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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영화/Film Review 영화 리뷰

우아한 거짓말-왕따를 다룬 지독할 정도로 잔인하게 아름다운 이야기

by 조각창 2014.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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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는 점점 지능적으로 잔인해져만 가고 있습니다. 현실에 지독할 정도로 학교에 뿌리를 내린 왕따는 그저 학교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휩싸고 있는 문화라는 점에서 두렵게 다가옵니다.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방법들을 찾고, 방송과 드라마, 영화 등에서 왕따를 자주 다루고 있지만 <우아한 거짓말>은 그동안 나왔던 그 어떤 작품과 비교가 불가한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이하 스포일러 포함)

 

천지의 죽음 후 드러나는 진실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붉은실에 담은 가치

 

 

 

 

너무나 착하고 예쁜 막내딸 천지(김향기)는 아침 일찍부터 자신의 교복을 곱게 다리고 있습니다. 언니인 만지(고아성)의 교복도 다려준다고 하지만, 30분만 지나면 구겨지는 교복을 왜 다려입느냐는 만지는 모든 것이 쿨 하기만 합니다. 마트에서 일을 하는 엄마 현숙(김희애)은 아침잠이 부족해 아이들 식사를 준비하면서도 졸기만 합니다. 

 

 

언제나 엄마와 언니를 챙기는 착하고 예쁘기만 한 딸 천지가 오늘은 이상하게 MP3를 사달라고 합니다. 평생 뭔가를 사달라고 하지도 않던 딸이 뜬금없이 뭔가를 사달라고 할 때도 차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끔찍한 일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딸에게서 생겼다는 사실은 상상 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평범하기만 했던 그날 바쁘게 출근을 서두르던 엄마 현숙은 어린 딸에게 "미안하지만 먹은 그릇들은 물에 담가두고 가"라는 말만 남기고 허무하게 이별을 했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면 결코 그렇게 보낼 수 없었지만, 엄마는 어린 딸의 모습이 그게 마지막 일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뜬 목도리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14살 천지. 그 어린 딸을 가슴에 묻으며 엄마는 이 지독한 아픔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했습니다. 애써 당당한 척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우아하게 거짓말을 하고는 하지만, 이 지독한 상실감을 채울 길은 없었습니다.

 

 

딸의 죽음도 서러운데 집주인은 자살한 천지를 탓하며 집을 비워 달라합니다. 그렇게 낡은 아파트로 입주한 모녀는 짐을 옮기는 것부터 힘겨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낡은 아파트에는 쥐가 들끓었고, 그런 쥐들을 잡는 것조차 그녀들에게는 힘겹기만 했습니다. 옆집 머리 긴 총각이 도와준다고 나서기는 했지만, 모녀보다 겁이 더 많은 그에게 쥐를 잡는 것은 두려운 일일 뿐이었습니다.

 

서먹했던 엄마와 큰딸만 덩그러니 남은 그 집에서 그들은 떠나버린 딸을 잊지 못합니다. 애써 딸의 흔적을 외면하던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딸의 죽음의 이유와 직면하게 되면서 <우아한 거짓말>의 정수를 찾아가게 됩니다. 그들은 왜 우아한 거짓말을 하고 살아야만 했는지, 그렇게 스스로를 거짓 포장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삭막하고 잔인한 세상에서 겨우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우아한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했습니다.

 

천지의 죽음에는 아이들의 왕따가 존재했고, 그 주범으로 지목된 것은 새로 이사온 아파트 근처의 유명한 중국집 딸 화연(김유정)이었습니다. 말 속에 날카로운 칼을 숨기고 은따로 천지를 초등학생 때부터 괴롭혀왔던 화연. 숨죽이고 있던 그 균열은 천지의 죽음으로 터지고 말았습니다. 같은 반 아이들 모두 화연을 외면하는 상황 속에서 진실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왕따는 누군가에 의해 시작되지만 스스로 그 왕따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 모두 공범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우아한 거짓말>이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지독하고 암울한 왕따 문화를 이렇게 섬세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려령 작가의 원작인 이 작품은 그녀의 다른 작품인 <완득이>를 영화로 만든 이완 감독의 작품이었습니다. 전작에서 재미와 의미를 함께 담았던 이 작품은 <우아한 거짓말>에서 보다 완숙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왕따의 근원이 무엇이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던져주는 이 영화는 그래서 위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아픈 우리 일 수밖에 없음을 이 영화는 담담하지만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였던 화연이 큰 고통을 당하며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해 힘겨워하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가해자의 심정이었을 듯합니다. 이 영화가 위대했던 것은 그런 가해자인 화연을 거칠지만 당당하게 감싸던 천지의 언니 만지의 모습이었습니다.

 

 

동생 천지 때문에 화연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하겠다며 이제부터는 너를 지켜주겠다는 언니 만지의 모습은 뭉클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분노로 가득 차있던 만지가 자신의 잘못을 알고도 방법을 몰라 힘겨워하는 가해자 화연을 증오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동생을 위해 따뜻하게 품는 피해자 언니 만지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했습니다.

 

화연을 품고 집으로 향하던 만지가 잠깐 잠이 들어 꿈속에서 천지를 만나게 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천지를 향해 달려가는 엄마와 자신의 모습과 그리고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 전에 도착한 그들은 함께 다행스러워 행복한 웃음을 짓는 모습은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만약 힘겨워했던 천지의 고민을 좀 더 신중하게 들어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컸던 만지에게 꿈속의 천지는 그녀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품게 했습니다.

 

천지가 남기고 간 다섯 개의 붉은 실 속에 남긴 글들은 남겨진 이들에게 큰 아픔이자 고통이었고, 힐링이었습니다. 남겨진 자들에게 살아야만 하는 메시지를 남긴 천지는 마지막 다섯 번째 붉은 실은 자신이 가장 자주 갔던 도서관 책 뒤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남겨둔 마지막 붉은 실. 만약 천지가 죽지 않고 그 메시지를 봤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프고 슬픈 <우아한 거짓말>은 흠잡을 데 없는 최고의 작품이었습니다. 옆집 남자 유아인의 엉뚱함이 흥겨움을 주었고, 김희애의 사뭇 다른 엄마 역할도 상상이상이었습니다. 이제는 성숙한 여성이 된 고아성의 담담하지만 매력적인 모습 역시 이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해주었습니다.

 

먼저 간 딸아이를 가슴에 콘크리트까지 쳐가며 막아났지만, 그것마저도 뚫고 나오는 아이를 잊지 못하는 엄마는 복수를 위해 일부로 가해자의 집 근처로 이사 왔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매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복수가 된다는 엄마의 마음. 그리고 용서를 받지 않으려는 그녀는 용서는 받을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말은 가슴이 저미는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이를 추적하며 왜 이런 왕따 문화가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고통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섬세하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작은 원인들이 지독한 현실로 다가오고 가장 쉬운 방법으로 외면하며 상대를 고통주는 이 지독한 현실은 누구 하나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사회 전체가 풀어야만 하는 고민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왕따를 다룬 이야기들 중 <우아한 거짓말>이 최고 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고 명쾌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남겨진 모든 이들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그 중심을 완벽하게 잡아냈기 때문입니다. 잔잔함 속에서 삶의 내면을 면도날로 그어내듯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 영화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그 모든 것을 담아내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는 영민함도 보여주었습니다. 우아한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붉은실을 찾고 싶은 욕망을 품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 지독할 정도로 잔인하게 아름다운 이야기는 축복과도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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