깨워준 순애와 함께 진우가 잡혀가 있다는 형무소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분노를 경험하게 됩니다.

 

고문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진우와 국가 권력의 횡포를 처음으로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정우는 그렇게 법정에 서게 됩니다. 누구도 맡으려 하지 않았던 국보법 사건의 변호인이 된 정우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법정에서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움을 시작합니다.

 

전두환 정권에서 자행되던 국보법 조작 사건은 자신의 권력에 대항하는 수많은 국민들을 억압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자신과 다르면 모두가 빨갱이가 되는 세상에서 국보법은 모든 것을 능가하는 만능이자 신적인 존재였습니다. 불법 구금과 폭행 등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그들에게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상흔이 가져 온 앙금이 곧 빨갱이를 양산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통제하는 것이 곧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믿게 하는 기묘한 충성심을 가진 권력자들을 양산하기도 했습니다.

 

<변호인>의 하이라이트는 공판에서 국보법 사건을 진두 지위했던 고문경감 차동영(곽도원)을 증인으로 세운 우석이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많은 관객들이 울컥하는 것은 30년 전이나 현재나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1조 1항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2항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말을 하는 우석의 고함은 단순히 영화 속에 담겨 있는 분노는 아니었습니다.

 

눈이 충혈이 될 정도로 피를 토하듯 뱉어낸 이 대사는 우리의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30여 년 전 전두환이 박정희 정권 뒤 권력을 찬탈하는 과정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을 촉발시켰습니다. 무고한 시민들 수백 명의 총칼로 죽인 살인마 전두환은 그렇게 피의 권력으로 체육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공안 사건들을 조작했고, 이를 통해 공포정치를 하던 암울했던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양심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바위를 계란이 깨트리기는 어렵더라도 살아있는 계란들이 바위를 넘어 설 수 있다는 그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합니다. 30여 년이 흐른 우리는 박정희의 망령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대학교에 걸린 대자보 하나는 다시 국민들을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일상적인 인사를 건네던 그 대자보는 어쩌면 30여 년 전 송강호에게 던진 질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변호사로 큰 성공을 거두고 돈도 많이 벌어 안녕하냐는 질문에 행복하다고 답변하던 송강호는 국밥집 아들의 모습을 보고 환상에서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결코 안녕할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잘나가던 세법 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자신과 가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버리고, 그는 과감하게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외롭게 투쟁하는 사람들 편에 서는 변호사를 자임했습니다. 그런 그를 법정에 세운 권력에 맞서 변호를 자처한 100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공판장을 가득 채운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의를 위해 자신의 안위마저 내던져 버린 한 인권변호사를 위해 부산지역의 100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변호를 자처하고, 그렇게 법정을 가득 채운 동료들에게 감동해 눈물을 흘리던 송우석의 모습은 진한 감동 그 이상으로 가슴에 남겨졌습니다. 문민정부 10년을 지내고 더욱 지독해진 억압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변호인>은 잃었던 분노를 다시 깨우게 했습니다. 단순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아닌 정의가 사라진 부당한 현실 속에서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인간답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건네는 <변호인>은 그래서 아프고 힘겨운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30년 전과 비교해 우리의 삶이 조금은 더 편해졌을지는 모르겠습니다(엄청난 가계부채가 이야기를 하듯 허울만 좋아진 신기루 삶). 하지만 빈부의 격차는 그 당시보다 더욱 커졌고, 그 지독한 경계는 많은 이들을 힘겹게 만들기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삶에 대한 목표와 가치도 상실한 채 오늘만 살아내기에 급급하게 된 우리에게 <변호인>은 왜? 어떻게 살 것이냐고 묻고 있었습니다. 30년 전 송우석은 눈물이 가득 맺힌 얼굴로 현재의 우리들에게 "안녕들하십니까?"라며 안부를 묻고 있었습니다. 과연 우리들은 정말 안녕들하신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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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6 07:05

그래비티-쿠아론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넘어선 기념비적 영화를 만들어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1968년 만든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현재까지도 최고의 SF 영화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로 인해 이제 SF 영화의 상징은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대한 단순함을 앞세워 가장 영화다운 매력을 발산시킨 이 영화는 아이디어와 극대화된 CG 기술의 결과가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지 잘 보여준 사례가 될 듯합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이 영화는 사기다, 쿠아론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를 보여주었다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미니멀리즘과 최근 영화들이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근원적인 감각을 극대화해 주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모든 감각이 집중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SF 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지구로부터 600km 떨어져 있는 우주에서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는 이들이 인재로 만들어진 최악의 상황에서 대처하는 모습을 담은 이 영화는 풍성한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밋밋할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전부는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재난 영화들과 비교해 봐도 아쉬움이 들 수도 있겠지만, 오감을 다 동원해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감독의 능력은 대단했습니다.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우주선에 오른 스톤(산드라 블록)은 우주 정거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베테랑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공기도 소리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 작업을 합니다. 좀처럼 쉽지 않은 작업에 조바심이 나는 스톤이지만, 우주에서도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능숙한 우주인 코왈스키는 장난으로 긴장감을 풀어주려 노력합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바람나서 도망간 부인의 이야기를 마치 남의 일처럼 하는 코왈스키에게 이번 임무는 그가 우주에서 가지는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우주 유영을 하면서 자신만의 기록을 세우겠다는 포부를 내세울 정도로 그에게 우주라는 공간은 익숙해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순조로워 심심할 정도인 이 상황에 갑자기 긴박한 소식이 들립니다. 휴스턴 우주센터와 교신을 하면서 허블 우주망원경을 수리하던 그들에게 급한 전갈이 옵니다. 노후화되어 버려진 위성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우주 쓰레기가 된 위성을 지구에서 미사일을 쏴서 폭파하는 과정에서 허블 우주망원경을 고치고 있는 그들을 향해 파편들이 날아가고 있다는 다급한 연락이었습니다. 

 

 

너무 조용해서 마치 욕실에 와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던 그 공간은 삽시간에 재난의 장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도망가고 싶어도 쉽게 도망갈 수도 없는 너무나 넓은 우주에서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위성 파편들은 시시각각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임무를 위해서는 마무리가 필요한 스톤 박사는 마무리를 하고 싶어 했고, 그 짧은 순간이 그들의 운명을 더욱 복잡하고 힘들게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위성 파편들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들이었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파편들로 인해 허블 우주망원경은 산산조각이 나고, 그 상황에 우주로 튕겨나가는 스톤 박사를 구해낸 코왈스키는 모선으로 대피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미 모선은 파편 폭탄에 의해 엉망이 되어버린 후였습니다.

 

러시아나 중국의 우주 정거장으로 향해 지구로 내려가는 방법이 유일한 희망인 그들에게 닥친 이 기막힌 상황은 그 어떤 재난 상황보다 두렵고 무서운 상황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구 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재난들과 달리, 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이 지독한 상황은 그 자체로 관객들마저 압박할 정도로 강력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래비티>는 시작부터 강렬했습니다. 모든 소리가 묵음이 되고 오직 보이는 것은 지구가 전부였습니다. 아주 느릿하게 유영하던 화면은 이내 허블 망원경을 수리하는 우주인들의 모습으로 이어집니다. 카메라는 3인칭에서 1인칭으로 전환하며 그 기묘한 중력이 사라진 공간을 관객들도 함께 느끼도록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우주복 안의 주인공의 시점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다시 주인공을 주시하는 이 시각의 전환은 단순한 3D영화의 시각적 재미만이 아니었습니다.

 

관객들과 영화가 하나가 되어 현장에서 교감을 이루는 이 상황은 아이디어와 기술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낸 최고의 가치이자 재미였습니다. 소리와 시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관객들에게 그 상황들을 동일하게 전달받도록 정교하게 짜여진 이 영화는 왜 제목이 <그래비티>일 수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흘러나오며 유인원의 뼈다귀가 하늘 위로 날아가 우주선으로 오버랩 되는 장면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을 상징하는 최고의 장면입니다. 이 절묘한 몽타주는 이 작품을 이 시대 최고의 SF 영화로 올려놓았습니다. 물론 영화 전반에 흐르는 철학적 메시지의 강렬함이 스탠리 큐브릭 특유의 영상미와 결합해 최고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60년대 만들어진 작품이 여전히 다시 봐도 새롭게 다가올 정도로 특별함을 선사했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감히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 작품은 <그래비티>였습니다. 어설픈 수사 없이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것들만 이용해 실감나게 상황을 만들어가는 쿠아론의 연출력은 압권이었습니다. 서스펜스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주라는 공간과 갑작스러운 재난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모습 속에서 강렬함을 느끼게 해준 이 영화는 영화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스톤 박사와 한 몸이 되어 함께 우주에서 재난을 피해가는 과정을 체험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해준 <그래비티>는 쉽게 표현하기 힘든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수억 원을 지불하면 우주여행도 가능한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비티>는 마치 우주에서 유영을 하고 재난에 함께 빠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올 정도로 충분히 감각적이고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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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3 08:35

화이-천재 장준환을 집어 삼킨 여진구 괴물의 탄생이 반갑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영화 <지구를 지켜라> 한 편으로 천재라고 불리던 감독 장준환. 그가 여진구라는 괴물과 함께 <화이>라는 작품으로 복귀했습니다. 왜 이렇게 재능이 뛰어난 감독이 그동안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었는지가 아쉬울 정도로 이 작품은 탁월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여진구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천재 장준환의 복귀가 반갑다

 

 

 

 

 

외계인이 등장하는 놀랍도록 탁월하고 흥미로웠던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천재 감독의 등장을 알린 작품이었습니다. 독특한 감성과 상상력이 가득했던 이 작품은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찬사를 받은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흥행 실패는 결국 천재 감독이라 불리던 장준환 감독에게 깊은 침묵을 강요하게 했습니다.

