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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영화/Film Review 영화 리뷰

변호인-30년 전 송강호가 우리에게 던지는 한 마디 안녕들하십니까?

by 조각창 2013.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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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송강호는 스크린을 통해 2013년을 사는 우리에게 넌지시 하지만 강렬하게 "안녕들하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과연 우리는 30년 전과 비교해 정말 안녕들한지 모르겠습니다. 사회는 변한 것이 없고 우리의 삶은 그때나 지금이나 팍팍한 상황에서 우린 다시 30년 전 송강호를 향해 "안녕하지 못 합니다"라고 말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한스럽기만 합니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시대정신을 이야기하는 변호인, 가슴으로 보는 영화 

 

 

 

 

격변의 시대 고졸 변호사의 성장기를 다룬 <변호인>은 우리 시대 필견의 영화일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기 영화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이들을 위한 영화라는 점에서 색안경을 쓰고 볼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변호인>이라는 영화에는 노 전 대통령보다는 정의에 눈을 뜨기 시작한(혹은 그렇게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우리의 모습이 담겨져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지독한 가난으로 상고를 졸업한 후 대학입학을 하지 못했던 송우석(송강호)은 사법고시에 합격하며 새로운 삶을 살시 시작했습니다. 판사로 재직하며 큰 야망도 품기도 했지만 그는 고향 부산으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철저한 학벌 사회에서 고절 판사가 버틸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졸 판사가 할 수 있는 일보다는 고졸 변호사로서 잘 사는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 송우석은 선배를 찾아 변호사 개업을 위한 돈을 빌리게 됩니다.

 

판사 시절 느낄 수밖에 없었던 고졸이라는 한계는 변호사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 세계에서도 학벌은 중요한 인맥으로 작용하고 살아가는 이유와 살아갈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매개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가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돈이 전부였습니다. 돈이 곧 신분 상승이 되는 세상에서 돈을 버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던 우석은 부동산 등기를 대신해주는 틈새시장 공략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합니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우석의 행동은 동료 변호사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고, 그렇고 시작된 우석의 부동산 등기 변호일은 그에게 큰 성공을 안겨주었습니다. 사무장도 생기고 쥐가 들끓던 남의 집을 벗어나 자신이 직접 벽돌을 쌓았던 아파트로 이사까지 한 그에게는 성공이라는 값진 열매가 존재했습니다.

 

어렵던 시절 아이가 태어나던 날 그는 고시원이 아닌 아파트 건설 현장에 있었습니다. 가장이 되어 자신의 가족도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은 그에게는 큰 무게로 남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모님과 부인을 속이고 있던 그는 가족 앞에 차마 고시공부를 그만 두었다는 말은 할 수 없었습니다. 우석이 결정적인 고시 공부에 매진하게 된 것은 국밥집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단골 국밥집에서 그날도 식사를 하던 우석은 외상값을 갚아 달라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고시를 위한 책들을 팔고 받은 돈을 쥐고 고뇌합니다. 아주머니가 없는 사이 몰래 식당을 빠져나가던 우석은 어린 진우(시완)과 눈이 마주치고 맙니다. 법조인이 되겠다던 자신이 밥값을 떼어먹고 도망치는 현실에 스스로 자괴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우석은 그렇게 다시 법전을 들었고, 그는 판사에서 변호사로 이어지는 법조인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7년 전 국밥 값을 때어먹고 도망쳤던 그 기억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었고, 가족들과 함께 그 집을 찾아 영원한 단골이 됩니다. 사업 수완이 누구보다 좋았던 우석은 자신을 비웃던 변호사들이 모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몰려들자, 세법 전문 변호사라는 새로운 장르를 다시 개척합니다. 그리고 우석은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기틀까지 만들어냅니다. 이제는 부산이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알아주는 세법 전문 변호사가 된 그에게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다가오게 됩니다.

 

우석은 그때까지만 해도 정치와 사회에는 담을 쌓고 살아왔습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직 돈을 버는 것에는 집착했던 그에게 사회의 혼란은 호강스러운 투정 정도로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도 남의 일이었고, 대학생들의 대모도 어린 아이들의 치기어린 행동 정도로 인식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뒤틀린 혹은 의도적으로 멀어져 있던 의식은 동창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벌어진 싸움 이후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국밥집 아들 진우가 던진 한 마디는 그의 인생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단단한 바위를 어찌 계란으로 깨트릴 수 있느냐며 비판적이던 우석에게 진우는 이야기합니다. 바위는 죽어있지만, 계란은 살아있지요. 그렇기에 계란은 바위를 넘어설 수 있는 겁니다. 라는 진우의 이야기는 당시에는 거부감이 드는 이야기였지만, 그의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모토로 남겨지게 됩니다.

