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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다른 시선으로 Another View
NongDam

교차상영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유감이다

by 조각창 2009.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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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상영이 다시금 도마위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조재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집행자>가 대작 영화들에 밀려 교차상영을 하게 되었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는 눈물의 기자회견을 가진 것입니다. 다른 문제로 아직까지도 설왕설래만 있는 <하늘과 바다>에서도 교차상영문제가 언급되었지만 다른 이슈에 묻혀 공론화되기는 힘들었습니다.

교차상영은 왜?

전국적으로 단관극장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못생긴 아파트같은 멀티플렉스들이 전국을 장악하면서 얼마든지 예상 가능했던 문제였습니다. 무분별한 확장으로 인해 인구수대비 스크린의 무한 확대로 자기들끼리의 출혈경쟁으로 만들어진 교차상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운영 방침으로 굳어졌습니다.
돈되는 영화가 아니면 과거 관례처럼 여겨졌던 신작 일주일 상영이 깨어진지도 이미 오래전 일입니다. 최소한 주말을 낀 일주일 상영은 영화를 만든이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보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관객들과 만나지 못하는 영화는 상업영화로서의 생명력을 끝이나는 것이니 말이지요.

최소한의 마지노선이 무너지며 주말이 없는 월요일부터 목요일(최근엔 월화 이틀 상영하는 작품도 생기기도 했습니다)까지 상영되는 말 그대로 땜빵용 영화들도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소위 대박 영화와 다음 대박영화 중간에 극장에 걸 수있는 샌드위치 영화의 설움은 이제 교차상영으로 더욱 세분화 되어간 셈입니다.

이런식으로 되어가는 가장 큰 원인은 무분별한 멀티플렉스화를 꼽을 수있습니다. 전세계적인 추세인 멀트플렉스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조절은 가능했을 것입니다. 더불어 작은 영화들이 안정적으로 상영될 수있는 정책적인 방식들도 함께 고민되어질 수있었습니다. 의무적으로 멀티플렉스 한관은 작은 영화나 예술영화를 상영하도록 멀티플렉스 개관시 의무조항으로 명기했다면 다양한 영화들이 소통될 수있는 틀은 보장될 수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부분은 이후 사회적인 분위기에 영합해 시행되었었고 현재도 존속되고는 있지만 현재는 많이 위축되거나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교차상영은 멀티플렉스의 고유 권한입니다. 그들의 영업방식을 제3자가 왈가왈부할 수도 없습니다. 정부에서 강제적으로 폐지하도록 해서도 안됩니다. 법적으로 신작 영화는 무조건 일주일이상은 상영해야만 한다는 법률적 권리를 부여할 수도 없습니다.

개인 사업자를 정부의 권력으로 혹은 감정적인 차원에서 강제할 수있는 범위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제작자들에게는 길로틴같은 교차상영이지만 극장주들에게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인 이 뜨거운 감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외로 단순하고 쉬운 방법들이 많습니다.

해법은 의외로 간단

우선 생각해볼 수있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 멀티플렉스의 한 관 정도를 작은 영화들을 상영하는 조건으로 세재지원을 하는 방식일 듯 합니다. 예술영화전용관과 유사점이 있지만 이는 뒤에서 다시 이야기를 하고 전국적으로 산재한 멀티관중 일부를 작은 영화에 할애하고 일정 부분을 국가에서 티켓을 구매해주는 방식은 서로에게 윈-윈으로 다가올 수있을 듯 합니다. 

문화바우처 제도를 좀 더 확대하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효과를 극대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작은영화, 예술영화라고 이야기되는 영화들에 대해 좀더 확장된 관객층을 구축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더욱 큰 효과를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MB정권 들어서며 그동안 지속적으로 진행하며 확장을 노리던 예술영화전용관 사업은 답보를 지나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현실적인 답안은 이 예술영화전용관이 가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소위 일반 극장상영이 힘든 작은 영화들과 상업성은 떨어지나 예술성이 높은 영화들을 주로 상영하는 이 정책은 더욱 확장되어야만 했습니다.

