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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0. 09:02

통 큰 고현정과 자살로 삶을 마감한 배우 김추련: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춤추는 꿈들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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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김추련이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대부분이 그러하듯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초라함. 그 사이에서 꿈틀대며 돋아난 외로움과 상처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여기에 더 이상 배우로서 살아갈 수 없는 힘겨움이 그를 더욱 힘겹게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극단적인 부익부 빈익빈 해결책 없으면 자살은 일상이 된 다





영화판은 승자 독식이 그 어느 곳보다 강한 곳입니다. 1등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구조에서 1등을 하지 못한 대다수는 항상 빈곤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꿈 공장이라고 불리는 영화계의 현실입니다. 전국적으로 분포된 수십 개의 영화학교에서 매년 수백 명의 예비 영화학도가 나오지만 그들의 실업률은 통계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것도 현실입니다. 

시장이 넓어 다양한 인력들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고 한정된 시장에서 매년 수없이 배출되는 예비 영화인들로 인해 콩나물 자라듯 빽빽하게 들어선 인력풀은 고 비율 저효율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영화학과의 특성상 다른 일은 곧 패배로 인식되고 있기에 그들의 고통은 남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예체능을 지원하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원한 분야가 아니라면 의미 부여를 하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구조적으로 그들이 꿈을 펼치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회 시스템은 출발부터 문제를 안고 시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슬픈 예술인들은 자신의 불행과 싸우는 것부터 배워야 하는 현실이 답답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극과 극의 상황은 영화 현장에 가보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는 합니다. 주연배우들과 조연, 엑스트라 등으로 철저하게 나뉜 등급의 벽은 그들이 누리는 호사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영화 촬영 틈틈이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이나 그들을 위해 마련한 식사 등도 다른 이들과 차원이 다른 상황이 존재합니다. 물론 함께 식사하고 휴식도 각자 차에서 하는 경우들도 많지만 제작비가 큰 영화들의 경우 그만큼 출연하는 이들의 규모도 달라지며 자연스럽게 등급에 따른 대우가 달라지는 경우들도 존재하고는 합니다. 

투자를 받아 영화를 제작하는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100억을 투자 받아 진행을 하는데 모두를 공평하게 해줄 수는 없습니다. 서울을 벗어난 지역에서 촬영을 하게 되면 통상 한 달 이상을 장기 체류해야 하기에 그들에 대한 식사부터 잠자리까지 모든 것을 지원해야 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동일한 공간에서 자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감독과 촬영감독 등 주요 스태프와 그 외의 현장 인력들의 차이는 극과 극으로 달라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배우들 문제는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이지요.

할리우드처럼 노동조합이 잘 꾸려져 그들의 노동현장을 감독 관리하는 집단들이 존재해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와 작업환경을 제공받는 것과 비교해보면 열악함 그 자체입니다. 법적인 노동시간은 사치이고 깨끗하고 안락한 공간을 보장받는 것은 한정된 이들의 전유물이 되는 현장에서 보수 역시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며 삶 자체를 피폐하게 하는 경우들이 태반입니다. 