 

 

친구가 건드린 고졸 콤플렉스는 그렇게 열등감으로 전락했고, 더욱 무기력하게 사회와 담을 쌓은 채 돈 버는 것에만 집착하던 우석은 자신을 찾아 온 국밥집 아줌마 순애(이영애)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10대 건설사의 일을 맡게 된 우석은 그런 엄청난 성공보다는 자신을 일깨워준 순애와 함께 진우가 잡혀가 있다는 형무소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분노를 경험하게 됩니다.

 

고문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진우와 국가 권력의 횡포를 처음으로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정우는 그렇게 법정에 서게 됩니다. 누구도 맡으려 하지 않았던 국보법 사건의 변호인이 된 정우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법정에서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움을 시작합니다.

 

전두환 정권에서 자행되던 국보법 조작 사건은 자신의 권력에 대항하는 수많은 국민들을 억압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자신과 다르면 모두가 빨갱이가 되는 세상에서 국보법은 모든 것을 능가하는 만능이자 신적인 존재였습니다. 불법 구금과 폭행 등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그들에게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상흔이 가져 온 앙금이 곧 빨갱이를 양산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통제하는 것이 곧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믿게 하는 기묘한 충성심을 가진 권력자들을 양산하기도 했습니다.

 

<변호인>의 하이라이트는 공판에서 국보법 사건을 진두 지위했던 고문경감 차동영(곽도원)을 증인으로 세운 우석이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많은 관객들이 울컥하는 것은 30년 전이나 현재나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1조 1항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2항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말을 하는 우석의 고함은 단순히 영화 속에 담겨 있는 분노는 아니었습니다.

 

눈이 충혈이 될 정도로 피를 토하듯 뱉어낸 이 대사는 우리의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30여 년 전 전두환이 박정희 정권 뒤 권력을 찬탈하는 과정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을 촉발시켰습니다. 무고한 시민들 수백 명의 총칼로 죽인 살인마 전두환은 그렇게 피의 권력으로 체육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공안 사건들을 조작했고, 이를 통해 공포정치를 하던 암울했던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양심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바위를 계란이 깨트리기는 어렵더라도 살아있는 계란들이 바위를 넘어 설 수 있다는 그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합니다. 30여 년이 흐른 우리는 박정희의 망령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대학교에 걸린 대자보 하나는 다시 국민들을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일상적인 인사를 건네던 그 대자보는 어쩌면 30여 년 전 송강호에게 던진 질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변호사로 큰 성공을 거두고 돈도 많이 벌어 안녕하냐는 질문에 행복하다고 답변하던 송강호는 국밥집 아들의 모습을 보고 환상에서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결코 안녕할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잘나가던 세법 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자신과 가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버리고, 그는 과감하게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외롭게 투쟁하는 사람들 편에 서는 변호사를 자임했습니다. 그런 그를 법정에 세운 권력에 맞서 변호를 자처한 100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공판장을 가득 채운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의를 위해 자신의 안위마저 내던져 버린 한 인권변호사를 위해 부산지역의 100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변호를 자처하고, 그렇게 법정을 가득 채운 동료들에게 감동해 눈물을 흘리던 송우석의 모습은 진한 감동 그 이상으로 가슴에 남겨졌습니다. 문민정부 10년을 지내고 더욱 지독해진 억압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변호인>은 잃었던 분노를 다시 깨우게 했습니다. 단순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아닌 정의가 사라진 부당한 현실 속에서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인간답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건네는 <변호인>은 그래서 아프고 힘겨운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30년 전과 비교해 우리의 삶이 조금은 더 편해졌을지는 모르겠습니다(엄청난 가계부채가 이야기를 하듯 허울만 좋아진 신기루 삶). 하지만 빈부의 격차는 그 당시보다 더욱 커졌고, 그 지독한 경계는 많은 이들을 힘겹게 만들기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삶에 대한 목표와 가치도 상실한 채 오늘만 살아내기에 급급하게 된 우리에게 <변호인>은 왜? 어떻게 살 것이냐고 묻고 있었습니다. 30년 전 송우석은 눈물이 가득 맺힌 얼굴로 현재의 우리들에게 "안녕들하십니까?"라며 안부를 묻고 있었습니다. 과연 우리들은 정말 안녕들하신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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