숫자의 확장과 지원 확대가 아닌 답보와 축소는 소외된 영화들과 소외받은 관객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 없음입니다. 상업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작품들중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들 위주로 다양한 관객들과 만날 수있는 최적의 공간인 예술영화 전용관은 획일화된 멀티플렉스가 놓치고 있는 많은 것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영화들이 소통되어지고 생산되기 위해서는 이런 제도적인 지원이 활성화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런 방식이 가까운 일본의 작은 동네 영화관식으로 운영되어도 될 것입니다. 작은 단관들을 통해 다양한 영화들을 만나볼 수있다는 것은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들일테니 말입니다.
 
그 형식이 어떻든 멀티플렉스의 상업적인 틀을 무조건 규제하겠다는 발상보다는 적절한 금전적 제재와 이를 통해 얻어진 수익금을 작은 영화들과 예술 영화들을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공간으로 투입한다면, 상업성과 예술성이 모두 공존하는 긍정적인 모델을 만들 수있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

분명한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화가 힘들어지자 눈물로 호소하는 모습에 뜨악해하는 팬들의 심정을 그들은 이해하고는 있을까요?

더불어 영화적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극장들의 교차상영이 영화를 망쳤다는 아전인수격의 언론플레이는 본질을 흐리는 형국을 만들어버렸습니다. 조재현의 눈물이 악어의 눈물처럼 인식되는 것은 그만한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함께가 아닌 자신의 것만을 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만약 그가 출연한 영화가 최소한 만족할 만한 관객몰이가 되었다면 그들은 결코 교차상영의 문제점들에 대해 논의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교차상영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1000만 관객을 동원한 '해운대'의 감독과 배우들도 모두 인식을 공유하고 함께 해결할 수있는 방법을 논의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저 자신들의 상업영화가 상업적인 완성도가 부족한 이유로 극장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을 박해라도 받는 것처럼 설레발을 치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자신의 정치색을 이용해 문화체육부 장관을 만나 탄원서를 제출하고 이를 받아든 장관은 극장주를 옥죄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씁쓸하게만 만듭니다. 

"그러나 극장들이 상업적 논리로 이 문제에 접근한다면 불공정 거래 등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화부 입장에서도 극장주들에 설득 작업을 벌이겠다" 문화부 장관의 이 발언은 합리적인 발언처럼 보이겠지만 사업주들에게는 무척이나 강한 압박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친재벌 정권에게도 자신들에게 충성하는 이들의 읍소를 어찌하지 못하나 봅니다. 주호성의 자신 작품의 질과는 상관없는 교차상영 논란은 도를 넘어서 '해운대'도 교차상영을 하면 10만 밖에는 들 수없다는 망말로 자신을 철저한 피해자라고 포장해 스스로 '교차상영' 문제를 웃음꺼리로 만들어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집행자'역시 영화의 의미를 망각한 윤계상의 좌파발언은 영화 자체를 바보스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문제가 다분한 이들의 교차상영 문제 언급은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어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문제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런 불합리함을 토로해왔고 새로운 방안들에 대해 많은 논의들을 해왔습니다. 이런 과정속에서 적극적이지 않았던 그들이 자신의 돈벌이에 눈이 멀어 예상보다 수익률이 떨어지자 걸고 넘어가는 것이 '교차상영'이라는 식으로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문제가 클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하늘과 바다'와는 달리 의외로 좋은 성과을 올린 '집행자'의 경우에는 안타까움이 많았을 듯 합니다.

그나마 뒤늦게라도 자신들의 문제로 영화계의 해묵은 과제들을 인식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기는 합니다. 그들의 이기적인 생각에서 시작했더라도 모든 이들이 만족할 수있는 방안들을 모색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가질 수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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