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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스타

구봉서 별세, 코미디계의 진정한 큰별이 졌다

by 조각창 2016.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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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코미디언 구봉서가 향년 90세로 생을 마감했다. 현재의 청년세대들에게는 알 수 없는 이겠지만 부모 세대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존재이기도 하다. 코미디언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채운 개그맨 시대 구봉서는 잊혀진 존재일 뿐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대의 별이 저물었다는 점은 중요하게 다가온다. 이제는 말 그대로 코미디언들의 세계는 구봉서를 끝으로 완전히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후배들이 생존해있기는 하지만 활동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상징적인 인물의 별세는 그 의미를 더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코미디언 구봉서는 1925년생으로 평양의 유복한 의료상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대동상고를 졸업하고 1945년도 길에서 아코디언 연주를 하다가 캐스팅 돼 태평양 악단에 들어가 악단 활동을 시작했다. 악극의 시대 구봉서는 아코디언 연주만이 아니라 노래와 연기 등 모든 것을 다하는 재능 많은 인물로 당대 최고의 희극인으로 발돋움했다.

 

지금은 일상적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50년 대 부터 연기와 노래, 연주까지 못하는게 없었던 시대를 앞서갔던 구봉서는 충무로로 진출해 무려 4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지금과 달리 다작이 가능한 제작 시스템이기는 했지만 인기 없는 이가 이 많은 수의 영화를 찍을 수는 없다는 점에서 구봉서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다.


지금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버린 MBC의 '웃으면 복이와요'에 출연하며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당시 최고의 유행어였던 72자의 이름인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로 이어지는 말도 안 되는 이름 부르기는 구봉서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떠올리는 이들도 많을 듯하다.

 

"코미디가 사회를 정화하는 역할을 못한다면 의미와 역할이 퇴색할 것"

 

구봉서가 정말 대단한 것은 박정희 독재 시절 풍자 개그를 했다는 사실이다. 독재자가 마음대로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 두려움 없이 시대를 풍자하는 개그를 했다는 사실은 지금 들어도 대단할 수밖에 없다. 은퇴 후에도 구봉서는 풍자 개그가 사라져가는 현실을 통탄했다고 한다.

 

구봉서의 이런 소신 있는 행동은 단순한 말 뿐이 아니었다. 2000년대 중반 한 지상파 방송사에서 개그맨 노예계약 파문이 일었을 때 일화는 유명하니 말이다. 직접 지팡이를 짚고 가서 방송사 고위 간부들에게도 호통을 칠 만큼 코미디언을 천직으로 여기며 후배들을 위해 직접 나설 정도로 정의롭고 신념 강한 희극인이었다.


구봉서의 별세 소식에 후배 희극인 들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들까지 그를 애도하는 것은 단순한 행위는 아닐 것이다. 그만큼 그가 보여준 신념이 많은 이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독한 권력에 무너져 개그에서 풍자는 사라진지 오래다.

 

사회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저 저질 개그만 일삼는 현실 속에서 구봉서의 존재감은 더욱 강력하게 다가온다. 서슬퍼런 독재 시절에도 사회를 풍자했던 그가 봤을 때 후배들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했을지 안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의 코미디의 역할론은 별세 소식으로 더욱 강렬함으로 남겨졌다. 그렇게 우린 또 큰 별 하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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