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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영화/Film Review 영화 리뷰

도희야-폭력이 일상이 된 사회, 격리된 두 여인의 소통이 아프다

by 조각창 2024.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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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마을에서 일어난 도희를 둘러싼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영화 <도희야>는 서글픈 내용이었습니다. 사회와 격리된 섬에서 사는 어린 도희와 그곳으로 새로운 경찰서장으로 부임한 영남의 이야기는 사회적 편견과 맞서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이자, 지독하고 강렬한 일상이 된 폭력이 우리를 얼마나 망가지고 힘겹게 하는지 이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고양이와 주인 이야기에 담은 영화 속 메시지 소통을 이야기 하다

 

 

 

영화 <도희야>를 만든 정주리 감독은 고양이와 주인의 이야기를 꺼내며 이 영화를 설명했습니다. 자신을 좋아해주는 주인을 위해 고양이는 주인의 신발 안에 쥐를 넣어두지만, 주인은 오해를 하고 그 고양이를 때리기만 합니다. 다음 날엔 껍질이 벗겨진 쥐가 들어있는 신발을 보고 주인은 경악하지만, 이는 서로가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나온 결과였습니다. 

 

 

고양이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주인을 위해 자신의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쥐를 주인에게 주는 행위를 통해 최고의 사랑을 보인 셈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고양이의 이런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경악스러운 행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로의 다른 시각은 결과적으로 오해를 만들고 그런 편견들이 결국 불안을 야기할 수밖에 없음을 감독은 <도희야>를 통해 통렬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서장으로 근무하던 영남(배두나)를 위기로 몰았습니다. 경찰이라는 딱딱한 조직 안에서 동성애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단 행위일 뿐이었습니다. 잘나가던 영남은 그렇게 낯선 섬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섬으로 들어오던 날 그녀는 한 아이를 목격합니다. 도로 옆에서 앉아서 뭔가를 하던 도희(김새론)는 뭔지 알 수 없는 묘한 아이였습니다. 개구리 한 마리를 손에 쥐고 먹잇감을 한 손에 올리고 있는 도희의 모습은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장면이 중요한 것은 <도희야>의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포식자를 손에 쥐고 지배하려는 도희의 행동은 그가 겪고 있는 환경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메타포였습니다.

 

 

조용한 바닷가 섬마을에서 조용히 쉬어갈 생각이었던 영남에게 그곳은 자신의 본질을 돌아보게 만드는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마치 자신의 또 다른 분신을 보는 듯한 도희는 그녀에게 조금씩 자아를 찾게 해주는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뭔지 알 수 없는 그 어린 소녀. 또래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온 몸에 상처투성이인 도희를 보면서 영남이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습니다.

 

술에 취해 어린 도희를 때리는 용하(송새벽)를 발견하고 영남이 확고하게 가진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어리고 약한 아이를 패는 가족들에게서 도희를 구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영남은 분명하게 깨닫고 있었습니다. 비 오던 어느 날 비에 흠뻑 젖은 채 자신을 찾아 온 도희. 추위에 힘겨워 하는 그녀를 뜨거운 물로 목욕을 시키는 영남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어린 도희의 몸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약하고 상처받은 아이를 지키는 것이 망가져가는 자신을 지키는 일과 동일하다는 사실은 영남에게는 중요했습니다. 거친 폭력 앞에서 도희를 지켜내며 영남 역시 힘겨움 속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터져 나오고는 합니다. 자신을 찾아 섬까지 온 연인과의 짧은 키스는 용하에게 목격되고 이는 곧 영남을 다시 한 번 위기로 몰아넣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불법체류자를 폭행하고 감금하고, 임금까지 착휘하고 있는 용하를 구속시켜버린 영남은 모든 것을 바로잡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섬에서는 이런 악행이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게 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부당한 행위라는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하지만 섬에 젊은 사람도 없고, 노동력을 어디에서 사오기도 힘든 상황에서 이런 불법체류자에게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이 섬마을 사람들의 삶의 이유가 되었다는 점에서 지독함으로 다가옵니다. 폭력이 일상이 되고, 그런 부당한 폭력을 애써 눈감는 그곳에서 도희의 아픔은 이상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합리화된 폭력 앞에서 가해자 용하는 섬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귀중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길들여진 폭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치던 영남은 도희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기 시작합니다. 용하가 이미 이야기를 했듯, 스스로 자학하며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도희는 영남의 관심이 그녀를 찾아온 여자에게 쏠리자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영남의 술을 마시고 방을 엉망으로 만들고, 스스로 자학하는 도희는 처참할 정도였습니다.

 

 

두려움까지 느끼게 한 도희의 이런 행동과 용하의 압박, 그리고 자신을 찾아온 연인까지 모두 하나가 되어 폭발 직전까지 이르게 된 상황에서 영남은 용하의 고소로 긴급체포가 됩니다. 영남이 도희를 성추행했다는 고소였습니다. 그녀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었고, 편견으로 바라본 영남의 행동은 모두 성적인 코드로만 읽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분리되어 사전청취를 받던 도휘는 자신의 바람을 투영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 이는 곧 잔인한 성추행으로 둔갑하게 됩니다.

 

상처받고 힘겨워하는 도희를 위해 했던 모든 행동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으로 인해 곡해가 되고, 범죄자로 전락해버린 한심한 상황이 영남을 더욱 당혹스럽게만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도희야>의 최고 반전은 그렇게 홀로 남겨진 도희와 집으로 돌아온 용하 사이에서 잔인하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는 관객들을 상당히 힘겹게 합니다. 폭력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자신의 애정을 드러내기 위해 스스로 자학을 하는 어린 도희의 행동은 자칫 섬뜩함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도희의 이런 행동은 고양이와 주인의 다른 시각차와 같았습니다. 태어나서 현재까지 그런 폭력과 폭언이 지배하는 환경에서 살아왔던 도희가 할 수 있는 소통 방법은 폭력이나 자학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도희야>가 대단한 것은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게 된 영남의 선택 때문입니다. 폭력 앞에서 당당할 수 없었던 도희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기준에서는 이상하거나 범죄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전부라고 할 수 있는 폭력 속에서 그 어리고 약한 소녀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런 어린 소녀의 외침을 유일하게 이해한 영남이 도희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은 그래서 특별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여자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좌천을 당했던 경찰 조직 속 영남과 외부와 격리된 섬마을 속 폭력에 지배당해 온 도희. 두 여인이 만나 서로에게 서로를 이야기하는 그 몸짓 속에서 그들은 힘겹게 소통을 해가기 시작합니다. 편견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상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소통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도희야>는 우리에게 소통이란 무엇이고, 그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줍니다.

 

부쩍 성장한 김새론의 소름끼치는 연기와 담담하면서도 묵직한 연기로 영화를 이끈 배두나, 거친 남자로 폭력의 상징이 된 송새벽의 연기까지 <도희야>는 이들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영화였습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섬이라는 특정한 공간 속에서 풀어내는 과정은 흥미로웠습니다.

 

우리 사회 편견과 불통의 문화를 너무 자극적이지 않지만, 충분히 파괴적으로 그려낸 <도희야>는 분명 중요한 영화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던진 화두는 우리가 스스로, 그리고 함께 풀어가야만 하는 과제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폭력과 편견이 지배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영남이거나, 도희 일 것입니다. 혹은 용하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니면 모든 폭력과 편견에 수수방관으로 일관하는 섬마을 사람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도희야>속 인물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던지는 거대한 화두가 묵직함 그 이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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