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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다른 시선으로 Another View
Film 영화/Film Review 영화 리뷰

95. 노스 컨츄리North Country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부분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by 조각창 2008.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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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되어진 폭력앞에 당당하게 맞서는 용기! 자 이제 전 여성들의 대표로 남성들에게 고하노라!!
 


 
 
솔직히 샤를리즈 테론 때문에 영화를 봤지만 보면서 드는 생각은 너무 이뻐졌다는 것보다는 영화속에서 그려지는 여성으로서의 세상 살기에 관심이 가져지는건 어쩌면 당연했으리라. 결국 영화가 끝이나면서 여성과 남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조직속에 억압되어져서 갈취를 당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에 관한 영화라고 확대 해석해도 좋을 듯 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세계의 모든 억압받고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위한 영화이다.
 
 
조시(샤를리즈 테론-댓 싱 유 두, 마이티 조 영, 사이더 하우스, 맨 오브 오너, 라노의 하룻밤, 몬스터, 이탈리안 잡)는 남편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두 아이들을 데리고 북쪽에서 사는 부모의 집으로 향한다. 그녀에게는 떠나고 싶었던, 기억하기 싫었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주는 일을 하다 친구인 글로리(프랜시스 맥도먼드-분노의 저격자, 아리조나 유괴사건, 미시시피 버닝, 밀러스 크로싱, 숏컷.....명작이 너무 많다...)가 광산에서 일하고 있음을 알고 그녀의 권유로 광산회사에 입사한다. 그곳은 자신의 아버지가 평생을 일하고 있는 곳이였고 그래서인지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광산회사에 다니지 않기를 바란다.

그녀를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아버지를 뿌리치고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험난한 광산일을 하기 시작한 그곳은 여자가 일을 할 수있는 공간으로서는 너무 험난한 공간이었다.
 
목숨을 담보로 일을 하는 험한 곳에서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남성과 동등하게 일을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그녀가 법정에서 사건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자신이 왜 현재 이곳으로 오게 되었으며 광산에 들어가는 과정과 그 공간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일들에 대한 내용들이 법정이라는 공간을 통해 전개되어진다.
 
광산에서 만난 학창시절 친구는 그녀에게는 악몽이다. 한때 사귀기도 했었던 그는 그녀를 성적으로 학대하려 들고 그녀는 그런 행동들을 점점 참기 힘들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야만 했었던 아픈 기억이 있었다. 그 일로 인해 아버지와의 사이도 나쁘게 되었던 것이고 모든 고통의 시작은 어린 그 시절이었다.
 
조금은 자유분방했었던 그녀는 어린 나이에 원치않는 임신을 하고 모든 것들은 아이를 위한 삶으로 변했고 그런 그녀에게 행운은 찾아 오지도 않았다. 다른 일에 비해 6배나 많은 임금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그 험한 광부의 길을 걸었지만 그녀에게 찾아오는건 성적 수치심과 나쁜 기억의 떠올림이었다.
그녀는 이런 억압들과 폭력을 참지 못하고 그곳을 뛰쳐나오기 보다는 투쟁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모두 적일 뿐이다. 자신과 동일한 성적 학대와 고통을 받았던 여자들마저도 목숨을 유지할 수있는 이 직장을 떠날 수없다. 그녀가 소속되어있는 노조는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그녀의 모든 적 또한 노조원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노조는 또다른 착취의 조직일 뿐이다. 회사의 대리로서 존재하는 노조는 몇몇의 이익만을 대변할 뿐 동일한 노조원으로서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이는 미국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안에서도 비일비재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노조는 이제 또 하나의 거대한 권력일 뿐이다. 정치적이고 기괴한 그 조직은 조직원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만행을 저질러도 용인되는 조직원들의 은신처로서만 자리하고 있어 보인다. 통탄해야 할 일이다. 우리의 적은 소수의 권력층이 아닌 바로 우리라는 엄연한 현실...이 영화도 그녀가 처해있는 상황속에서 힘이 되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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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생을 살았던 조시. 혼자 남아 버린 그녀앞에 동지는 없다. 노조원들을 상대로 하는 연설장에서도 비난을 들어야만 했던 그녀에게 같은 노조원인 아버지는 힘이 되어준다. 그동안 참고 외면해왔던 현실의 진실에 당당히 맞서는 아버지는 그녀에게는 너무 소중한 동지였다. 자신의 과오로 인해 멀어진 그녀와 아버지의 관계는 그렇게 다시 회복되어지고 있었다.
영화는 시작부터 이건 실재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세상의 수많은 여성들에게 사건의 개요와 승리 스토리에 대한 보고로 끝을 맺는다.
 