 

 

긴 침묵 속에 있던 장준환 감독은 화려하게 부활을 알렸습니다. 잔인한 폭력과 강렬함이 가득한 이 작품 속에서도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가 보여주었던 감각이 여전히 살아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웠습니다. 왜 장준환 감독이 그동안 연출을 할 수 없었는지가 의아할 정도로 <화이>는 감각적이면서도 탐미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김윤석, 조진웅, 장현성, 김성균, 임지은, 박용우, 이경영, 문성근, 유연석, 남지현에 이어 여진구까지 하나로 모으기도 쉽지 않을 대단한 배우들이 <화이>라는 작품에 모두 출연한다는 사실은 기적과도 같습니다. 한때 <도둑들>의 무더기 출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연기력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화이>가 훨씬 다양하고 탄탄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주는 매력은 대단했습니다.

 

어린 아이가 납치당하고 몸값을 받으려는 납치범들의 모습으로 시작한 <화이>는 우리 사회의 괴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마음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괴물을 다스리지 않으면 누구나 그 괴물의 노예가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납치 대가로 받으려던 돈은 지하철에 타고 있던 형사들로 인해 무산되고 맙니다. 낯 도깨비로 불리는 이들의 범죄 행각은 형사들에게는 죽어도 잊을 수 없는 존재감이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돈을 포기하고 사제 총으로 형사들까지 죽이고 유유히 현장을 벗어나는 그들에게는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인질을 구하려던 형사 정민(김영민)은 그들이 모두 한 패라는 사실을 아는 동시에 칼을 맞고 철로에 쓰러지고 맙니다.

 

 

인질로 잡힌 아이를 죽이려는 범수(박혜준)을 막아서는 조금은 모자란 기태(조진웅)와 강렬한 카리스마로 조직의 보스 역할을 하고 있는 석태(김윤석)은 묘한 긴장감을 유발시킵니다. 조직의 두뇌 역할을 하는 진성(장현성)과 냉철한 칼잡이 동범(김성균)과 그들과 사는 유일한 여성인 영주(임지은)는 이런 상황 자체가 두렵기만 합니다. 쇠사슬에 다리를 묶여 가사 일을 하는 영주가 바라보는 이들은 괴물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범죄 조직단체로 수많은 사건들을 벌인 이들 중에는 어느 사이 학생이 하나 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학교를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또래 아이들처럼 교복을 입는 것이 좋은 화이(여진구)는 자연스럽게 아빠들에게 배운 능력을 사용해 그들의 범죄에 가담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들에게 다양한 기술을 배운 화이는 다섯 명의 아빠를 둔 아이였습니다.

 

열쇠를 따는 역할을 하는 화이는 사격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는 존재였습니다. 영특해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배우는 화이는 당연하게도 이들에게는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화이는 교복을 입고 집으로 향하며 유경(남지현)과 마주합니다. 고장 난 자전거를 고쳐달라는 유경으로 인해 시작된 그들의 인연은 결국 그 기묘한 상황을 깨트리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재개발 지역에 알박이처럼 갇혀 나가지 않는 임형택(이경영) 부부를 몰아내기 위해 그들이 선택되었습니다. 인천에서 부동산 개발로 엄청난 재력을 쌓은 전회장(문성근)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던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작전을 세워 그 집으로 들어섭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지독한 운명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납치당한 아이가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 어떤 고난에서도 버티고 있었던 집을 쳐들어가는 낯 도깨비들은 그렇게 완벽한 괴물을 꿈꾸었습니다.

 

 

화이가 더 성장하기 전에 외국에 보내 공부를 시키려는 진성과 달리, 화이를 자신의 곁에 두고 자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려는 석태 사이의 긴장감은 임형택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재개발 지역이라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온갖 공격에도 물러서지 않고 그 집을 지키고 있는 임형택을 물러서게 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절실했습니다.

 

거부해도 되는 일을 선뜻 응한 석태는 화이를 앞세워 그 집으로 들어섭니다. 문을 여는 역할을 한 화이는 비 오는 날 경찰에 의해 모든 것이 어긋날 수도 있었지만, 운이 좋게도 집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이라는 장점을 활용한 침입은 순조롭게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임형택이 교회를 간 사이 몸이 아픈 부인이 집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문제였습니다. 

 

숨어 있던 부인 선자(서영화)는 자신의 아들이지만 그때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화이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숨겨주는 화이는 어쩌면 본능적으로 자신의 어머니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여전히 괴물이 될 수 없었던 본능이 그를 악에서 보호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화이의 이런 행동은 결국 임형택이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고, 화이로 인해 집 밖으로 도망친 선자와 이런 상황들을 보고 분노한 석태는 해서는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맙니다. 형택을 폭행하던 석태와 일행은 화이에게 충을 건네며 죽이라고 지시합니다. 한 번도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는 화이에게 이 상황은 당혹스러웠습니다. 이미 한 차례 실수를 했던 화이는 이번에는 집주인의 부인이 도망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는 죄책감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더는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석태의 압박에 견디지 못한 화이는 총을 쏘게 됩니다. 하지만 멧돼지가 아닌 사람을 쏘는 일은 결코 쉬울 수 없었고, 이런 상황에 형택은 화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아들에게 이야기하지도 못한 채 괴물에 쫓겨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는 아들의 총에 맞아 숨지고 맙니다.

 

어린 시절부터 거대한 괴물에게 쫓기며 살아왔던 화이는 이 첫 살인을 시작으로 조금씩 괴물과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괴물에게 쫓겨 살던 아이가 살인을 저지르고 그 괴물마저 물리친 상황에서 그는 진정한 괴물들과 맞서게 됩니다.

 

영화는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사제 총을 만들어 범죄 행각을 벌이는 같은 고아원 출신의 범죄자들과 납치를 한 후 죽이지 않고 키운 아이 화이의 이야기를 밀도 높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화이의 아버지인 임형택과는 고아원 시절부터 잘 아는 관계였지만, 너무 다른 차이로 인해 괴물은 석태를 괴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 마음까지 착했던 형택은 힘겨워하는 석태에게 괴물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된 석태는 형택이 좋아했던 영주를 성폭행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온 형택의 다리를 못 쓰게 만들어 버립니다. 스스로 괴물과 타협하고 괴물이 되어버린 석태는 더는 괴물이 자신을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괴물이 된 석태에게 마지막까지 용서로 일관했던 형택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석태는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형택의 아들을 납치하고 돈을 받지 못했음에도 죽이지 않고 키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란 아이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도록 강요했습니다. 이런 행동으로 자신과는 너무나 달랐던 형택을 증오하고 그의 아들을 자신과 같은 괴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만족해하는 석태는 구제불능의 괴물 그 자체였습니다.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괴물이 되지도 않습니다. 괴물과 선의 대결 속에서 괴물대 괴물이라는 대결 구도는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잔인할 정도로 조금의 정도 느낄 수 없는 결과를 도출해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괴물을 집어 삼킨 화이가 선택한 마지막은 그래서 더욱 깊고 무겁게 다가옵니다.

 

장준환 감독은 과거 <지구를 지켜라>에서 보여주었던 재기발랄함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화이>를 통해 증명해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보다 성숙해졌고, 사회에 대한 증오는 더욱 커져있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장 감독의 복귀를 완벽하게 만든 것은 베테랑 김윤석이 아닌 만 16살 여진구였습니다.

 

여진구가 보여준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캐릭터는 <아저씨>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원빈의 강렬한 카리스마와는 달랐지만, 밀리지 않는 힘이 존재해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납치를 당해 범인들에 의해 키워진 아이가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격정적으로 보여준 여진구는 천재 감독마저 집어삼킨 진정한 괴물이었습니다.