주인공을 맡는 특급 배우들에서 수억 원의 출연료가 돌아가고 감독 등 주요 스태프들에게 고액의 출연료를 주고 남은 금액으로 그 외 인력들의 비용을 정산할 수밖에 없는 제작사로서도 힘든 것은 당연합니다. 100억, 200억이라는 제작비를 가지고 영화를 제작한다고 해도 3, 40억 영화를 제작하는 것과 다름없이 힘겨운 것은 비슷하기 때문이지요. 차라리 작은 영화는 성공과 실패에 대한 부담이라도 작지만, 제작비가 100억 단위가 넘어가면 실패는 곧 엄청난 빚잔치로 끝나는 경우들이 많기에 제작사로서도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에 비해 지자체들에서 영화 촬영지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지역 경제를 살린다는 취지로 영화 제작 지원을 하는 경우들도 있어 과거보다는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영화를 찍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체계적이고 투명한 제작 현장이 뿌리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영화 작업에 참여해 소요되는 기간 동안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하는 대다수의 인력들의 문제는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커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철저하게 능력에 따라 처우가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저 임금이 보장되고 최소한의 작업 공간이 보장되지 않는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그저 꿈만을 쫓아 현장에 나서는 것만큼 무모한 것은 없습니다. 성공에 대한 가능성 역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운 현실에서 영화를 꿈꾸고 영화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많은 이들에게는 절망의 현장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메이저 영화를 촬영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잡은 소수의 인력들도 이 모양인데 그렇지도 못한 이들의 상황은 상상이상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이들은 통상 자신이 제작비를 조달하고 직접 모든 것들을 책임져야만 하는 게 현실입니다. 물론 영화제가 열리는 지역에서는 제작 지원제도가 있어 혜택을 받기도 합니다. 영진위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있어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한정된 지원 프로그램으로 매년 수많은 영화 인력들이 배출되는 상황에서 부익부 빈익빈은 극에 달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영화를 하기 위해 평소 아르바이트로 삶을 연명하고 몇 달간 치열한 현장을 마쳐도 그들에게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되지 않는 다는 현실도 영화를 삶으로 택한 이들에게는 절망처럼 이어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구조적인 모순은 드라마 촬영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영화 촬영과 별반 다르지 않는 드라마 촬영장의 풍경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송국이 아닌 독립 제작사가 난립한 상황에서는 그런 리스크가 더욱 크게 작용하며 피라미드로 형성된 환경은 더욱 극단적인 모습을 드러내고는 합니다. '성공적자'라는 웃지 못 할 상황들이 곳곳에서 펼쳐지는 상황들은 우리의 열악함을 그대로 드러내고는 하지요. 수백억을 들여 성공을 해도 실 제작사에게 떨어지는 금액은 크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투자금의 규모와 비율에 따라 철저하게 나뉘는 분배 방식으로 인해 자칫 잘못하면 영화는 성공했지만 제작사는 망하는 경우들도 종종 생기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최근 고현정이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 현장에서 스태프들에게 통 크게 선물을 안기고 있다는 소식은 흐뭇합니다. 현장의 어려움을 알고 있는 이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들을 동원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려한다는 사실은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지요. 며칠 전에는 70년대를 주름 잡았던 배우 김추련이 지역 오피스텔에서 목을 메 자살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영화배우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젊은 시절과 달리 더 이상 배우로서 삶을 살아갈 수 없었던 그가 느꼈을 고독과 외로움은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힘겨움이었을 것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역시 노숙자와 다름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생각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탤런트들의 대부분이 기초 생활자 수준도 안 되는 벌이를 한다는 사실은 국정 감사 등을 통해 공개된 사실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출연 횟수가 한정되어지고 그런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은 생활 자체가 힘들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능력만 된다면 수십억의 돈을 쉽게 버는 곳이 현장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1년에 수백만 원을 버는 것도 힘겨운 곳이 바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현장입니다(연극 등 순수 예술의 경우는 이보다도 더욱 열악한 게 현실이지요. 대중문화의 경우 대중들의 기호에 따라 수익 역시 극단적으로 나뉠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할리우드가 위대한 것은 엄청난 스타들의 성공담이 아닙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산업화되어 구조적으로 체계화된 틀 속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는 합니다. 법정 촬영 시간이 정해져 있고 체계화된 임금제와 최소한의 삶이 가능한 시스템 구축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물론 이런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도 열외인 이들이 존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는 하지만, 가장 진화된 형식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부러울 수밖에는 없습니다. 

독립 영화를 제작하는 이들에게도 수없이 많은 펀드 조직들이 즉각적인 수익이 아닌, 미래의 가치를 따져 투자를 함으로서 보다 양질의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이렇게 두각을 보인 이들이 할리우드 대작에 참여하는 시스템으로 선순환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부럽기만 합니다. 

우리 작업 현실에서 통 큰 고현정은 어쩌다 마주친 그대일 뿐이고, 쓸쓸하게 힘겨운 고통 속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김추련은 숱하게 접하게 되는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점이 두렵게 다가올 뿐입니다.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으로 최소한의 삶이 가능한 구조적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앞으로 제 2, 3의 김추련은 끊임없이 나올 수밖에는 없습니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하고 이를 통해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접근하지 못한다면 영화나 드라마의 미래는 제로섬 게임과 다름없어 질뿐입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극단적인 빈부격차는 이미 영화판에서는 있어왔던 현상이었습니다. 그런 현상이 우리 사회 전체를 뒤덮는 태재殆哉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김추련의 자살은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지금도 사회 시스템은 자살을 독려하고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강력한 경고음을 울리는 신호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비단 영화나 드라마 제작 현장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불균형한 구조는 1%만이 모든 부와 권력을 누릴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수많은 김추련을 양산해낼 수밖에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통 큰 고현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은 그래서 더욱 씁쓸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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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1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11.10 10:46 address edit & del reply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하늘에선 외롭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