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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다른 시선으로 Another View
Film 영화/Film Review 영화 리뷰

또 하나의 약속-자본 권력에 맞선 영화의 힘, 멍게가 되어버린 우릴 꾸짖고 있다

by 조각창 2014.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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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에서 벌어졌던 희대의 사건을 다룬 <또 하나의 약속>이 어렵게 완성되어 공개되었습니다. 개봉 전부터 극장 문제로 논란을 가진 이 영화는 결코 대중적일 수 없는 영화임에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영화적 완성도를 따지는 이성적 영화가 아닌 감성으로 다가오는 이 영화의 가치는 바로 멍게와 닮은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한 힘이었습니다.(이하 스포일러 포함)

 

우리 시대 멍게가 되어버린 관객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영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20살 소녀는 백혈병에 걸려 숨지고 말았습니다. 꽃을 피우기도 전에 죽어야 했던 그녀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삼성 반도체에서 일한 죄가 전부였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부자라는 삼성에 입사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그녀와 가족들에게 삼성은 곧 살인자와 다름없었습니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은 영화 속 내용이 전부 실제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거짓말 같은 현실이 사실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강력한 힘을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이라는 거대한 권력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는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부터 영화 같은 일들의 반복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하나의 약속>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상업적인 성공을 위한 영화가 아닌 자본 권력에 맞서 싸우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위대한 영화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권력마저 집어삼킨 거대한 자본 권력은 우리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는 지독한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본권력에 가장 취약한 이들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영화는 너무 지독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택시 운전을 하는 아빠를 위해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취업을 해야만 했던 故 황유미씨는 삼성 반도체에 취직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라는 삼성에 취직했다는 이유만으로 잔치를 벌일 정도로 그녀와 가족들에게는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노력해 힘들게 돈을 버는 부모님을 돕고 싶었고, 남동생의 대학 입학금을 마련해주고 싶었던 소녀의 꿈은 단 2년이 전부였습니다. 

 

삼성 반도체에 입사한 황유미씨는 2년 만에 아주대병원에서 백혈병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자신이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도 모른 채 치료를 받던 그녀는 자신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백혈병 등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동료가 병원에 입원한 상황임에도 회사에서는 그녀를 찾는 것조차 막는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들이 동료들의 방문까지 막으려 했던 것은 그만큼 자신들의 죄가 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철저하게 회사만을 위하는 그들의 행동은 꽃다운 나이에 자신의 왜 그런 병에 걸려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죽어간 이들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협박도 두려워하지 않고, 부모에게 위로금을 건네면서도 이를 빌미로 산재 처리를 막으려는 노력만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상황에서도 회사가 내놓은 처방은 잔인했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을 능욕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기에 급급한 그들의 행패는 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공단 역시 철저하게 재벌의 편에 서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마저 짓밟는 행위는 모두를 경악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영화는 30여 년 동안 순박하게 택시운전을 하며 살아왔던 아버지의 시선으로 딸아이의 원망스러운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담고 있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마찬가지인 상황에서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500만원에서 시작된 합의금은 10억까지 올라갔지만 그들에게는 돈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돈보다 중요했던 것은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었습니다.

 

회사의 명예를 위해 산재는 결코 할 수 없다는 재벌의 자존심은 노동자의 죽음보다 중요했습니다. 그들의 죽음을 그대로 방치하면서도 지키고 싶었던 것은 오직 자신의 회사의 자존심이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경악하게 합니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보다 값진 것이 그 명예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문제가 발생해 개발도상국으로 이전된 기술. 그런 기술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습니다.

 

 

2014년 1월 현재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인 반올림에서 접수된 피해자는 151명이나 되며 그중 58명이 사명했다고 합니다.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하던 시절 사용했던 독가스가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된다는 사실은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경악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80만원 겨우 넘는 기본급으로 생활할 수 없는 그들은 경쟁을 부추기는 회사로 인해 안전지침을 지킬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회사가 강력하게 조장하고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그렇게 돈 몇 푼이라도 더 벌기위해 독가스에 중독되어 쓰러져갔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서도 여전히 반성조차 하지 않는 재벌의 모습은 악마나 다름없습니다.