 

여진구가 과연 어떤 연기자로 성장할지 알 수 없지만, 이 작품에서 보여준 여진구의 모습은 당대 최고의 배우로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를 긴장감 넘치게 마지막까지 끌고 간 감독과 배우들의 조화가 완벽했던 <화이>는 그래서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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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9 09:02

메가박스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중단, 역풍을 이끌 뿐이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건강한 의문을 던지는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상영 중 극장에서 내려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법정 싸움까지 벌이며 얻은 개봉 기회를 드러내지 않은 힘으로 막아세운 이 한심한 사태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진실이 두려운 세력, 2013 대한민국은 일제시대인가 독재 시대인가?

 

 

 

 

천안함 참사의 진실을 찾아보는 노력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노력입니다. 정부에서 발표한 내용에 문제가 많고 이런 전문가들의 반발의 근거가 과연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행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는 이런 궁금증이 발현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의 발표와 다른 천안함 침몰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많은 이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런 관심은 결국 정부 당국의 부담으로 다가왔던 듯합니다. 그런 부담은 결과적으로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을 막는 상황까지 이어졌습니다.

 

 

힘겹게 상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이 작품은 하지만 메가박스가 일방적으로 상영을 중단하며 논란은 다시 커지게 되었습니다. 영화관 사업자가 무슨 이유로 상영중인 영화를 급하게 내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논란은 커질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소송이 법원에 의해 기각된 상황에서 어느 극렬 보수단체의 위협을 핑계 삼아 상영 중단 시킨 조치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치권이나 정부당국으로부터 모종의 메시지가 흘러들어 갔는지, 아니면 상업적 이유 등 다른 이유가 있는지 묻고 싶다"

"과연 우리가 21세기에 살고 있는지, 자유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게 맞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영화에 문제가 있다면) 법과 여론에 그 책임을 물으면 되는 것이지 게시와 상영 등 표현의 자유를 차단해선 안 된다. 영화는 정치적인 이유로 상영이 중단될 수 없다"

"우리는 한국영화 사상 초유의 사태가 한 영화 대기업(메가박스)의 즉각적 원상회복 조치, 그리고 정부당국의 협조로 추후 있을지도 모를 나쁜 선례를 예방해주기를 바란다"

 

한국영화 평론가협회는 메가박스의 일방적인 상영중단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극렬 보수단체의 위협을 핑계 삼고 있지만 그들이 단순히 증명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해 상영을 중단시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메가박스가 과연 무엇을 위해 그런 조처를 취했는지 명확하게 증명해야만 할 것입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행동들은 결과적으로 메가박스에 정치권의 압박이 이어졌음을 의심하게 합니다. 협회에서 이야기를 하듯, 표현의 자유와 상영마저 막고 있는 현재의 문제는 충격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부 단체의 강한 항의 및 시위에 대한 예고로 인해 관람객 간 현장 충돌이 예상돼 일반 관객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배급사와의 협의 하에 상영을 취소하게 됐다"

 

메가박스가 홈페이지에 올린 상영중단의 이유는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일부 단체의 강한 항의 및 시위 예고에 미리 겁먹고 상영을 포기했다는 주장은 황당하기만 합니다. 배급사와 협의 하에 상영을 취소했다고 하지만, 제작사로서는 일방적인 상영중지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일부 단체의 협박이 있었다면 경찰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메가박스 측은 이런 최소한의 선택도 포기한 채 무조건 영화 상영을 중단한 것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압박이 지배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일 뿐입니다.

 

"메가박스가 보수단체의 위협 탓이라고 주장하지만, 경찰한테 보호 요청도 않고 무작정 상영부터 중단한다는 건 상식적인 일이 아니다. 비정상적인 압력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현 정부가 아무리 어리석어도 이런 무모한 짓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천안함 프로젝트>에 관객이 많이 든다니까 메가박스 주변의 힘이 센 누군가가 화가 난 것 같고, 겁을 낸 극장 쪽이 '알아서 기는' 일이 벌어진 것 같다"

 

기획하고 제작한 정지영 감독은 이번 사태가 단순히 메가박스의 상영중단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프로젝트>에 담긴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한 많은 이들이 극장을 찾고 이 과정에서 누군가의 압력이 메가박스를 압박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메가박스의 갑작스러운 상영중단은 분명 한국영화 초유의 사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근간에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이념전쟁과 별개로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으로 권력의 정체성마저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4대강 비리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과 함께, 천안함 북한 피폭 논리가 의심받는 상황에 대한 민감한 그들의 반응은 결국 국민들의 분노만 키울 뿐입니다.

 

이석기 사태를 퍼트려 국정원 선거개입을 막으려는 현실 속에서 <천안함 프로젝트> 중단 사태는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많은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국정원 사태를 바로잡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프로젝트> 중단사태는 국민들을 하나로 모으고 있습니다. 한국영화 초유의 상영중단사태는 결국 진실에 대한 관심과 요구를 더욱 강렬하게 요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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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9 08:03

더 테러 라이브-하정우와 함께 즐기는 한국영화의 힘, 진짜 테러리스트는 과연 누굴까?

한국 영화의 힘을 보여주는 <더 테러 라이브>는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하정우가 주연을 맡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이 작품은 2013년 대한민국의 영화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와 같은 영화였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책 고르는 눈이 탁월한 하정우, 그가 느끼는 테러리스트는 누굴까?

 

 

 

 

상업영화 첫 데뷔작인 <더 테러 라이브>를 만든 김병우 감독의 힘은 강렬함으로 다가옵니다. 젊은 감독들과 많은 영화를 한 하정우의 탁월한 시나리오 선택 역시 다시 한 번 감탄하게 합니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완벽하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영화로 만들어낸 이 작품은 한국 영화의 힘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었습니다.

 

 

잘나가던 앵커 윤영화(하정우)는 좌천당하며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방송사의 메인이었던 그는 같은 회사 기자인 부인과도 헤어지고, 앵커 자리에서도 쫓겨나며 라디오를 하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런 그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그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그 흔한 장난 전화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영화는 자신의 눈앞에서 다리가 폭파되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이합니다.

 

다리를 폭파하겠다는 범인의 협박에 장난으로 생각하고 욕을 했던 영화는 곧바로 다리가 폭파되는 상황을 맞고 맙니다. 급하게 신고 전화를 하려던 영화는 급하게 이것이 자신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장난 전화라고 생각했던 그 전화가 실제 테러범의 전화였고, 이를 잘만 이용한다면 영화는 전 국민의 주목을 받는 스타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 누구도 받지 않았던 테러범의 테러 예고 전화를 이용한다면 당연히 모두가 주목하는 방송을 이끌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디오 부스를 장악하고, 자신을 쫓아냈던 보도국장(이경영)에게 전화해 생방송을 요구합니다.

 

테러범을 두고 알력 싸움을 벌이며 라디오 부스는 갑작스럽게 테러 라이브 방송으로 변하게 됩니다. 라디오 피디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영화에게 당하며, 자신의 프로그램을 빼앗기고 맙니다. 금융과 정치, 언론 등 국가의 중요 시설이 밀집되고 연결되어 있는 마포대교가 폭파되는 초유의 사건은 일대 혼란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협박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대통령이 직접 출현해 사과를 하라는 테러범의 요구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요구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범인은 여러 곳에 장치된 폭탄을 통해 모두를 위협해갑니다. 범인이 지목했던 영화가 아닌 다른 앵커가 중계를 맡자 준비해둔 폭탄을 통해 소동을 일으키고, 인이어에 폭탄을 장치해 영화를 꼼짝도 할 수 없는 포로로 만들어버린 테러범은 집요하고, 정교했습니다.

 

 마포대교 양쪽이 무너지고 중간에 고립된 시민들과 이를 이용해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테러범. 그리고 귀에 장치된 폭탄으로 피해갈 수도 없이 테러범의 요구를 관철시켜야만 하는 상황은 기묘한 긴장감을 키워냈습니다. 전대미문의 사건을 통해 진급을 노리는 보도국장과 영화는 테러범을 통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만 급급했습니다.

 

테러범과의 생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목적을 채우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전세는 단숨에 역전이 되고 맙니다. 철저하게 준비해 그들을 압박하는 테러범들로 인해 생방송은 처절한 상황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상징이 집결된 마포대교를 폭파하며 시작된 테러범의 집요함은 상황을 보다 복잡하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라디오 부스에서 펼쳐지는 이 영화는 언뜻 일본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와 형식적인 유사점을 보입니다. 라디오 부스에서 드라마를 하는 성우들과 이를 듣는 트럭 운전수의 모습을 담은 형식적인 실험은 흥미로웠습니다. 이런 형식적인 유사성은 <더 테러 라이브>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이유였습니다.

