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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gDam

68년 만에 폐지 위수령 군부독재 그늘이 사라졌다

by 조각창 2018.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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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령이 폐지되었다. 군인들이 합법적으로 국가를 전복할 수 있게 한 위수령이 사라지며 더는 군부 독재가 이 땅에 다시 발생하기 어렵게 되었다. 위수령이 다시 화두가 된 것은 촛불 정국에 정치 군인들이 쿠데타 모의를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언급되었다. 


위수령은 지난 1950년 3월 27일 육군의 질서 및 군기유지, 군사시설물 보호 목적으로 최초 제정되었다. 이 내용만 보면 문제가 될 이유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는 없다. 군의 질서와 군기, 군사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한 법령은 너무 당연한 일이니 말이다. 


문제는 이를 악용했기 때문이다. 치안 유지에 군 병력을 동원하는 계엄령과 비슷하지만 국회 동의가 필요 없다는 점에서 계엄령과는 다르다. 그 점에서 위수령은 더욱 큰 문제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국회 동의 없이 군 부대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위수령이 68년 만에 오늘 정식으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폐지됐다. 폐지되는 순간 문 대통령이 '위수령이 폐지됐다. 참 감회가 깊다'고 간단히 말했다. 제가 알기로 1971년 문 대통령이 서울에서 대입 재수를 할 당시 신문을 열심히 보며 당시 시국 상황을 예민하게 바라봤을 것이다. 1979년에는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하고 학교에서는 퇴학을 당한 시점이다. 본인의 불안한 상황과 시국이 불안한 상황이 겹쳐 이런 회한을 느낀 것 아닌가 싶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1일 '위수령 폐지'와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위수령이 68년 만에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폐지되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위수령으로 곤욕을 치렀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만큼 누구보다 '위수령 폐지'와 관련해 큰 의미로 다가왔을 듯하다. 


대통령령인 위수령은 1965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1971년 교련반대 시위, 1979년 부마행쟁 등 3차례 발령이 되었었다.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군대를 동원해 국민들을 억압해왔던 역사는 1987년에도 발령될 뻔했다. 전두환이 87년 항쟁 당시 위수령을 선포하려다 6.29 민주화 선언 직전 취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문제의 위수령이 다시 준비되었었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눈앞에 다가온 그 시점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무사가 위수령과 계엄령을 선포할 준비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전 세계가 주목한 평화 집회를 탱크와 총칼로 제압하려 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쿠데타 모의를 하고도 국방부장관에 항명까지 한 정치 군인들의 행태는 여전히 자신들이 박정희 전두환처럼 쿠데타로 권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란 꿈을 품고 살았던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평화 집회로 전 세계 언론들까지 찬사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전방에 있던 군부대로 시민들에게 총을 쏠 준비를 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지난 7월 위수령이 위헌 위법적이고, 시대 상황에 맞지 않다며 위수령 폐지안을 입법 예고했었다. 정부는 11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위수령 폐지령안을 심의 의결해 68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다시는 등장하지 말아야 할 위수령이 사라진 2018년 9월 11일은 특별한 날이 될 듯하다.  


정치 군인을 제거하고 군인은 국방에 최선을 다하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말 그대로 체질 개선을 해야만 하고 그 과정이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미 항명 행위까지 한 그들이 이후에도 못난 짓을 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지만 시대는 변했고, 과거의 군인이 아닌 새로운 가치를 가진 군인들이 더 많은 상황에서 그런 어설픈 욕망만 품은 정치 군인들이 설 자리는 점점 사라져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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