 

거대한 자본으로 삼성공화국을 세운 그들은 당당하게 자신들이 아니면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엄청난 자본으로 정치와 언론 등 모든 분야를 자신의 편으로 만든 그들과 싸우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싸웠고 그 어떤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고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계 최초로 반도체 노동자로서 처음으로 산재 판결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2003. 10. 삼성전자 입사, 반도체 원판을 화학물질 혼합물에 담갔다 빼는 3라인 배치
2005. 10. ‘급성 골수성 백혈병’ 판정, 아주대 병원에서 치료시작
2005. 11. 골수이식 수술
2006. 10 백혈병 재발
2007. 01. 이식병동에 입원. 하지만 수술할 상태가 아니라 퇴원
2007. 03. 06 아주대 병원 외래 진료 후 귀갓길에 아버지의 택시 안에서 사망
2007. 09. 삼성반도체 역학조사 후 아버지 황상기씨에게 위로금 10억원 합의 제안
2008. 04~11. 산업안전보건연구원 국내 반도체 산업 종사자 20만명 건강실태 역학조사 발병과 작업환경은 관련 없다고 결론
2009. 05 산재 불인정
2010. 01 서울행정법원에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인정 소송 제기. 삼성반도체 피고 보조인 자격으로 재판 참여
2011. 06. 23 서울행정법원, 황유미•이숙영 등 2명 산재 인정 판결. 근로복지공단•삼성반도체, 불복 항소.
2011. 11. 삼성반도체, 백혈병 발병자 151명, 사망자 58명. 황유미•이숙영 등 산재 소송 2심 진행 중.
2013. 10. 18 서울행정법원 삼성반도체 백혈병 노동자 김경미씨 산재인정

 

산재 판정에 불복한 삼성은 여전히 그들을 상대로 산재 불인정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여전히 소중한 것은 노동자의 죽음이 아닌 자신들의 자존심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들이 거대한 자본의 힘으로 노동자들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국민들은 그들의 죽음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자본이 만들어내는 예술이라는 영화는 자본의 힘이 축약된 결과물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자본과의 싸움에서도 당당함을 보였습니다. 제작두레를 통해 영화를 완성했다는 점에서도 대단한 도전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약속>은 국민들의 힘겹게 죽어간 노동자들을 위해 손을 내밀었다는 점에서도 위대한 한 걸음이었습니다.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 논리에서 돈 없는 국민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만든 이 위대한 기록은 극장에 상영을 하는 과정도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삼성가인 중아일보가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멀티플렉스가 갑작스럽게 상영 중지를 하고 같은 재벌이 운영하는 영화 체인 역시 극장을 막는 파렴치한 행동을 노골적으로 보였다는 점에서도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파렴치한 행동은 국민들의 분노에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부터 상영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이 쉽지 않았던 <또 하나의 약속>은 그 모든 과정이 곧 투쟁의 기록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진정 위대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을 것입니다. 거대 자본에 맞서 싸워 이기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또 하나의 약속>은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법정 싸움을 이어가는 과정 중에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에 국민들의 관심이 많이 모인 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재벌공화국으로 전락한 대한민국에서 더는 재벌공화국이 아닌 국민이 국가가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대사 중에 등장하는 멍게 이야기는 그래서 날카롭게 우리의 폐부를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동물인지 생물인지 질문을 던진 극중 박철민이 들려주는 멍게 이야기는 우리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처음에는 뇌까지 있었던 멍게는 자라면서 스스로 뇌를 자양분으로 삼아 식물이 된다고 합니다. 먹이가 풍부한 바다에 던져져 어느 바위에 붙어 편안하게 일신의 안위만을 위해 사는 멍게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사회가 지독한 악취를 풍기고 있어도 오직 나 하나만 편안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 모든 기능들을 제어한 채 현실에 안주해서 살아가는 비루한 존재로 전락해버린 우리들과 자신의 뇌를 자양분 삼아 동물에서 식물로 전락한 멍게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멍게와 같은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인간다운 삶을 살 것인지는 각자 개인의 몫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인간으로 태어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 뇌까지 퇴화시키는 멍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안위만이 아닌 우리 주변을 돌아보는 모습을 잊지는 않아야 할 듯합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고인이 된 반도체 노동자들을 위한 영화가 아닌 이미 스스로 멍게와 같이 식물이 되어가고 있는 우리를 위한 영화일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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