 

하정우가 라디오 부스 안에서 테러범들과 대결을 펼치는 형식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재미있었습니다. 하정우였기에 가능한 원맨쇼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 젊은 감독인 김병우가 보여준 감각적인 영상과 탄탄한 이야기의 힘은 대한민국 영화가 성장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작은 공간에서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보이는 탄탄한 이야기의 힘은 결국 단단한 영화의 완성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정우가 마지막 순간 스스로를 포기하는 과정에서 느낀 테러리스트는 말 그대로 사람이 없는 마포대교를 폭파는 테러범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테러범과 통화를 하면서 알게 된 상황들은 우리 시대 사회를 망치는 존재들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건물이 무너지며 마지막 장면에 담긴 것은 바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라는 사실은 흥미롭기까지 했습니다. 파란색 건물에 무너져 내리는 장면은 짧지만 통쾌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사회의 악과 같은 존재들이 모두 등장한 이 영화는 과연 테러리스트는 누구인지에게 대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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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9 08:07

퍼시픽 림-길예르모 델 토로의 키덜트 감성과 일본 괴수 영화 동경이 만든 결과

예고편으로 기대감이 컸던 <퍼시픽 림>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성숙하지 못한 아이를 위한 작품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길예르모의 상상력은 급격한 퇴화를 거듭하는 듯만 했습니다. 일본 괴수 영화 마니아가 키덜트 감성으로 만든 평범한 할리우드 SF 영화는 1998년 <고질라>보다 못한 결과물로 나왔습니다.

 

길예르모만의 개인적 취향을 위한 값비싼 유희 

 

 

 

 

 

일본 괴수영화의 역사는 상당합니다. 고질라 시리즈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영화들이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저 과거의 사례만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일본에서는 그들이 사랑하는 괴수 영화들이 꾸준하게 제작되고 환영받고 있습니다.

 

 

거대한 로봇이 등장해 외계 괴물에 맞서 싸운다는 설정 자체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하고 폭력적인 괴물의 등장으로 세계 곳곳이 파괴되는 상황에서 인간들은 괴물에 맞서 싸우기 위해 거대한 로봇을 제작합니다.

 

괴수와 로봇의 대결이라는 익숙한 방식이 색다를 수는 없었습니다. 지구를 위기로 몰아넣으려는 외계인과 그들에 맞서 싸우는 지구인들의 대결이라는 익숙함과 거대 로봇에 인간이 타고 조종을 한다는 설정 자체가 호기심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봇에 인간이 탑승해서 나쁜 자들을 물리친다는 설정은 너무나 익숙하게 봐왔던 추억이었습니다. 만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 장면들을 그럴 듯한 모습으로 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퍼시픽 림>은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너무나 단순하다는 점에서 설명이 길어지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주인공인 롤리(찰리 헌냄)는 외계괴물 카이주에 맞서 싸우는 예거 조종사였습니다. 형과 함께 카이주에 맞서 싸우던 과거의 롤리는 철없는 어린아이와 다름 없었습니다.

 

실력은 뛰어났지만 철없던 그는 카이주에 의해 죽임을 당한 형으로 인해 그는 예거 조종사의 길을 그만둡니다. 야인처럼 살아가던 그를 다시 발굴한 이는 전설적인 예거 조종사이자 이제는 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스탁커(이드리스 엘바)였습니다.

 

예거를 폐지하고 거대한 성벽을 세워 도시를 지키겠다는 정치인들로 인해 더는 로봇을 운용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스탁커는 남겨진 로봇을 통해 레지스탕스처럼 카이주에 대결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과거 예거를 조종했던 롤리는 중요하고 절실했습니다. 카이주는 점점 거대하고 강력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정된 로봇을 운영하는 그에게 롤리는 꼭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그렇게 레지스탕스의 일원이 된 롤리는 마코(키쿠치 린코)와 함께 로봇에 탑승하며 카이주에 맞서게 됩니다. 스탁커와 마코는 이 모든 고통을 함께 한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도쿄에 나타난 카이주에 모든 것을 빼앗긴 마코를 구해준 이는 바로 스탁커였습니다. 그리고 스탁커는 혼자가 된 마코를 친 자식처럼 키웠습니다. 언제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예거 조종사가 될 수 있도록 준비도 해왔습니다.

 

몇 대 남지 않은 예거와 그곳에 탑승하는 조종사들의 활약과 캐릭터들이 충돌하면서 카이주에 맞서서 싸우는 내용이 이 영화의 모든 것입니다. 괴짜 과학자가 카이주의 뇌와 결합을 시도하고 그곳에서 얻은 지식을 통해 카이주를 무찌른다는 방식은 식상했습니다.

 

이야기의 틀은 색다를 것이 전혀 없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영웅이 존재하고 그런 영웅이 지구를 지킨다는 평범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단순한 선과 악의 구도는 식상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더욱 이야기의 빈약함은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었고, 그나마 거대함으로 승부한 로봇의 모습은 자꾸 볼 수록 익숙해지며 호기심도 약해지는 아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퍼시픽 림>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현재의 기술력으로 보여주지 못할 것이 없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기술력이라면 만화에서나 표현 가능한 모습들이 이제는 실사 영화로도 적나라하게 보여질 수 있음을 증명해주었습니다. 거대 로봇이 등장하는 수많은 에니메이션들이 이제 실사 영화로 등장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 영화가 보여주었다는 것은 분명해보였습니다.

 

길예르모 델 토로의 신작이라는 사실과 거대 로봇이 웅장함으로 다가온다는 사실만으로도 <퍼시픽 림>은 기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물은 최악이었습니다. 거대한 로봇에 대한 관심과 재미는 흥미로웠지만 빈약한 줄거리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냈고, 결국 비주얼만 존재하는 한심한 영화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초등학생들이 봐도 하품이 나올 정도로 단순한 이야기는 명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럴 듯한 설정들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그 이상도 아닌 그저 가식을 위한 가식의 기운만 느껴지는 이야기 속에서는 그 어떤 것도 들여다보기 힘들게 했습니다.

 

델 토로의 키덜트 감성에 일본 괴수 영화의 동경이 만들어낸 <퍼시픽 림>은 <고질라>보다 더욱 식상하고 재미없는 영화였습니다. 1998년 <고질라>가 등장했을 때와 유사한 관심을 받았던 <퍼시픽 림>은 결과적으로 당시와 비슷한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15년이 지나 고질라과 외계괴물 카이주가 되고 이에 맞서는 인간들이 거대 로봇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다를 뿐 발전하지 못한 이야기의 한계는 아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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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9 08:05

감시자들-관객들마저 감시자로 만든 탁월한 악당 연기 정우성 재발견이 반갑다

정우성이 처음으로 악역으로 등장하는 <감시자들>은 감각적인 영상들과 안정적인 스토리라인으로 매력적인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설경구와 한효주에 맞서 잔인한 살인자로 변신한 정우성은 왜 이제 서야 악역을 했는지 아쉬울 정도로 차원이 다른 캐릭터 구축에 성공했습니다. 영화 내내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시자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정우성 비트 벗고 진정한 배우로 성장했다




 

경찰 내부의 다양한 부서 중 하나인 특수조직 감시반이 희대의 범죄 그룹들을 소탕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감시자들>은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할리우드 스타일을 갖추고 있지만, 우리식의 재해석이 가미된 이 영화는 역시 악역으로 완벽 변신에 성공한 정우성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경찰 내 특수조직 감시반에 들어서기 위한 심사를 받는 하윤주(한효주)는 한 남자를 추적합니다. 지하철에서 시작한 윤주의 추적은 지상으로 올라온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다양한 상황들이 이어지고 이런 과정을 통해 감시반의 반장인 황반장(설경구)의 시험에 통과하게 됩니다. 한 번 보면 결코 잊지 않는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윤주는 그렇게 감시반의 일원이 되어 첫 출근부터 대형 사건과 마주합니다.

 

주차장 폭파 사건에 이어 은행이 털리는 희대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감시반은 급하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완벽한 팀워크를 구축한 그들을 잡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도심에 가득한 CCTV를 검색하고 추적을 하지만 얼굴도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은 범인들을 추적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유령이라고 불리는 제임스(정우성)는 자신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돈 욕심을 낸 팀원을 잔인하게 폭행하는 모습을 통해, 그의 냉철하고 잔인함을 상징적으로 잘 보였습니다. <감시자들>의 경우 이야기가 특별하거나 색다르지는 않습니다. 범죄자와 그를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라는 기본적인 틀 속에서 조금 색다르다면 감시만 전문으로 하는 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범죄자들을 추격한다는 차이만 존재할 뿐입니다.

 

 

특별 할 수 없는 이야기 속에서 <감시자들>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정우성과 한효주, 그리고 설경구라는 세 명의 주연배우들이 함께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의 움직임들이 곧 <감시자들>의 전부라는 점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캐릭터의 힘이 곧 이 영화의 전부였습니다.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범죄자 제임스를 두고 벌이는 황반장과 하윤주의 대결 구도는 앞서가는 범죄자와 이를 뒤쫓는 첨단 감시반들의 활약입니다. 기존의 범죄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제임스 일당은 단순히 돈만 갈취하는 범죄자들은 특별한 사회적 이슈를 잠재우는 역할을 합니다.