그렇게 여성은 전사가 되고 사회의 한 부분으로 살아갈 수있는 기틀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이다. 영화는 커다란 힘에 맞서 싸우는 나약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마을을 좌지우지 하는 거대한 자본권력과 그 권력의 대리인으로 등장하는 노조. 그리고 일개 조직원이 겪을 수밖에 없는 그 고통은 어느쪽에 혜택을 줄 수있는지에 따라 진실도 진실이 아닌게 될 수있고, 거짓도 진실이 될 수있는 세상이란걸 이야기 한다.
 
남성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 그들이 저지르는 성적인 농담과 성희롱쯤은 재미로 치부된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힘을 써야만하는 세상이 세밀한 여성이 할 수있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여성의 사회진출은 넓어지고 그 와중에 충돌은 당연한 것이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못된 버릇을 포함한 모든 권력들에 도전하는 여성이 남성집단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도전이었을 것이다.
 
광산회사는 남성 조직의 상징적인 모태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원초적 힘을 무기로 일을 해야하는 그곳은 여성이 침범하기 힘든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고 그 마을은 그런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논리에 근거한 삶을 살아가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그런 스테레오 타입에서 그녀는 그 마을, 그 남성조직들에게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그래서 진실이 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이었다.

자신이 받았던 성폭력보다는 자신의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감수해야만 했던 그녀에게 그 법정은 고통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보통 이런 영화들은 흥행전선에서 그리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한다. 영화란게 일상에서 벗어나 판타지를 즐기고 싶은 도구로 생각하는게 일반적인데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런 영화들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즐기는 영화쯤으로 인식되어지기도 하지만 이런 영화 일수록 많은 이들이 봐야 하는 영화들이다.
 
영화는 판타지적 유희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진실을 알리는 도구로도 유용하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혹은, 알려고 하지 않았던 진실들이 영화속에서 발견되어지는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이젠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린 여성 성희롱과 그에 대한 싸움에 대한 복고적 접근일지는 모르지만 좀 더 진실에 다가가 감성으로 호소하고,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법정 드라마로 엮어 냈다는 것은 영화적 재미로서도 값어치를 확보한 느낌이다.
 
안정과 안주는 다르다. 안주는 변화를 두려워 한다. 그리고 그 소급되어진 균형에 맞춰 그들은 그들이 생각해야만 하는 진실을 외면하는 행위들을 집단적으로 정당화 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개인을 희생해야만 하는 것일까? 개인을 희생해 집단을 위해야 하는 것일까? 최근 일본에서 일고 있는 일본에 목숨을 바쳐 충성하라는 교육의 변경요구를 보면서 집단이기주의가 극으로 치닫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All In One이 어디에서나 정당성을 확보할 수있는 것은 아니다.
 
 
뉴질랜드 출신의 니키 카로 감독은 우리에겐 <웨일 라이더>로 알려진 감독이다. 그의 두번째 작품이 바로 이작품이기도 하다. 98년 첫작품이 칸느에 소개될 정도로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던 이 감독. 그들의 수순처럼 헐리우드로 입성했고 그만의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웨일 라이더>도 한번 보신다면 니키 카로 감독의 색깔을 알 수있을 것이다.
 
간만에 보게된 우디 헤럴슨은 이젠 늙었지만 여전함을 느끼게 해줬다.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으로 출연했었던 <몬스터>에서의 괴물과도 같은 모습에서 강인하지만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신한 샤를리즈 테론을 보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어느 한쪽만을 지향해서는 안될 것이다. 균형의 미가 중요하게 거론되는 요즘. 남성과 여성, 그리고 권력과 억압,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 그런 관계들 속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들, 할 수있는 일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케 한 영화였던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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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블로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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