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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영화/Film Review 영화 리뷰

한공주-진실 앞에 눈감은 우리 모두는 공범이자 죄인이었다

by 조각창 2024.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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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에서 있었던 잔인한 사건은 이제는 잊혀진 과거의 일일 뿐입니다. 하지만 영화 <한공주>는 그 잔인한 기억을 끄집어내서 우리에게 거울처럼 다가섰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그래서 더욱 보기 힘들고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과연 우리는 밀양 사건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한공주>는 2004년 경남 밀양에서 실제 있었던 참혹한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실제 사건에서는 110명의 밀양 소재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들이 여중생과 여고생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공권력이 가해자의 편에 서면서 피해자인 여성들만 죄인이 되어버린 황당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가해자는 당당하고 피해자는 세상의 눈을 피해 도망 다녀야만 하는 이 한심한 사건은 바로 10년 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 흉포한 사건에서 처벌을 받은 것은 3명이고 그것도 10월형이 전부였습니다. 가해자들의 여자 친구는 윤간 현장에서 동영상을 찍고 이를 이용해 협박하는 등 금수보다 못한 짓을 저질렀지만 이들에게는 그 어떤 죄도 묻지 않은 게 10년 전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수사하던 경찰이 피해자인 여성에게 "밀양 물을 흐렸다"는 발언을 하고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불러 피해 여성의 정보를 그대로 노출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극악무도한 발언은 영화에서도 그대로 차용되어 당시의 당황스러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한공주>는 독립영화 스타일의 담백함에 집중했습니다. 거대한 자본이 아닌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작품성을 이끌기 위한 하나의 방식으로 영화는 클로즈업을 자주 사용했고,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화와 잘 어울리며 효과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영화는 한공주(천우희)가 경찰 앞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했습니다. 조사를 받으며 남자들을 바라보며 기겁하는 공주가 남긴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는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마치 쫓기듯 학교를 떠나 전학을 한 공주는 교사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학교에서 적응해가는 공주이지만 모든 것이 힘겹기만 했습니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해가는 그녀에게는 하나의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교무실에 처음 들어서면서 봤던 돌고래 상패를 보면서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희망도 없이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었던 공주에게는 수영을 배우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웠습니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피아노를 사고 싶었던 소망이 있었던 공주였지만, 학교를 옮기며 그녀가 하고 싶은 것은 수영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하는 수영은 좀처럼 진척이 없이 힘들기만 했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수영에 집착했던 이유는 살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었던 그녀가 물을 이기고 싶어한 것은 그 지독한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화옥(김소영)이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녀가 죽은 장소는 강이었고, 그 강에서 죽은 친구를 바라보며 절망을 해야 했던 공주가 물을 찾고 수영을 배우려 노력했다는 사실은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조금씩 수영을 배우며 공주는 삶의 희망을 찾았고 새로운 학교에서 아카펠라를 하는 은희(정은선)로 인해 놓아버렸던 음악에 대한 꿈도 다시 꾸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원했지만, 할 수가 없었던 음악을 다시 하게 된 공주는 조그마한 기타 선율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학교의 친구들과 다시 조금씩 행복을 느끼기도 했던 공주는 하지만 다시 복병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공주에게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친구의 선의는 공주를 위협하는 이유가 되고, 그런 상황을 모두 설명할 수 없는 공주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친구들을 밀쳐낼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수영을 배우고 친구와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음악을 하며 새로운 행복을 느끼던 공주의 삶은 오래 갈 수가 없었습니다. 

 

주정꾼 아버지는 공주를 찾아와 탄원서에 사인을 요구하고, 이일로 인해 공주의 학교까지 찾아온 가해자 부모들을 수업 중인 교실을 장악하는 끔찍한 모습까지 보여주었습니다. 피해자임에도 가해자에 의해 도망치는 신세가 되어야만 했던 공주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자신을 마치 친딸처럼 챙기던 교사의 어머니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녀를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남자친구이자 파출소장은 자신의 친구가 부탁을 했다고, 탄원서를 내미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누구보다 사건의 진실을 잘 알고 있는 파출소장이 가해자를 돕기 위해 쫓겨난 공주에게 사인을 요구하는 현실은 처참함을 넘어 경악스럽기만 했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공주는 주정뱅이 아버지에 의해 팔렸고, 자신을 돕던 교사도 버렸습니다.

 

그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었던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친구처럼 강에 뛰어드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토록 배우고 싶었던 수영을 배웠던 공주는 과연 그 지독한 한강에서 살아나왔을까요? 누구든 그 작은 손 하나만 내밀어줬어도 달라질 수 있었던 공주의 삶은 모두가 방관하고, 모두가 가해자와 한편이 되는 편리함을 선택해 그 여리고 아픈 소녀를 사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어른들의 탐욕과 이기심은 결국 괴물과 같은 짐승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친구가 키스 해봤냐는 질문에 42명의 고릴라와 해봤다는 그녀의 고백은 끔찍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수많은 고릴라들이 두 소녀를 범하는 상황에서 문을 열고 들어선 어른의 행동은 이 영화의 주제였습니다. 공주가 알바를 하던 편의점 주인이자 동윤의 아버지가 그 끔찍한 현장에서 오직 자신의 아들만 데리고 떠나는 장면은 <한공주>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준 가장 섬뜩하고, 끔찍한 장면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사건에서 진실을 보려 하지 않았고, 피해자의 편에 서야만 했던 경찰들마저 가해자의 편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나약한 피해자는 스스로 가해자들을 피해 도망 다녀야만 했습니다. 가해자는 당당하고 피해자는 세상에 숨어 살아야만 하는 이 한심한 국가는 여전히 성범죄자들에게 피해자를 더욱 고통스럽게만 할 뿐입니다.

 

<한공주>를 보면서 분노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10년 전 사건에서도 우리는 지독한 방관자였고, 현재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된 배에 갇혀 있는 수많은 실종자들을 지켜보는 우리는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방관자일 뿐이었습니다. 세사의 부도덕함과 부조리를 보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악마들을 바라보고 수수방관한 우리 모두가 공범일 수밖에 없음을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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