 

다양한 범죄자들을 조합해 하나의 팀으로 꾸린 제임스는 뛰어난 전략전술로 모든 것을 지시하는 핵심 두뇌로 모든 것을 컨트롤 합니다. 첨단장비를 동원해 추격하는 감시자들을 따돌리며 모든 일들을 처리하는 제임스는 하지만 조금씩 무너질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제임스의 그림자도 찾기 힘들었던 감시자들은 그림자의 분신인 그림자의 그림자를 쫓으며 흔들기 시작합니다.

 

 

도심의 즐비한 CCTV를 분석하며 팀원 중 하나인 거대한 몸을 가진 범인을 추적하며 그림자의 끝을 붙잡기 시작합니다. 해외로 가려던 제임스에게 마지막 임무를 강요하는 정통(김병옥)으로 인해 그는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을 가르쳤던 하지만 자신을 이용해 개인의 이득만 취하는 잔인한 정통과 제임스를 뒤쫓는 경찰 특수팀 감시반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마지막 대결은 <감시자들>을 흥미롭게 이끌었습니다.

 

한효주에게 이 작품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선사한 작품일 듯합니다. 꾸준하게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한효주에게는 좀 더 자신의 연기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을 듯합니다. 하지만 <감시자들>의 진정한 승자는 정우성이었습니다.

 

뛰어난 외모로 등장부터 화제였던 정우성은 그 탁월한 외모 때문에 자신의 연기 영역이 한정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물론 <똥개>처럼 스스로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릎 나온 후줄근한 츄리닝을 입어도 정우성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에는 외모가 오히려 독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선택한 악역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정우성의 악역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던 이들에게 <감시자들>은 진정한 배우 정우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잔인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탁월한 카리스마를 갖춘 제임스라는 역할을 정우성만큼 완벽하게 해줄 수 있는 배우가 없다는 점에서 그의 악역 선택은 최고였습니다. 정우성이 아니었다면 <감시자들>은 그저 평범한 영화에 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악당 정우성의 등장으로 <감시자들>은 인상적인 영화로 각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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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5 08:05

월드워Z-브래드 피트의 좀비 이야기, 왜 다시 좀비에 열광하는가?

맥스 브룩스의 원작 <월드워Z>에 대한 관심은 영화 제작 전부터 화제였습니다. 몇 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소재가 되고 있는 좀비는 다양한 형태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그 수많은 작품들 중 맥스 브룩스의 원작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할리우드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대중에게 이미 성공을 보장받은 작품에 대한 할리우드의 러브콜은 당연했고, 이런 상황에서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와의 원작 구매 대결에서 브래드 피트가 승자가 되었고, 원작을 재해석한 영화판 <월드워Z>가 완성되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브래드 피트 현명한 제작자이자 주연 배우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은 좀비들의 몫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60년대 유행이었던 좀비가 다시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가 되었는지는 과거와 현재의 사회 문제를 들여다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좀비가 되어가는 세상과 이런 좀비 이야기에 공감하는 우리의 모습 속에 자라나고 있는 공포는 수많은 좀비 관련 책들과 영화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평범한 그래서 더욱 행복한 미국인의 일상. 아직 잠자리에 든 부모님에게 달려든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는 레인 부부는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제리(브래드 피트)는 출근하는 부인 카린(미레일리 이노스)를 대신해 아이들에게 팬케익을 구워주는 것이 행복이었습니다. 부인과 아이들을 태우고 직장과 학교로 향하던 제리는 꽉막힌 도로에서 의외의 상황을 목격하고 맙니다.

 

경찰 오토바이가 정신없이 오가는 혼잡스러운 상황에서 제리는 상황 인지를 하기에 바쁩니다. 뭔지 알 수 없는 거대한 공포가 몰려오는 상황에서 제리는 인간이 좀비가 되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맙니다. 좀비에게 물린지 10여 초가 지나자 인간이 좀비가 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UN 조사관으로 일하다 UN의 문제를 내부 고발해 쫓겨나야 했던 제리는 상황을 파악하는데 그 누구보다 뛰어났습니다.

 

가족들을 데리고 위험지역에서 달아나기 시작한 제리는 UN에서 근무하는 티에리(파나 모코에나)와 연락이 닿아 헬기로 좀비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됩니다. 미국 본토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좀비들에 의해 점령당한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육지와 격리된 항공모함이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제리는 가족들을 위해 좀비가 처음 출몰한 지역으로 들어가 원인을 밝히기 위해 떠나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평택 미군 기지에 도착한 제리 일행은 하지만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좀비들의 공격을 받고 위기에 처하고 맙니다. 기지를 사수하던 병사들에 의해 제리는 생명을 구하기는 했지만, 중요한 원인균 찾기는 시작도 해보지 못합니다. 함께 온 학자가 좀비에 놀라 자신에게 총을 쏘고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유이하게 좀비에게 점령당한 곳이 북한과 이스라엘 단 두 곳이었습니다. 이유는 극명하게 다르지만 말입니다.

 

좀비에 대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제리는 급하게 이스라엘로 향합니다. 좀비가 세상을 지배하기 전 급하게 이스라엘 전체를 감싼 거대한 성벽으로 인해 보호될 수 있었다는 현장을 돌아보던 제리는 가공할만한 공포를 목도하게 됩니다.

 

노래 소리를 듣고 거대한 벽에 붙기 시작한 좀비들은 그 좀비들이 탑이 되어 벽을 넘어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급하게 이스라엘을 벗어나기 위해 도주를 하던 제리는 자신을 지켜주던 이스라엘 여군 세겐(다니엘라 케리테스)이 좀비에 물리자 급하게 손을 자르고 함께 탈출을 시도합니다. 좀비의 전염성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중요한 순간 제리의 능력은 탁월하게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여행기를 타고 아일랜드로 향하는 제리는 그곳에서 인류를 구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좀비들의 세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손이 잘린 세겐과 함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떠난 제리는 과연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그들 스스로도 알 수 없었습니다.

 

 

맥스 브룩스의 원작 <월드워Z>를 읽을 신 분들은 원작과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듯합니다. 우선 전쟁이 끝난 후 과거의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정리한 원작과 영화는 완전하게 다릅니다. 과거 완료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 진행되는 영화 속 이야기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원작 그대로 영화화했다면 아마 영화가 대중적으로 성공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과거를 회상이 아니 현재 진행형을 통해 긴박감을 부여하고, 중국 시장을 겨냥해 원작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던 중국 부분을 완전히 드러낸 부분들도 특별한 변화였습니다. 중국을 대신해 한국의 미군 기지를 지명해 등장하는 장면은 한국의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의미와 함께 거대 시장 중국을 위한 할리우드의 눈치 보기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었습니다.

 

1968년 조지 A. 로메로가 만들어낸 좀비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만들어진 이후 수많은 좀비 영화들이 등장했습니다. 물론 살아있는 시체의 원조를 찾자면 영국의 여류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가 쓴 1818년 소설 속에 등장하는 <프랑켄슈타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좀비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 행태는 유사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역시 좀비 영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한 획을 긋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흑백 갈등이 심각한 미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좀비를 내세웠습니다. 사회적 이슈를 하나의 캐릭터로 구축해 사회적 문제를 영화에 적용시킨 좀비는 2002년 대니 보일의 <28일 후>에서 현대화된 좀비의 가치를 잘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월드워Z>의 경우 두 영화의 장점을 흡수해 좀비의 새로운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고 보기에는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왜 다시 좀비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는지는 중요합니다. 좀비는 그저 죽었지만 죽지 않은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그런 좀비들의 모습이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지배당한 현대인들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좀비에 열광하는 현대인들의 심리는 흥미롭습니다. 이런 좀비 열풍은 스스로 자신들의 모습이 좀비와 유사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브래드 피트에 의한 브래드 피트를 위한, 브래드 피트의 영화라는 사실은 아쉽습니다. 영화 자체는 현재의 관객들이 환호를 보일 정도로 매력적으로 잘 만든 영화입니다. 사회적 문제를 심도 있게 건드리기 보다는 영화적 재미에 치중한 브래드 피트의 <월드워Z>가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영화적인 재미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영화였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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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7 08:05

맨 오브 스틸-빨간 속옷 버린 클라크 켄트 새로운 슈퍼맨의 시작을 알렸다

슈퍼맨이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슈퍼맨의 상징이기도 했던 빨간 속옷을 버린 그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과 잭 스나이더란 걸출한 존재들이 하나가 되어 추진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영화가 만들어지는 시점부터 큰 화제를 불러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만의 색깔로 새로운 슈퍼맨의 전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한스 짐머의 웅장함 속에 고뇌하는 슈퍼맨은 탄생했다

 

 

 

 

마블의 영웅들이 영화를 지배하는 것과 달리, DC의 슈퍼 영웅들은 한 동안 주춤했습니다. 그리고 대표 주자 중 하나인 슈퍼맨이 7년 만에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슈퍼맨 리턴즈>를 마지막으로 슈퍼맨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맨 오브 스틸>이라는 제목으로 등장한 슈퍼맨은 이제 더는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등장했던 슈퍼맨 이야기들은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해왔습니다. 시리즈 전략이란 하나의 사건을 통해 기존의 주인공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하지만 <맨 오브 스틸>은 기존의 형식을 완전히 버린 채 오직 리뉴얼에 모든 것을 맞췄습니다.

