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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영화/Film Review 영화 리뷰

곡성-곽도원과 황정민 그리고 천우희의 광기, 희망 없는 현실과 가족 붕괴 담았다

by 조각창 2016.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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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의 신작은 소문처럼 괴물다웠다. 기존의 그의 작품과 달리 직접적인 공포는 많이 제거되었지만 그가 던지는 섬뜩함은 더욱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퍼진 죽음의 그림자.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의 등장으로 인해 그 긴장감은 극대화되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사람이 죽었다에서 시작된 잔인한 사회풍자, 나홍진의 진가가 드러났다

 

 

한가롭다 못해 조용하기만 했던 시골 마을. 잠들어 있던 한 남자는 전화벨 소리에 깬다. 덩치가 큰 이 남자는 주섬주섬 옷 입기에 정신이 없다. 그 남자의 북적거림에 깬 부인은 묻는다. 무슨 전화냐고. "사람이 죽었대"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그는 시골 경찰이다. 

 

쉼없이 내리는 비에 현장에 가려고 나서는 그를 잡은 장모는 밥은 먹고 가야 된다고 한다. 그렇게 아침밥상을 받고 맛깔스럽게 먹는 종구(곽도원)는 푸근하기만 하다. 어린 딸 효진(김환희)은 아빠가 만만하다. 우리가 상상하는 경찰과 다른 그저 시골 마을 아저씨나 다름없는 아빠에게 딸 효진은 가장 강한 존재다.

 

아침까지 든든하게 먹고 도착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장대비는 계속 내리고 방안으로 들어가니 피범벅이 된 살인 현장은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참혹했다. 마루에 넋이 나가 앉아 있는 남자가 바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라고 한다.

 

초점을 잃은 피범벅이 된 이 남자의 모습과 창고에서 발견된 살해 현장, 그리고 기괴한 모습으로 만들어진 재단과 같은 모양은 이상하기만 하다. 이 죽음까지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비록 시골 마을이기는 하지만 사람 사는 곳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직업 역시 범죄와 일상이 된 경찰에게는 더욱 특별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후배 경찰 덕기(전배수)의 이야기를 그때는 흘려들었지만 종구는 그 안으로 빨려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천둥 번개와 거센 비가 쏟아지더니 불까지 나간 파출소에 갑작스럽게 나체의 여자가 입구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기겁하고 만다. 그렇지 않아도 뒷목이 쭈뼛해지는 이야기까지 들은 상황에서 그 여자의 등장은 귀신을 보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사건은 꼬리를 물고 계속 일기 시작했다. 다시 화재 사건이 일어났고, 현장에 나간 종구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빠지고 만다. 시커멓게 그을린 여성은 오열하고, 집안에서 발견된 사체들은 불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흉터가 남겨져 있었다. 누군가 살해하고 불을 질렀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전히 큰 불안감이 없었던 종구는 실려 가던 사체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손을 잡는 바람에 당황하고 만다. 그것도 모자라 울부짖던 여성이 종구에게 달려드는 상황이 기겁하게 할 정도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계속되던 종구는 문제의 여성이 자살한 후 그녀가 바로 비 오던 날 갑작스럽게 정전이 났던 경찰서에 나타난 벌거벗은 여자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기묘한 상황들이 연이어 다가오자 종구는 후배 덕기가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보양원을 운영하던 동네 남자가 산에서 죽은 동물 사체를 가지고 내려오려다 굴러 잠시 정신을 잃었다. 힘겹게 눈을 뜬 그는 기괴한 상황을 목격하고 만다. 훈도시만 찬 남자가 동물 사체를 뜯어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좀처럼 이 이야기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종구는 화재 장소를 지키던 중 정신이 나간 여자를 보게 된다. 자신이 살인 장면을 목격했다는 그녀를 따라 화재 현장에 들어선 종구는 너무 그럴 듯하게 묘사하는 그녀 무명(천우희)가 목격자라 확신한다. 하지만 그녀가 사라진 그 자리에 머뭇거리던 종구는 뒷문에서 동물 사체를 먹고 있는 외지인(쿠니무라 준)을 목격하고 기겁하며 도망친다. 하지만 멀리 도망치지도 못한 채 넘어진 종구를 덮치는 외지인의 모습은 두렵기만 하다.

 

독버섯을 잘못 먹어 생긴 문제라고 하지만 종구는 자신의 딸마저 변하기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다. 외지인을 찾아 깊은 산으로 들어서고, 그곳에서 길 안내를 하던 보양원 주인은 공포스러운 당시 상황을 의도하지 않았지만 재현하게 된다. 다시 비는 내리고 천둥 번개가 치는 상황에서 당황스럽게도 보양원 주인은 번개에 맞아 버린다.

 

처음엔 조용하고 편안하게 시작된 <곡성>은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하며 분위기는 더욱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산세가 깊은 그 마을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의 뒤에 존재하는 거대한 실체는 당혹스럽게 다가온다. 종구 가족과 모든 문제의 핵심에 선 외지인과 박수무당 일광(황정민)과 무명의 구도 속에서 영화는 섬뜩함을 만들어낸다.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곳에서 발견된 마른 꽃잎은 그저 그런 소품이 아닌 하나의 증거처럼 등장한다. 잔인한 살인이 일어난 곳에서 발견되는 마른 잎이 던지는 강렬함은 그래서 더욱 섬뜩하다. 신부가 외지인을 이야기 하는 장면은 하나의 힌트처럼 다가왔다. 일본 무당이라는 소문, 교수라는 이야기 등 온갖 소문들이 가득하다는 말 속에 외지인이 누구인지를 곱씹어 보게 하니 말이다.

