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또 다른 시선으로 Another View
Entertainment/스타

토미 페이지 사망 추모 물결이 이어지는 이유

by 조각창 2017. 3. 5.
728x90
반응형

90년대 팝 스타였던 토미 페이지가 사망했다. 46살이라는 아직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나이임에도 갑작스럽게 사망 소식이 들렸다. 현지에서는 토미 페이지가 자살했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 세계적으로 토미 페이지에 대한 추모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토미 페이지가 우리에게 더욱 살갑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의 외증조모가 바로 한국인이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며 그에 대한 관심 역시 뜨거웠던 것이 사실이다. 토미 페이지는 90년대 큰 인기를 얻은 팝스타다. 감미로운 목소리가 장점인 그의 노래는 말 그대로 달달하다. 


감미로운 목소리와 꽃미남 외모를 가진 토미 페이지의 앨범 '페인팅 인 마이 마인드'에 수록된 '아일 비 유어 에브리싱I'll Be Your Everiting'은 당대 최고의 히트곡이었다. 이 곡은 1990년 4월 빌보드차트 1위에 올랐고, 13주 동안 40위 권에 있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은 곡이다.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린 곡이기도 하다. 전성기였던 1994년에는 내한 공연을 열기도 했었다. 당시만 해도 최고 인기를 누리던 팝스타들이 일본 공연은 해도 국내 공연을 하지는 않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특별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토미 페이지의 외증조모가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애착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애써 한국인임을 따지는 느낌도 있지만 스스로도 한국인의 피가 섞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점에서 다르게 다가온다. 그만큼 우리에게 토미 페이지는 특별한 존재이기도 하다.   


"토미 페이지가 자살한 것 같다"


4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토미 페이지가 숨진 채 미국 뉴욕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지인들은 매체를 통해 토미 페이지가 자살한 것 같다고 밝혔다. 아직 정확하게 사망 원인이 구체적으로 공식 발표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은 참 서글프게 다가온다. 


토미 페이지는 미 뉴욕대(NYU) 경영대 학생이기도 했다. 팝스타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복학해 학업을 마치기도 했다. 이후에도 싱어송라이터로서 재능을 이어갔고, 빌보드 발행인을 거쳐 음악 스트리밍업체인 판도라의 부대표까지 맡으며 사업적인 수완도 드러내기도 했다. 


가수로서도 뛰어나게 큰 사랑을 받았고, 음악 사업가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했던 그가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과 등을 졌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 여전히 토미 페이지를 잊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팬들은 많이 아파하고 슬퍼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스타인 만큼 그를 아쉬워하는 팬들 역시 많다. 


토미 페이지는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노래는 영원히 남을 수밖에 없다. 꽃미남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빼어난 외모에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른 그의 대표곡들은 영원할 것이다. 노래라는 것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토미 페이지의 노래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글이 마음에 들면 공감 눌러주세요]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