 

기존의 슈퍼맨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슈퍼맨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오락 영화로 받아들이기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자아를 찾아가는 슈퍼 영웅 클라크 켄트(헨리 카벨)의 모습은 기존의 히어로 물과는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 켄트가 자아를 찾아 떠난 여행은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엄청난 힘이 그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슈퍼맨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지만, 기존의 히어로 물에서 보여 지는 친절함은 잭 스나이더 영화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플래시백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방식으로 켄트의 현재와 과거를 아우르는 과정은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남들과 다른 자신을 돌아보며 외롭고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켄트. 그런 켄트 곁에는 언제나 자신을 믿어주고 든든한 힘을 주는 부모님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중요했습니다.

 

조나단(케빈 코스트너)과 마샤(다이안 레인)는 어느 날 자신들에게 온 어린 아이 클라크를 사랑으로 키워냈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엄청난 힘과 능력을 가진 아이는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힘은 클라크에게는 고통이었습니다. 사고로 스쿨버스가 강물에 빠져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어린 클라크는 모두를 살려내지만 그게 그를 괴물로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고민하고 아파하던 클라크의 긴 여정은 그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가치였습니다. 아버지인 조나단을 통해 자신이 미지의 행성에서 온 존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던 그는 그 모든 여정의 끝에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긴 여정을 하던 클라크는 미지의 거대한 무언가를 찾은 현장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일을 도와주던 클라크는 취재를 위해 나온 기자 로이스 레인(애이미 아담스)와 첫 만남을 가집니다. 호기심이 많은 열혈 기자 로이스는 클라크가 우주선을 찾아 거대한 얼음덩이 속으로 들어서는 것을 목격합니다.

 

클라크의 등장으로 그의 아버지인 조엘(러셀 크로우)과 클립튼 행성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됩니다. 클라크가 왜 지구로 와야만 했는지 알게 된 클라크는 칼 엘이라는 이름까지 찾게 됩니다. 비록 홀로그램으로 만난 아버지이지만 홀로 외로워야만 했던 클라크는 칼 엘로서 자신을 되찾게 되지만, 곧바로 위협을 받게 됩니다.

 

클라크는 평생의 운명과 같은 여인인 로이스를 만나게 되지만, 만나지 않아도 좋았을 동족들과 조우도 하게 됩니다. 조드 장군(마이클 섀넌)이 지구로 올 수밖에 없도록 합니다. 클립튼 행성을 재건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칼 엘을 찾으러 지구로 향합니다.

 

 

리뉴얼로 시작된 슈퍼맨 이야기는 흥미로웠습니다. 비록 관객들의 즉각적인 재미를 전해주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진중하게 새로운 슈퍼맨의 탄생을 알리는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클라크 켄트와 칼 엘 사이의 묘한 지점 속에서 그가 지구에 남아 지구인으로 살아가는 과정을 이렇게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잭 스나이더의 감각적인 영상과 함께 한스 짐머가 만들어낸 웅장한 사운드는 새롭게 만난 슈퍼맨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냈습니다. 헨리 카빌이 낯설기는 하지만 매혹적인 에이미 아담스가 로이스 레인으로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했습니다.

 

완성체 영웅의 이야기인 슈퍼맨을 다시 되살려 새로운 이야기로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은 양날의 검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실망하는 이들도 많았겠지만, 장대한 이야기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이번 작품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맨 오브 스틸>을 보면서 엘 가문의 이야기가 스핀 오프로 제작될 가능성도 높아 보였습니다. 클립튼 행성에서 러셀 크로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조엘의 이야기 역시 슈퍼맨의 일대기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로 전개될 수 있음을 증명해주었습니다. 시공을 넘나드는 기묘한 세계관과 우주에 다양한 정착촌을 만들었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클라크 켄트가 언제 빨간 속옷을 겉옷에 입을지 알 수는 없지만, 잭 스나이더에 의해 재탄생한 슈퍼맨은 상징처럼 다가온 'S'자 만큼이나 반갑고 행복했습니다.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영웅들만 가진 DC가 잭 스나이더에 의해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재탄생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슈퍼맨 이야기의 시작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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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3 08:05

무서운 이야기2-고경표 표정연기가 압권인 탈출 한국 공포영화의 희망을 보였다

공포 영화라는 장르는 무척이나 매력적입니다. 저렴한 비용으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다는 점과 다양한 장르에 대한 실험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선호하기도 합니다. 물론 B급에 머물며 형식을 위한 형식에 머물 수밖에 없는 한계도 존재하다는 점에서 위험 요소 역시 상당합니다. 그런 점에서 <무서운 이야기2>는 이 모든 것이 공존했던 영화였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고경표라는 특별한 존재감과 정범식 감독의 재기어림이 흥미롭다

 

 

 

 

옴니버스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국내에서 공포 영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한때 공포영화 붐이 일며 다양한 공포 영화들이 여름만 되면 쏟아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호시절은 너무 짧았고, 사라진 한국형 공포 영화 속에서 <무서운 이야기2>는 반가웠습니다.

 

 

<무서운 이야기2>는 총 4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본 골격을 갖추고 있는 민규동 감독의 <444>를 중심으로 김성호 감독의 <절벽>, 김휘 감독의 <사고>, 정범식 감독의 <탈출>이 모여 하나의 완성작품으로 구축된 이 작품은 감독 개개인의 특징들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습니다.

 

보험사 직원인 박 부장(박성웅)과 신기한 능력을 가진 신입사원 세영(이세영)이 지하 창고에서 이상한 사건들을 들여다보며 시작합니다. 영화의 시작은 CCTV 속에 담긴 박 부장의 놀라는 모습과 검은 형체가 화면 가득 채우는 공포로 분위기를 압도해 나갔습니다.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세영을 통해 자신이 이해하기 힘든 사건 파일들을 점검해주기를 바라는 박 부장에게 가장 먼저 들어온 사건은 두 남자가 절벽에 갇힌 사건이었습니다. 친구인 두 남자가 등산을 갔다 멋진 배경을 두고 사진을 찍던 그들은 그만 절벽 밑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다행스럽게도 바로 밑에 작은 둔덕 같은 공간이 있어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여행을 와서 갑자기 고립되어버린 동욱(성준)과 성균(이수혁)은 휴대폰도 없이 누군가가 자신들을 구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동욱이 챙겨왔던 초코바가 유일했습니다. 배고픔을 참고도 며칠을 버티던 그들은 그 초코바 하나를 둘러싼 오해와 갈등이 생기며 있어서는 안 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맙니다. 성균이 잠든 틈을 타서 몰래 초코바를 먹던 동욱은 이를 감추기 위해 꼼수를 부리다 사건은 더욱 커지고 맙니다.

 

 

작은 불씨가 크게 발화되며 친구의 죽음으로 이어지게 되고, 이런 상황을 감추기 위한 살아난 친구의 거짓말은 점점 더 큰 문제로 커지고 맙니다. 자신의 마지막 희망이라 생각했던 만 원짜리에 적은 구조 신호는 친구의 저주라도 걸린 듯 그를 지독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맙니다. 

 

조난된 상황을 통해 인간의 심리 묘사를 다룬 <절벽>은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두 남자가 한정된 공간 속에 갇힌 채 심리적인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흥미로운 소재를 평이하게 보이게 했다는 사실은 아쉽습니다. 한정된 공간에 고립된 두 남자가 초코바 하나를 두고 벌이는(물론 그 이면에 담긴 보다 큰 문제가 존재하지만)상황들을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도 있었지만, 밀도 면에서 아쉬움을 주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인 여행 괴담을 담은 <사고> 역시 <절벽>가 유사한 아쉬움은 담고 있었습니다. 임용고시 시험에서 탈락한 지은(백진희)과 미라(김슬기), 그리고 선주(정인선)은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시험을 망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신 그들은 음주운전으로 다시 술을 사가지고 펜션으로 가던 도중 교통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욱하는 심정으로 음주운전을 하던 그들은 필연적인 사고를 당한 채 숲을 헤매게 됩니다. 다리를 크게 다친 선주를 부축하며 펜션으로 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도로에 있던 SOS 박스를 통해 구조 신호를 보내려고 했지만, 그곳에는 비상전화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펜션과 반대 방향에 있던 그곳으로 어렵게 발걸음을 옮겼던 그들에게는 허망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숲 속에서 보이는 불빛을 본 세 친구들은 펜션보다는 가까운 그곳으로 향하기로 합니다. 어떤 곳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다리를 다친 친구를 위해서는 이 선택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 인자한 얼굴의 할아버지가 반겨주며 위기를 벗어나는 듯한 그들은 의외의 상황에 당황하고 맙니다.

