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 google5b48f69e9aa743fc.html 또 다른 시선으로Another View :: 세월호 의인 자해 지독한 방법으로 외치는 SOS


2018.07.13 23:48

세월호 의인 자해 지독한 방법으로 외치는 SOS

세월호가 침몰하는 과정에서 탈출보다 줄을 자신의 몸에 묶고 아이들을 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의인이 청와대 앞에서 자해를 했다고 한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 그 지독한 트라우마는 평범한 그를 지옥으로 이끌었다. 떨쳐내려 해도 떨칠 수 없는 그날의 기억이 지배하고 있으니 말이다.


'파란바지의 의인'으로 불린 김동수 씨는 세월호 침몰 당시 학생 20여명을 구조했다. 화물차 운전기사였던 그는 소방호스를 자신의 몸에 감은 후 학생들을 구조했다. 그 과정이 그대로 방송이 되면서 그에 대한 관심 역시 뜨거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가족에게 "청와대에 가서 항의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제주에서 이날 오전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김씨 가족은 그와 연락이 닿지 않자 광화문광장에 머무는 세월호 유가족 관계자에게 전화로 상황을 알렸다고 한다. 여러 번 자해를 했던 김동수 씨의 가족들은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급하게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에 도착했지만 그의 자해 자체를 막지는 못했다고 한다. 김 씨는 유가족 관계자들을 보자마자 자해했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자해를 하는 것은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다. 그날 그 시점에서 멈춘 채 좀처럼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진상도 밝히지 못하고, 사람들의 고통도 치유하지 못하는 이 나라가 싫다"


김 씨는 참사 이후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으며 자택과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장, 제주도청 앞 등지에서 여러 차례 자해를 시도했었다. 그가 제주도청 앞에서 외친 내용이다. 가족을 잃은 유가족도 힘겹지만 그 배에서 생존한 이들도 불안과 공포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지독한 트라우마는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거대한 배가 침몰했다. 그리고 구조를 해야 할 정도는 구조를 하지 않고 방관만 했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만 믿고 배와 함께 침몰했다.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은 배가 침몰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국가는 외면하고 그것도 모자라 탄압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국가 기관이 나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감시하고 괴롭히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자한당 의원들을 노골적으로 그들을 조롱하기를 주저하지도 않았다. 


최근에 공개된 기무사 자료를 보면 군에서까지 '세월호 유가족'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참혹할 정도였다. '수장'을 언급하며 세월호를 그대로 방치하자는 주장을 했다는 사실은 끔찍할 정도다. 그런 자들은 군을 동원해 평화로웠던 촛불 집회를 제압하려는 준비까지 했다.


재벌들의 돈을 받아 '세월호 유가족'들의 진실을 요구하는 '단식 투쟁'하는 곳에서 '폭식 투쟁'을 하던 인간 이하인 극우 단체들의 만행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배와 함께 차가운 바다 속에 잠길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죽음마저 조롱했다. 


대통령부터 시작해 같은 당 국회의원들, 그리고 국가 조직들까지 하나가 되어 '세월호 참사'를 조롱하고 무시하고 탄압했다. 그 지독한 시간은 김동수 씨를 더욱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을 다 구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차오르는 바닷물로 인해 그대로 대피해야만 했던 상황들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었겠는가.


그가 그렇게 자해를 하는 것은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고 이해해 달라는 외침이다. 도무지 떨칠 수 없는 그 지독한 기억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다. 크고 작음은 있겠지만 우리 국민들 대다수는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다. 극우주의자들을 제외한 국민 전체는 그날의 기억에 여전히 아프기 때문이다.


김동수 씨는 보건복지부가 2015년 6월 그를 의상자로 인정했다. 그리고 행정안전부는 올해 1월 그에게 국민추천포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여전히 시신도 찾지 못한 이들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 과거는 잊자고 하는 이들도 있다.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이 없는데 벌써 잊자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그 고통은 사라질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그의 고통과 아픔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가 그런 극단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 만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로 힘겨운 모든 이들이 편안해질 수 있도록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글이 마음에 들면 공감 눌러주세요]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이 없습니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