 

외지인의 집에서 발견된 수많은 사진들. 죽기 전 사람들의 사진과 죽은 후의 사진들이 가득 붙여진 방안에서 발견된 종구 딸 효진의 실내화 한 짝. 그 섬뜩한 현장이 주는 기괴함은 나홍진 감독다웠다. 마치 <황해>에서 조선족들이 방 안에 모여 고기를 먹는 장면이 주는 기괴함과도 닮아 있었다.

 

<곡성>은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황해>에 이은 세 번째 작품답게 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치 두 영화를 모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 것처럼 감독 스스로 진보를 이루고 있었다. 영화는 관객들 입장에서는 불편하다. 칸 현지에서도 많은 기자들이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하듯 마지막 장면이 주는 충격은 대단하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불이 켜진 뒤에도 찜찜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마지막 장면이 주는 장엄할 정도로 잔인한 모습들일 것이다. 외지인이 진짜 정체와 곡성을 벗어나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와야만 했던 일광. 그리고 종구가 골목에서 무명과 대치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긴박함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감독의 능력은 악마의 재능이었다. 절벽에서 떨어지고, 빗길에 종구가 몰고 가던 트럭에 받쳐 죽었다 생각했던 외지인. 그런 외지인을 다시 절벽에 굴려 버린 종구와 친구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굴 속에 움츠리고 있던 외지인과 그를 찾아 정말 악마인지를 확인하려는 부제의 모습은 섬뜩했다.

 

"보셨어요? 왜 직접 보시지도 않고 확신하세요?"라는 신부의 질문은 영화 <곡성>을 정의할 수 있는 주제가 될 것이다. 직접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막연함이 결국 모든 것이 뒤틀리게 만들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이를 건드렸다는 일광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외지인과 일광은 다른 사람일까? 아니면 동일인 일까? 일광이 작업복을 벗고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있는 과정에서 그가 외지인이 입고 있는 훈도시와 비슷한 속옷을 입고 있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일광이 종구의 집에 찾아갔다 무명을 보며 코피를 흘리는 것도 모자라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낸다. 마지막 장면에서 많은 이들을 의아하게 만들고 섬뜩하게 했던 것은 일광의 차에서 발견된 사진들이다. 사건 현장에서 사진을 찍은 일광이 바닥에 떨어진 박스에서 사진들을 쓸어 담는 장면에서 모두는 경악했다. 그 사진들은 바로 외지인의 집 벽을 덮었던 사진들이다.

 

악마인 외지인이 신부의 사진을 찍으며 희롱하던 모습과 미쳐서 엄마와 외할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한 효진과 현장을 뒤늦게 확인하고 넋이 나가버린 종구의 모습. 그 현장을 사진으로 담은 일광의 모습은 외지인과 일광의 존재를 명확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리고 무명이 이 둘과 맞서 싸우는 귀신이라는 설정도 흥미롭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봤다고 믿기도 어려운 이 기묘한 사건들 속에서 결국 악을 잠재우거나 멈추게 하는데 실패했다. 영화 <곡성>은 그렇게 악마에 의해 지배당한 작은 마을의 모습으로 그쳤다. <황해> 역시 그렇듯 <곡성>도 선과 악의 싸움(이마저도 불분명하지만)에서 승자는 선이 아니었다.

 

영화는 분명 흥미롭다. 섬뜩했고 기묘했다. 그리고 완벽하게 해결된 그 무엇도 없다. 마치 속편을 만들기라도 하려는 듯 열린 결말 속에 참혹할 정도로 잔인한 잔상만이 가득할 뿐이다. <곡성>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부분들이 많은 영화다. 기묘한 관계 속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은 우리의 현재를 그대로 드러내는 듯해서 더욱 섬뜩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현실. 가장 가깝고 모든 것을 내놓고 믿을 수 있는 가족이 오히려 가장 잔인한 악마가 되어 모두를 죽음으로 내모는 <곡성>은 어쩌면 우리의 현실을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해낸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등장한 죽음은 모두 가족의 붕괴다. 왜 하필 영화는 가족의 붕괴를 담았을까 에 우리는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외지인은 거대한 권력을 지니고 있다. 감히 쉽게 볼 수도 없고 근접할 수도 없는 그는 강력한 힘까지 가지고 있다. 그런 그에 의해 조용하고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행복하게 살던 마을 사람들은 죽기 시작했다. 홀로 죽는 게 아닌 가족 단위로 집단 살인이 이어지는 것은 현대사회의 가족 붕괴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찰이면서 사건의 실체에 가장 근접했던 주인공마저 끝내 그 악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가족 붕괴 현장 앞에서 넋이 나가버린 장면은 더욱 강렬함으로 다가왔다. 가족이 붕괴된 사회. 그 어떤 희망도 없는 우리의 현실이 바로 영화 <곡성>에 그대로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공권력도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붕괴의 현장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니 말이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단순히 호러물도 스릴러도 아니다. 잔인한 범죄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그 안에 담고 있는 메시지가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이다.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가족 붕괴 사고. 그리고 깊은 산에서 거주하는 악마와 토속 신앙을 믿는 마을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박수무당 일광, 그리고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처녀귀신까지 그 말을 둘러싼 이야기는 단순한 공포는 아니다. <곡성>은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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