 

<사고>는 최악의 사고 후 이승과 저승 사이를 담고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롭기는 합니다. 하지만 소재가 신선함으로 다가오는 듯하면서, 형식에 치우친 실험은 아쉬운 실험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세 여성이 사고 후 경험하는 상황을 충분히 예측 가능하도록 만드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아쉬웠습니다.

 

두 편의 작품이 생각보다 아쉬웠지만 마지막 작품인 <탈출>은 관객들에게 웃음과 재미를 모두 담아내며 환호하게 만들었습니다. <SNL 코리아>와 <이웃집 꽃미남>에 출연하며 큰 관심을 받았던 고경표가 찌질한 교생으로 나선 이 작품은 옴니버스 공포 영화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왕따를 당해왔던 교생 병신(고경표)는 실습 첫 날부터 망신을 당하고 맙니다. 여고생들에게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학교를 왔지만, 여고생들의 기운에 눌려 주눅 든 그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여고생들의 집단 표적이 되고 맙니다. 교생 첫 날부터 굴욕적인 상황에 차라리 죽자며 옥상에 올라선 병신은 시도도 하지 못하고, 흑마술에 사로잡힌 탄희(김지원)을 만나게 됩니다.

 

다른 세상에 갈 수 있는 흑마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해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시도한 병신은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에 놀라고 맙니다.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탄희의 말이 사실로 드러나자 어쩔 줄 몰라 하던 병신은 힘겹게 자신의 집으로 들어섭니다. 하지만 이미 그 공간은 자신이 살던 그곳이 아닌 새로운 공간이었습니다.

 

거대한 몸을 가진 괴물 같은 존재가 어머니라고 합니다. 이 황당한 상황에 놀라 말도 하지 못하는 병신은 탄희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묻기 시작합니다. 탄희는 언니와 친구들이 다른 세상에 다녀온 경험이 있다며 그들의 경험담을 그대로 전하며 바보 같은 교생 병신으로 현실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고경표와 김지원이 호흡을 맞춘 <탈출>은 코믹함 속에 기괴함을 섞어 흥미로운 실험을 펼쳤습니다. 두 편의 이야기가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신기한 상황을 설정해 공포 영화 특유의 자유로운 실험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을 벗어난 특별함 속에 신비한 경험을 하게 한 <탈출>은 고경표의 수많은 표정 연기가 주는 재미와 화끈해진 김지원의 연기까지 하나가 되어 한국 공포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체적인 틀 자체는 흥미로웠지만 2% 부족했던 <무서운 이야기2>는 내년 시즌 3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보다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공포 영화가 활성화되어 한국 영화가 보다 발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B급 무비의 정수라고 불리는 다양한 실험들이 효과적으로 표현된 <탈출>과 같은 도전들이 지속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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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7 08:14

은밀하게 위대하게 100만 보다 흥미로웠던 바보를 동경하게 된 김수현

웹툰으로 최고 인기를 누렸던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최단기 100만을 동원하며 천만을 바라볼 수 있게 한 이 작품의 재미와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는 다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웹툰을 읽은 이들이라면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에 실망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가치는 흥미로웠습니다. 남과 북이라는 분단국가의 현실 속에서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바보에 대한 동경은 어쩌면 우리가 품고 있는 가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바보가 되기를 꿈꾸는 최고의 전사, 그들은 왜 바보를 동경했나?

 

 

 

 

웹툰으로 공개되어 큰 사랑을 받았던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많은 영화인들이 영화화하기 원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남과 북이라는 분단 국가에서 이념의 문제를 흥미롭게 풀어낸 이 작품은 단순함을 넘어선 깊은 성찰을 담고 있었습니다.

 

김수현과 박기웅, 이현우라는 여심을 뒤흔드는 강력한 스타들이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스타들보다 더욱 흥미롭고 매력적이었던 것은 그 안에 품고 있는 '바보'였습니다. 스스로 바보이기를 원했던 누군가를 생각하게 하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그렇게 은밀했지만 위대한 가치를 남겨주었습니다. 

 

북한의 최고 특수부대 요원인 원류환(김수현)은 특수 임무를 부여받은 남한으로 남파됩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 북한 최고의 특수요원인 원류환은 남한의 산동네 바보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고, 동네바보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는 이 황당한 상황마저도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라는 사실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임무 같은 임무가 주어질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동네 슈퍼 2층에서 기거하며 일을 도와주는 동구는 그 일에 만족합니다. 매일 2층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동네 아이들에게 맞고 바보라고 놀림을 당해도 그에게는 동네 바보 동구로서 지내야만 합니다. 우편배달부인 서상구(고창석)과 주기적으로 만나는 것만으로도 동구는 만족합니다.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액을 벌고, 고기가 들어간 국을 먹는 동구에게는 남한의 산동네는 그저 천국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비록 영웅 칭호를 받고 있던 원류환이 남한에서는 바보 동구로 살아가는 것이 답답했지만, 아침마다 보는 유란(박은빈)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동네 바보 동구로 살던 그에게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함께 고된 훈련을 해왔던 리해랑(박기웅)이 임무를 부여받고 남파가 되어 같은 동네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기획사에 들어가 아이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보에 비하면 해랑의 임무는 너무 고급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북한의 남파특수공작 5446부대 오성조 제 3조장 원류환과 다른 조 조장이었던 리해랑, 그리고 원류환에 의해 키워진 리해진. 그들은 하나가 되어 자신들을 제거하려는 김태원(손현주)와 자신들을 살리겠다고 나선 국정원 서수혁(김성균)의 대립 관계도 흥미롭습니다.

 

남과 북의 대립 관계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흥미롭습니다. 오직 살인 기계로 키워진 특수공작원이 남한으로 내려와 바보가 되고 아이돌 도전자가 된다는 설정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왜 그들은 그런 임무를 맡아야만 했는지 그 의도가 흥미로우니 말입니다.

 

 

김수현과 박기웅, 이현우라는 젊은 배우들과 손현주, 박혜숙, 고창석 등의 중견배우들이 하나가 되어 보여준 호흡은 흥미로웠습니다. 주인공 역을 한 김수현은 쉽지 않은 바보 연기를 멋있게 해냈고, 스스로 영화 주인공으로서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도 새로운 발견이었을 듯합니다.

 

영화는 웹툰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밋밋하게 흘러가기도 했지만, 이야기 자체가 주는 재미를 배우들이 잘 소화해주어 영화만의 재미를 느끼게도 했습니다. 하지만 후반부 액션에 집중하다보니 정작 중요했던 과정들이 자세하게 표현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아쉬웠습니다. 동네 바보로서 활동하는 동구와 동네 사람들의 관계를 좀 더 효과적으로 이어주기를 원했지만 부족했습니다.

 

이야기 전체의 주제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동네 바보로서 활동하는 동구의 모습이 달동네 주민들과의 관계를 좀 더 촘촘하게 담아냈다면 마지막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을 듯합니다. 강한 액션이 흥미롭게 다가오기는 했지만, 조금 과한 듯한 액션은 오히려 영화 전체의 균형을 무너트린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원작을 재해석하지 않고 최대한 원작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변화가 클 수는 없었습니다. 웹툰 원작 특유의 재미를 살리는 역할은 실제 배우들이 해주었고, 중요했던 것은 그 안에 담고 싶었던 주제의식이었습니다. 왜 최고의 요원인 원류환이 바보로 살아가야만 했는지가 이 여화의 모든 핵심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부대. 남과 북의 대립과 우호적인 분위기 모두 서로의 권력간 이해관계가 상충하지 않는 선에서 멋대로 이어질 뿐입니다. 공통적인 가치를 통해 분단된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오직 자신들의 권력을 위한 행위에만 집착하는 현재의 남과 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긴장관계 속에 유용하게 사용될 특수요원들은 평화 유지를 위해서는 무조건 제거해야만 하는 부속품에 불과했습니다.

 

권력을 위해 국민들을 그저 언제나 바꿔 끼울 수 있는 부속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위정자들의 만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마지막 순간 주인공인 동구는 왜 바보가 되기를 희망했을까?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가 왜 대한민국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의 바보가 되기를 원했는지는 중요합니다. 우리 시대 바보의 미학이 주는 가치는 <은밀하게 위대하기>를 통해 다시 한 번 관객들에게 진하게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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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31 08:05

에프터 어스-윌 스미스 부자의 아빠 어디가, 한국 예능이 더 재밌다

윌 스미스와 제이든 스미스를 앞세워 M. 나이트 샤말란이 메가폰을 잡은 SF 영화 <에프터 어스>는 많은 기대를 하게 했습니다. 3072년 지구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던 영화였지만, 왜 만들었을까 고개를 갸웃하게 했습니다. 제이든 스미스를 키우기 위한 미국 판 '아빠 어디가'는 매주 만나는 원작 예능보다 재미도 감동도 덜 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윌 스미스의 아들 제이든 스미스 키우기, 관객은 봉인가?

 

 

 

 

지구의 멸망이 다가오자 다른 행성으로 이주한 이들은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지구와 비슷한 행성으로 이주는 성공적이었지만 기괴한 괴물들은 인간을 사냥하며 위협해옵니다. 이런 괴물들의 위협을 막아낸 영웅은 바로 사이퍼 레이지(윌 스미스)였습니다.

 

 

인간이 두려워하는 순간 내뿜는 페르몬을 냄새 맡아 사냥을 하는 괴물들은 철저하게 인간의 두려움을 기회로 삼습니다. 결국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그 괴물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당연히 괴물들을 잡아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사이퍼는 대단한 존재입니다. 괴물들 앞에서도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는 그는 괴물을 잡아내는 최고의 전사였습니다.

 

사이퍼가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가족과의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전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키타이(제이든 스미스)는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탁월한 신체적 능력을 발휘하기는 하지만,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키타이는 전사가 되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아버지 앞에서 당당한 전사가 되고 싶은 키타이는 여전히 사이퍼와는 힘겨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괴물을 잡기 위해 밖에 나간 사이, 괴물의 습격을 받은 키타이는 누나를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렸던 키타이는 괴물의 습격을 받고 누나는 어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그 트라우마는 키타이를 힘겹게 했고, 누나를 너무 사랑했던 아버지 사이퍼와는 관계는 더욱 서먹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는 퇴직을 하겠다는 사이퍼는 아들과 함께 모의 연습을 위해 괴물을 우주선에 태워 목적지를 향해 갑니다. 하지만 문제는 갑자기 우주선이 추락을 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함께 갔던 대원들은 모두 사라지고 상처까지 입은 사이퍼는 아들만이 유일한 희망이 되었습니다. 꼬리 부분에 SOS를 알릴 수 있는 도구가 존재하고, 누군가 그곳으로 가서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그들은 고립되어 죽을 수밖에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괴물들이 들끓는 그곳에서 아들 키타이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한 여정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습니다. 아직 어리기만 한 키타이가 수많은 괴물들을 무찌르고 추락한 우주선 뿌리 부분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자신들이 떠나왔던 지구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는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자의 관계를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지구인들이 떠난 후 완전히 바뀐 생태계 속에 떨어져 위기를 극복한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최고의 전사인 아버지를 구하는 과정을 통해 어린 아들의 성장과 멀어졌던 부자간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방식은 색다를 것도 없습니다. 평범한 주제를 낯선 환경을 끄집어들이고, 게임을 하는 듯한 방식으로 미션을 수행하는 형식은 재미를 담보하기 힘들었습니다.

 

제이든 스미스가 단독 주연으로 나서 모진 과정을 통해 진정한 전사로 성장하는 영화라는 점이란 사실은 그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얼마나 효과적인 연기를 보여주느냐가 중요해지만, 제이든을 원톱으로 내세우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탁월한 연기력을 갖춘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부족했던 제이든이 성룡과 함께 찍었던 <베스트 키드>의 후속편 같은 느낌까지 주었습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이들이라면 실망은 배가 될 수 있습니다. 감각적이었던 그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고, 올 해 개봉된 다양한 SF 영화들과 비교해 봐도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는 점은 <에프더 어스>의 한계입니다. '아빠 어디가'를 엄청난 돈을 들여 찍기는 했지만, 매주 일요일 방송되는 원조 예능보다도 재미나 감동도 부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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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30 08:05

스타트랙 다크니스-가장 할리우드다운 SF 영화의 위용을 보여주었다

TV 시리즈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스타트랙>의 영화화는 오래 전일입니다. 최근 개봉된 <스타트랙 다크니스>는 우리에게는 <로스트>로 유명한 JJ. 에이브람스가 새롭게 영화 시리즈로 제작 중인 두 번째 작품입니다. 기존의 <스타트랙>과는 다른 에이브람스 스타일이 가득한 새로운 <스타트랙>은 안정적으로 안착하고 있음을 이번 시리즈에서 잘 보여주었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시리즈를 몰라도 좋을 스타트랙 다크니스, 매력적이었다

 

 

 

 

엄청난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스타트랙>은 수많은 시리즈를 통해 얻어진 그들만의 역사는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고 이를 공유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축복 같지만, 시리즈를 접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 진입 장벽은 너무나 높기 때문입니다.

 

JJ. 에이브람스가 만들어낸 <스타트랙>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TV 시리즈가 아닌, 영화라는 점에서도 진입 장벽은 낮습니다. 전편이었던 <스타트랙 비기닝>을 시작으로 에이브람스만의 <스타트랙>은 시작되었습니다. 기본적인 <스타트랙>에 기반하고 있지만, 영화를 통해 새롭게 접한 이들도 손쉽게 <스타트랙> 특유의 재미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에이브람스의 두 번째 <스타트랙>인 <스타트랙 다크니스>는 전편인 <스타트랙 비기닝>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거대함선 USS 엔터프라이즈호의 커크 함장(크리스 파인)은 미지의 행성에서 알 수 없는 부족들에게 쫓기는 커크와 본즈(칼 어번)는 화살과 창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절벽 아래로 뛰어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합니다. 폭발을 하려는 화산에서 화산을 멈추게 하려는 임무를 하던 스팍(재커리 퀸토)은 홀로 활화산 속에 남겨지게 됩니다.

 

폭발직전의 화산을 막지 않으면 이 행성의 문화는 완전히 파괴되게 되고, 스팍을 살리기 위해서는 부족원들에게 엔터프라이즈호를 노출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합니다. 스팍은 자신들의 임무를 망각하지 말고 그대로 떠나라 하지만, 커크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자신들이 비록 자신들을 숨긴 채 행성을 조사하는 탐험을 하고 있지만, 스팍이 죽도록 놔둘 수는 없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산을 멈추게 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스팍은 경건하게 죽음을 맞이하지만, 커크는 부족민들이 보는 상황에서 엔터프라이즈호를 화산으로 이끌어 스팍을 함선으로 데려오는데 성공합니다. 자신의 죽음과 임무를 바꿨던 스팍에게는 자신이 살았다는 사실이 반가운 것이 아니라, 원칙을 어겼다는 사실에 분노합니다. 스팍은 그런 존재였고, 커크는 전혀 다른 열정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이 문제로 커크는 엔터프라이즈호 함장 자리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 생각했던 함장에서 밀린 커크는 어렵게 일등항해사로 임명됩니다. 엔터프라이즈호에 다시 승선하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커크는 의외의 상황에 처하고 맙니다.

 

첨단 무기들을 개발하는 중요한 위장 건물이 폭파되면서 함선의 함장들이 회의실에 모인 상황에서 커크는 이 자리가 함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가장 진화한 인종인 존 해리슨(베네딕트 컴버배치)이 공격을 시도했고, 중요 회의석상에 모인 함장들과 일등항해사들은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전멸할 수 있는 상황에서 커크의 활약에 의해 어렵게 위기 상황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해리슨을 잡기 위해 엔터프라이즈호의 함장으로 복귀한 커크는 지구와 대립 중인 외계 행성으로 향하며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들은 시작됩니다.

 

해리슨을 잡기 위한 그들의 활약은 결과적으로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들을 만들지만, 스팍과 커크가 서로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중요했습니다. 시작점에서 중요한 존재들인 커크와 스팍이 어떻게 우정을 쌓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후 시리즈는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물론 극중 가장 강력한 적이라는 해리슨이 생각보다는 약해 보였다는 사실은 아쉬웠습니다. 물론 일당백이라는 말이 당연하듯, 대단한 활약을 보인 것은 분명하지만 영화적인 측면에서 아쉬움이 존재하기는 했습니다. 화려한 영상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SF적인 환상을 품게는 했지만, 이야기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더욱 크게 다가왔습니다.

 

<스타트랙>이라는 거대한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는 JJ. 에이브람스의 영화는 최소한 50년은 해도 좋을 정도로 풍성해 보였습니다. 두 편의 영화만 봐도 <스타트랙>의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힘은 거대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가장 최적화된 3D 영화라는 말이 손색이 없을 정도로 화려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모두가 한번쯤은 동경해왔던 우주여행이라는 테마와 할리우드 거대 영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테크닉을 보여준 영화가 바로 <스타트랙 다크니스>였습니다. 기존의 시리즈와 상관없이 단편으로 봐도 흥미롭고 재미있을 정도로 시리지의 연속성을 약화시키고, 영화적 재미를 배가시켰다는 점에서 에이브람스의 전략은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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